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은 아니구요, 비 맞고 걷기

어제 마음도 답답하고 운동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걸으러 나갔다. 비가 오다 안 오다 해서 그쳤길 바랐지만.. 나가자마자 보이는 빗방울에 바로 우산을 챙겨 갔다.

비가 오는데도 뛰는 사람 2명, 걷는 사람 1명이 보였다. 그 사람들을 보며 여태 운동을 미뤄온 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충전해서 들고나간 에어팟을 귀에 꽂고 비도 오니 평소에 잘 듣지 않던 애절한 발라드들을 들으며 걷기 시작했다.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된 느낌. 그러다 손에 든 우산이 불편했다. 양손을 힘차게 움직여줘야 운동이 되는 느낌이라 우산을 걷던 길가에 접어두고 비를 온전히 맞으며, 그리고 양팔을 시원하게 흔들며 걸었다.

일명 파워워킹.

며칠 전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이 빠진 듯하다는 말을 듣고 조금 걱정이 됐지만 ‘에라이 몰라 걸을래’라는 생각에 머리가 젖든 말든 신경을 안 썼다. 사실 조금 걱정은

돼서 방수모자가 있는지 알아는 보려고 한다. 장마철이니까.

신나게 걷는데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 얼굴을 들고 걷기가 조금 힘들었다. 눈으로 빗물이 계속 흘러 들어가 눈 쪽을 쓸며 걷는데 실연당해 빗 속에서 티 안 나게 우는 사람 꼴이 된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조금 민망함은 느껴졌다. 미친 여자보다 실연당한 여자가 낫겠다 싶어 중간중간 코도 먹었다. 진짜 빗 속에 울러 나온 여자처럼. 너무 설정이었나.

신기했던 건 수영장에서 실수로 코로 물먹은 느낌이 났다. 나는 그 느낌이 락스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코로 역류하면 그 쎄한 느낌이 든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한 40분 걸었나.

이 정도로 즐겼으면 됐다 싶어 집으로 갔다.

갑갑했던 속도 진정되고 운동한 기분도 들고 꽤나 상쾌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릴 때는 비를 왕창 맞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이 있는데 어제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 이게 왜 아쉽냐 싶겠지만 자주 비를 그렇게 맞을 수는 없으니 이왕 즐길걸 비를 즐겼다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저도 모르겠어요. 이러나저러나 비를 맘 놓고 맞는 건 해방감이 드는 행위였다.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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