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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Oct 08. 2024

누가 진짜 세종대왕일까?

여행 1일차 -2. @광화문광장

딸에게는 난생처음이었으리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이렇게 주의 깊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자, 또또의 판단은?

괜찮아. 정답은 없어. 사람마다 생각은 달라. 

그냥 또또의 생각과 이유만 말해주면 돼." 


"음… 나는... 나는... 바꿔야지!

일본 앞에 두고 광화문 지키겠다고 세운 동상인데...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도 아니고... 어? 

그대로 두면 세운 이유가 없어지는 건데, 

고쳐서 세우던가… 일본 사람들도 와서 볼 텐데… 

아, 그리고 서울시청, 옛날에 일본이 지었다는 거,

그냥 둬야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일본 나쁜 짓을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고 그랬잖아. 

그러면,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이순신 장군도 제대로 있어야 말이 맞지…"


오호… 딸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 할 말도 많다. 

생각이 떠오르는데 입이 속도를 못 따라가는 느낌. 

하지만 일리가 있다. 이 정도 컸구나, 내 딸… 


"굿!! 또또가 나중에 바꾸자!

아빠는 바꿔서 다시 세우자는 말에 동의가 되네. 

광화문의 상징이니까 유지하는 대신, 

'새롭게 변신해서 더 좋은 의미를 담고 다시 섭니다.' 

이렇게 해도 사람들 설득이 될 거 같네… 좋았어!!" 


딸의 어깨가 으쓱했다.

내 딸이라 어쩔 수 없이 자랑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기특함의 대명사다. 

갓난아이 때부터 잠도 잘 자고, 어른 말도 잘 듣고, 

특별히 아픈 데, 모난 데 없이 잘 커주고 있어서다.

맞벌이하는 엄마아빠에게는 더할 나위 없다. 

 

다만, 6학년이 되다 보니 요즘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올법한, 

이른바 ‘정답스러움’에 대한 느낌이 있다.

보수적이고 전형적인 '정답'의 패턴. 

어른들이 생각하는 정답을 맞혀서 

칭찬받고 싶은 아이들의 순수한 본능. 

아빠 입장에서는 사실 요런 걸 깨고 싶은 마음이 

올봄부터 살짝씩 올라온다. 정답이 아니라 

너만의 답을 한번 찾아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하지만 단숨에 해결될 순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자, 이제 세종대왕 동상 보러 가볼까?"


"오오~, 인기 1위 ㅋㅋㅋ" 


너무 더운지라, 지하로 먼저 들어갔다. 

세종이야기 기념관, 아! 시원하다... 


한글 창제 초기의 글자들, 자음과 모음들. 

아직 딸에게는 낯선 자음들이 눈길을 끈다. 

이제 중고등학교 가면 다 배울 것들이야, 

시험에 엄청 나올 게다. 

한글 창제 후 첫 책들도 전시가 되어있다.

역시나 딸이 낯선 표기에 한 마디 했다. 


"이것도 한글인가? 맞춤법도 다 틀리고…"


"엉? 맞춤법이 틀렸다고? ㅎㅎㅎㅎ 

한글 만든 사람한테 맞춤법이 틀리다고?

이거 한글 첫 책이라니까."

 

"ㅎㅎㅎ 아니, 아니... ㅎㅎㅎ 

요즘 맞춤법 틀린 사람들이 쓰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고~오"


마음속으로 칭찬하기가 무섭게 

역시나 아직 초등학생다운 멘트가 나왔다.

아직 못 배운 부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한글 창제자에게 맞춤법을 따지는 상황이 

아이러니한 재미가 있었다. 

그래, 한글도 시대에 따라 변하니까. 

요즘 애들에겐 요즘 한글이 '맞는 한글'일 수도. 


"또또야, 이 한글이 대단한 게 뭐냐면, 

전 세계에서 글자를, 문자를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개발한 건 한글밖에 없대. 다른 언어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것을 정리했는데, 한글은 개발을 해낸 거지. 

