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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 한다. 에어컨.

내 흑역사와 함께

by 반항녀

애증(愛憎)

애증이란 말은 참 쓰기 좋은 단어인 것 같다.

대놓고 ‘사랑할 애’와 ‘미울 증’이 함께 쓰여, 사랑하면서도 미운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애증을 영어로는 과연 어떻게 표현할까 싶어 찾아보니 ‘Friend + Enemy’ 해서 ‘Frenemy’라고도 한다는데.

'애증'이란 단어 그 자체만큼 강렬하게 느낌이 와닿지는 않는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 애증의 대상은 ‘에어컨’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여름?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다. 숨이 막힐 것처럼 더우면 에어컨을 찾아가니..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에어컨이 약하면 지하철 민원문자로

‘@@호차가 너무 더워요. 에어컨 좀 켜주세요.’라고 보낸 적도 있다.


그럼 감사히 온도를 낮춰주셔서 확실히 시원해진다.


그런데 또 30년 만성비염전문가로서 에어컨은 미워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더워서 에어컨 밑에 있다 보면 코 속이 부어서 시큰시큰거리고 끊임없이 재채기를 해대고, 콧물도 주르륵. 비염을 떠나서도 에어컨이 너무 강해서 한여름에는 얇은 잠바도 챙겨 다녀야 한다. 아니면 냉동탑차에 실려있는 생선처럼 얼어버릴 것 같다.

에어컨을 생각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부끄러운 내 민폐 일화가 생각났다.

나름 공부를 좀 한다고 ‘정독반’ 학생으로 별도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곤 했었다. 정독반 자습실의 특권 중 하나로 에어컨이 중앙제어가 아니어서 학생들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정독반 학생 중에 기가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기센 친구는 열이 많았는지 에어컨을 세게 틀었다. 추워 죽겠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교복 가디건이나 체육복 잠바를 입기 시작하는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 친구가 무서웠기 때문에 차마 그 친구가 있을 때 에어컨 세기를 조절하지는 못하고 그 친구가 나간 사이에 내가 마치 의로운 일을 하는 것 마냥 당당하게 정독실 입구에 있는 에어컨 리모컨으로 가서 ‘내림버튼’을 세 번 눌렀다.

에어컨이 우리를 추위에 떨게 했기 때문에 이 에어컨의 냉력(?)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낮춘다는 내린다는 것과 그 의미가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 친구가 없는 그 순간 습격하듯 행동했어야 했기에 오류가 발생한 듯싶다.)


그리고 유유히 자습실에서 나오는데, 나오기 직전 내 눈에 보인 숫자 17.

나오자마자 ‘헉..’하며 ‘온도’를 낮춘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은 20도에 맞춰진 에어컨 세기에도 가지고 있는 잠바를 다들 입기 시작했는데 나는 거기서 3도를 더 낮춰준 것이다.

추워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더 추워진 자습실에는 차마 돌아갈 수가 없어서 교실로 가서 남은 야간자율학습을 마무리했었다.

과연 그 모습을 본 다른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모두들 추위에 떨고 있는데 어떤 친구가 당당히 에어컨 리모컨으로 가서 온도를 3도나 더 낮추고 정독실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들을 얼려 라이벌들을 제거하려는 암살 시도로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제일 무서운 여고생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부끄럽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문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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