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오마카세 먹은 거 아님 주의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제대로 된 오마카세를 처음 먹어봤다. 두 시간가량 한 자리에 앉아 셰프님이 주시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는데 새로웠다. 정말 맛있었고.
하지만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역시나 조금 부담스러웠고 매 초밥마다 꾸벅꾸벅, 작게 ‘감사합니다.’를 웅얼거렸다. 그리고 리액션을 해줘야 할 것 같아 초밥을 입에 넣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짜 맛있다. 와.”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걸 두 시간 동안 반복하니 중간에 몸살이 낫고 집에서 판콜을 마시고 잤다.
오마카세는 정말 컨디션 좋을 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난생처음 내 돈을 내고 내가 원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게 되었다.
무려 카더가든.
카더가든 이전에도 콘서트를 두 번 갔었다.
초등학생일때 운 좋게도 주변 인쇄소를 하시는 분이 가끔 콘서트 티켓을 나눠주시곤 하셔서 2PM과 휘성 콘서트를 봤었다.
2PM 콘서트는 무려 스탠딩석이었는데 초등학생일 때라 짐승돌이 웃통을 벗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게 남사스러웠다. 사춘기 소녀라 괜스레 제대로 그들을 바라보면 안 될 것 같다는 그 느낌.
그리고 휘성 콘서트도 초등학생 때 갔다. 그 어린 나이에 사랑을 알겠나 시련의 아픔을 알겠나. 휘성 노래는 대부분 절절하니 감성으로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공감은 못하고. 그때 유명했던 불면증(인섬니아) 정도 따라 부르고. 저어기 멀리 인형 같은 누군가가 휘성이구나 정도의 느낌만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어릴 때 콘서트 기억이 전부여서 내가 원하는 콘서트를 가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상당히 기대가 됐다.
서울까지 갔어야 하기에 차를 끌고 가는데 주차가 되지 않을까 봐 그 누구보다 빠르게 4시간 먼저 콘서트 장에 도착했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그 누군가의 팬도 아닌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나이기에 괜히 카 더가든의 극성팬으로 보일까 봐 혼자 쑥스러웠던 건 안 비밀.
3시간 넘게 책을 읽다가 30분 전쯤 콘서트장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는데 괜히 나만 혼자인듯한 기분이 들어 읽던 책을 꺼내 들었다.
참.. 괜히 아줌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콘서트 시작 전에는 앉아서 주로 뭘 해야하나요?)
콘서트가 시작하고 멋있게 카더가든님이 등장하셨다. 자동으로 손이 입으로 올라가고.. 베이스인지 드럼인지 둥둥거리는 소리에 내 심장이 따라 울리고.
카더가든이 4곡씩 노래를 부르며 노래구성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오마카세가 생각이 났다. 카더가든이 생각하는 최고의 조합으로 우리 귀에 넣어주는 노래들.
딱 오마카세였다.
노래마다 박수를 치고 가끔 ‘오~~’ 리액션도 해주고.
그렇게 두 시간.
1시간쯤 지났나,
일식 오마카세 먹을 때처럼 슬슬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왜! 다들 잘 즐기는데 나는 견디질 못해!!
이런 생각을 하며 사실 중간에 조금 졸기도 했다.
노래는 너무 좋았지만 너무 일찍 콘서트장에 가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다음부터는 적당히 일찍 가야겠다.)
그럼에도 카더가든님은 유쾌하고 재치 있고 무엇보다도 섹시했다.
아무튼 간 대접받는 일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그냥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콘서트도 오마카세 같았다.
일본어라 콘서트를 오마카세에 갖다 붙이는 게 괜찮은 일인지 조금 헷갈린다.
그래서 순우리말을 찾아보았다.
카더가든의 알아서 내주는 집.
콘서트는 너무 좋았고 무대 위에서 행복해하는 가수님을 보니 행복했고, 나에게는 노래는 아니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글이란 게 있어서 행복했다.
두서없이 하고 싶은 말만 잔뜩이었던 오늘의 주절주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