체계를 갖고 딱 만들어낸 거"


"우와 진짜? 아…"


한글의 위대함이 기념관 안에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한글뿐 아니라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역사까지는 진도가 아직 빠른 듯.

 

그저 딸은 어좌에 앉아서 사진도 찍었고, 

생일 날짜에 맞춰 순우리말로 된 글귀(?)도 얻었다. 

딸은 "가령가령한 슈륩", 나는 "포롱거리는 노고지리", 

와이프는 "올랑올랑한 타니". 안 쓰던 단어지만 

막상 발음해 보니 입안에 탱글거렸다. 

세종 기념관 @ 광화문 광장 (자체 촬영)
세종대왕 동상 @ 광화문 광장 (자체 촬영)

딸은 아까 동상 이야기가 재미있었나 보다. 

갑자기 먼저 동상을 화제로 던졌다.  


"세종대왕 동상은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문제가 없겠네?"


"아! 세종대왕도 얼굴 때문에 난리가 났었지."

 

"왜?"

 

"우리나라에 유명한 세종대왕 얼굴이 4개가 있어. 

예전에 여기 세우려던 세종대왕, 지금은 궁궐에 있는… 

그다음이 여의도에도 세종대왕이 있고… 

그리고 가장 오래된, 지폐에 있지… 

마지막으로 세운 게 이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그런데 이 4명의 얼굴이 다 달라."


"진짜? 그럼 누가 진짜야?"


"진짜는 몰라. 다 아냐."

 

"세종대왕 얼굴이 있는데 다 잘못 만든 거야?"

 

"동상은 사실, 다 다를 수가 있지. 

젊었을 때 세종, 나이 들었을 때 세종이 

얼굴이 다를 수는 있잖아. 그건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이건 그런 문제가 아냐."


"다른 사람이야?"

 

"사실, 세종대왕 얼굴은 일종의 상상화야."

 

"상상화?"

 

"응. 조선시대에 임금님 얼굴을 그린 그림을 

어진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딱 2개밖에 없대. 임진왜란, 6.25 전쟁 같은 때 

모두 타버려서. 그러니까 세종대왕 얼굴도 

남아있는 게 없는 거야. 다른 위인들도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몰라."

 

"다시 그렸어. 박정희 시절에."

 

"또 박정희야?"

 

"ㅇㅇ. 근데 이건 뭐 어쩔 수가 없었을 것도 같아. 

아무튼 앞으로 후손들이 조상의 얼굴을 모르고 

지낼 수는 없으니까 '자,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최대한 상상해서 얼굴을 그려서 

앞으로 이게 그 임금님, 위인의 얼굴로 하십시다'

하고 정한 거야. 그걸 표준영정이라고 한 거지. "


"표준? 기준이라고?"

 

"그렇지."

 

"ㅠㅠㅠ 얼굴 그려놓은 걸 잘 갖고 있어야지 ㅠㅠ "


"그렇지만 전쟁 때문인데 어떡해?...... 

그러면 또또야! 

만약에 또또가 동상 조각가야. 

위인 동상을 만들어야 되는데, 

이 위인은 얼굴이 사진도 없고, 그림도 없어. 

그럼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위인 동상인데 그 위인인 걸 사람들이 알아야죠. 

그래서 표준영정을 정했으니 그 얼굴대로 딱 그대로

만드십시다.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요”...

이러는 사람이 있고, 


“아니요, 뭐 꼭 그럴 필요가 있나요,

세종대왕 표준 영정도 결국 상상해서 만든 건데, 

조각가마다 상상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러니 자기 마음 속 위인의 모습을 만들어도 됩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떠오르면 되지, 

누가 세종대왕 얼굴을 알아봅니까?”…

이런 사람이 있어. 


이제 동상을 만들어야 하는 또또의 의견은 어때?"


광화문에서만 벌써 두 번째 질문이야.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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