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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발과 풀빵

by 반항녀

어젯밤부터 괜히 오늘 아침 운동을 가지 않을 핑계를 찾고 있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얼굴에 난 뾰루지를 보고는 ‘아, 땀 흘리면 피부가 악화되겠구나.’하면서 운동을 안 갈 다짐을 하고, 잠잘 때 ‘이번 주 내내 열심히(?) 운동했으니 내일 하루 정도는 쉴까?’하면서.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어제저녁 친구와 먹은 마라샹궈와 꿔바로우를 생각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생각을 반복하다 9시에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하.


오늘 아파트 단지에 장터가 열리는 날이네?


저번 장터 열리는 날 먹지 못한 육전을 오늘 저녁에 사 먹을까 하면서 지나가는데 내 눈에 들어온 세 글자.


묵 사 발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나는 묵사발을 좋아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 짭짤하고 상큼하고 시원한 국물에 말캉말캉한 묵, 그리고 가끔 씹히는 김치와 파의 아삭함.

오 마이 갓.


운동하러 나오길 잘했다 생각하며 딱 2km만 달리고 저 묵사발을 사서 집에 가서 행복하게 먹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헬스장에 들어가 러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시속 6km에 기울기 2%.


티브이를 켜고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라며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묵사발.


그리고 이미 입 안에 들어온 듯한 상상되는 그 맛.


2km를 다 걷고 멈출까 말까 고민하다 1km만 더 걷자 싶었다. 묵사발.

묵사발이 가까워지고 있다.


평소 4km를 걷는데 오늘이라고 적게 걸을 이유를 찾지 못해 ’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서 4km를 채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후다닥 정리를 하고 나와서 장터로 향했다.


”사장님 묵사발 두 개 주세요~“


한 개 샀다가 아쉬울 지도 모르니 두 그릇을 샀다.


그렇게 포장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옆에 풀빵 틀이..

붕어빵은 비교적 잘 찾을 수 있어도 후르후르한 식감의 풀빵은 부산에서도 범내골 시장 쪽에나 가야 찾을 수 있었던가.


”사장님, 풀빵은 언제 만드실 거예요? “


여쭤보니 지금 바로 갓 만들어 주신단다.


풀빵 7개.. 3000원.


풀빵 만드시는 모습을 보며 서있었다.


먹기 직전에 그 참을 수 없는 식욕, 입에 얼른 넣고 싶다는 갈망.


하나를 서비스로 더 챙겨주셨고 나는 묵사발 2그릇과 풀빵 8알을 챙겨 집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묵사발 육수가 꽝꽝 얼어있어 얼른 흐르는 따뜻한 물에 녹이고 그 사이에 따땃한 풀빵을 먹었다.


행복이다.


육수가 완전히 녹지도 않았는데 그 새초롬한 맛을 얼른 맛보고 싶어 힘으로 얼음을 부수고 묵에 얹었다.

맛있어.


행복해.


묵사발과 풀빵.

오늘의 행복을 벌써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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