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다가 내가 여태 늙어가는 것에 대해 구체화하지 못하던 생각들이 글로 적혀있는 걸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아, 이게 “카타르시스”구나!
그렇게 처음으로 진정 ’ 카타르시스‘를 글로 표현할 정도로 제대로 느낀 나는 혼자 뿌듯한 마음에 속으로 카타르시스를 외고 있었다.
그러다 이 단어를 입 밖에 낸 것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때는 바야흐로 한참 신나게 놀 23살, 공무원 준비를 하겠다며 호기롭게 일 년 반, 세 학기를 휴학하고 복학을 했을 때였다. 대학생 기준으로 나이도 좀 먹었겠다, 휴학하며 내 생에 최고로 저체중을 찍었겠다 자신감 있게 혼자 교양과목을 신청해서 들었다. 사실 필수교양이라 졸업하려면 꼭 들었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나는 혼자 강의 듣는 것에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때 들었던 교양과목은 한 학기 내내 교수님이 짜주신 ’조’ 별로 활동하고 수업을 진행했어야 했다.
조원들하고 3주 차 정도 만나니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학교 끝나고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칵테일 바.
그 당시 나는 클럽을 줄기차게 다니던(음악 들으러) 사람으로서 잘 노는 척을 해야 했기에 (찐특인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잘 놂을 바란 적이 없다.) 메뉴판에서 가장 높은 도수의 칵테일을 골랐다.
그게 ‘카타르시스’였다. 45도 정도?
착한 조원들은 도수가 너무 높지 않냐며 만류했지만 나는 기어코 그 ‘카타르시스’를 시켰다.
나는 사실 클럽을 가더라도 샷 1잔을 먹고 취해서 밤 10시에 들어가서 12시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카타르시스. 몇 모금 마시고 나는 눈앞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층고가 높고 어두웠고, 파란 조명이 있는 세상이 흔들렸다. 당연히 세상이 흔들릴 리 없었고, 흔들리고 있던 것은 내 머리였다.
그래도 체면을 생각하며 고개를 바로 세우면 반대로 넘어가고 또 반대로 넘어갔다. 제대로 헤드뱅잉을 한 것이다. 그러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나는 수치심에 그대로 엎드려 있다가 조원들이 깨워주어 귀가했다.
머리를 박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허세를 부렸고, 그 허세의 결과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고. 비극을 보았고 그 불안한 허세가 정화된 것이 아닐까.
그다음 주 교양 수업 때 이미 수 일이 지났음에도 조원들은 내 머리 걱정을 해주었다. 좋은 사람들.
잘 지내고 계시죠?
그리고 카타르시스.. 술 작명이 철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