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봄 Oct 07. 2024

이순신 장군 동상은 왜...?

여행 1일차 -1 @광화문광장 

가의 물음표

족의 느낌표 

그 1일차의 시작. 


"자기야, 또또야, 

내일 서울 장례식장에 들러야 할 거 같아… 미안…"


원래 여행 출발 목표 시간은 새벽. 

하지만 갑자기 생긴 와이프의 중요한 문상. 

어쩔 수 없이 오전에 상갓집을 들르기로 하고, 

나와 우리 딸 또또는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장소가 어디든 시간만 잘 보내면 여행이니까, 뭐. 


"그럼, 우리는 광화문에 내려줘." 


수도권에 살다 보면 가장 천대받는 관광지(?), 서울. 

정작 딸이 6학년이 다 되도록 아빠 회사 근처 말고는

서울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광화문도 처음 가보는 촌것들. 


8월, 역대급 폭염 속에서 광화문광장 한 복판에 섰다. 

광고주 미팅 때문에 몇 년간 자주 드나들었던 곳, 

하지만, 업무가 아닌 여행으로, 직원들이 아닌 딸과 

함께 서있는 것만으로도 낯선 설렘이 돌았다.


"또또야, 저기가 광화문이야. 저기 보이는 저 문... 

궁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든 거지. 

그러니까 여기가 옛날부터 서울의 중심 같은 곳."


광화문은 여전히 고풍스럽게 서 있었고,

그 문을 등진 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이 

저 높은 곳에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더위를 식혀주려는 듯 분수가 터져 나오고 있었고,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도 번져 나오고 있었다.  

작은 축제가 있는지, 그날은 대형 애드벌룬 풍선과 

팔찌, 키링 등 소도구를 파는 잡화상도 늘어서있었다. 


"또또야, 저 동상은 누구지?"


"이순신 장군! 아빠는 나를 바보로 아나?" 

@ 광화문 광장 (자체 촬영)


"이 동상이 세워진 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대. 

이곳은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을 준비하고 있었대. 

그런데 군인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세종대왕 동상은 일단 궁궐 안으로 치워두고 

'여기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시오~' 한 거야. 

같은 군인이니까. 

그래서 이순신은 충무공, 충무로가 따로 있는데, 

세종로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급히 세워진 거지. 


이 무렵에 전국 초등학교에도 

이순신 장군 동상이 쫘악 세워지기 시작했대. 

전에는 가장 존경하는 위인 1위가 

압도적으로 세종대왕이었는데, 

그 후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1, 2위를 다투게

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었대. 

그러니까, 박정희라는 팬 덕분에 

이순신 장군이 스타에서 슈퍼스타가 된 거지" 


초등학교 6학년, 걸그룹을 꿰고 있고, 

한 보이그룹을 팬심으로 열광하는 딸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억지 맞춤형 설명을 이어갔다.

다행히 기특함이 대명사인 우리 딸은 잘 맞춰준다. 


"오호. 성공한 팬심이군." 


"근데 그거 알아? 저 동상이 세워지고 난 뒤에 

‘이 동상 잘못되었어요~’ 한 사람들이 있었어."


"누구?"

 

"그러니까 무인 협회, 일종의 검도협회 같은 사람들." 


"왜?" 


"이순신 장군이 무슨 손으로 칼을 들었는지 봐봐."


"오른손."

 

"저게 이상한 거야. 뭐가 이상할까?"

 

"음… 모르겠는데…"


"칼을 잘 봐봐. 칼집에 들어있어? 아님 나와있어?"


"칼집에 들어있는 거 같은데…"


"칼집에 들어있는 칼을 꺼내서 칼을 휘두르려면 

어떻게 해야 돼?" 


몸짓으로 오른손으로 왼손 칼집에서 칼을 뽑는 

시늉을 한다. 딸이 슬쩍 따라 하면서 알아챈다. 


"아 맞네. 오른손으로 뽑으려면 

왼손에 들고 있어야지. 맞네. 실수했네."

 

"그렇지? 그래서 ‘아 네네 실수! 실수!’하려고 했더니 

‘이건 실수를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이러는 거야"

 

"또, 왜?"

 

"무인들의 예법에는 장수가 항복하러 갈 때만 

칼을 칼집에 든 채로 오른손에 들고 나오는 거래. 

나는 칼을 뽑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진짜? 그러면 '항복합니다!' 이러는 거야?

아빠가 이 방향으로 쭈욱 이으면 일본 쪽이라며? 

그럼 일본한테 '항복합니다' 하는 거잖아?"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무인들이 반대한 거지."

 

"우와, 씨… 그럼 바꿔야지 왜 안 바꿔?" 


내가 알기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이런저런 이유로

철거 주장이 종종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매년 이순신 장군 동상을 목욕시켰다는 기사와 

사진도 접하게 되지만. 그러면, “왜 안 바꿔?”라는 

딸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까? 


“음… 그러면 또또가 한번 생각해 봐. 

만약에 또또가 대통령이야. 

누가 ‘오른손에 칼을 든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일본에 항복한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철거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해...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아닙니다, 그 무인 예법은 

법도, 규칙도 아니고, 모두가 알던 것도 아닙니다. 

몇십 년 동안 광화문을 지켜와서 상징이 되었고, 

지금 철거하면 현실적으로 이득은 하나도 없이 

철거비만 엄청나게 나오게 됩니다. 

그냥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 


그러면 우리의 또또 대통령은 어떻게 할 거 같아?” 


아마도 이 순간이 이번 우리 가족 여행의 

패턴이 정해지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딸에게 생각이 필요한 질문을 찾아서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도록 던져보자는 

설명충 아빠의 꼰대스러운 아이디어. 

이 꼰대짓은 딸이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익숙하겠지만, 여행 중에도 과연 받아들여질지...


“딸! 자, 우리 또또의 판단은?” 


여행은 다음 편에도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