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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는 이유

by 반항녀

택시를 타면 스몰토크를 거부하지 않는 편이다. 더욱 나는 타인의 생각과 삶에 대해 알아가는 걸 즐거워하기에 듣는 쪽을 선호한다. 택시토크하면 빠질 수 없는 정치얘기도 극단적인 게 아니라면 피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나보다 삶을 오래 사셨기에 배울 점이 많고 그에 따라 느끼는 것도 많다.

즐겁다. 떠들다보면 주책같기도 하지만 즐겁다.


기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법은 생각보다 쉽다. 대화를 하고 싶은 기사님은 소소한 질문을 하시거나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 그럼 그것을 물고 내 이야기를 조금 꺼낸다. 가장 좋은 건 최근 고민거리.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면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러다 보면 삶,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 만난 기사님은 택시기사를 하신 지 5개월이 되셨다고 한다. 23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한 달 뒤에 코로나 여파로 하시던 장사를 접으셨다고. 나는 한 문장으로 그 시간을 표현할 수 있지만 기사님이 말씀하실 때 느껴진 그 고통은 끔찍했다. 그때 공황과 우울증, 대인기피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그때 기사님은 한동안 눈뜨면 소주, 움직이면 소주, 밥 먹으면서 소주를 드시면서 버티셨다고 한다. 맨 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으셔서. 그런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을 하시고는 막연하게 어딘가로 도움을 요청하셨다는데 그 번호는 182번. (상담전화라고 해서 찾아봤는데 실종아동 찾기 번호였다.) 그 전화를 받으신 상담사께서는 정신건강상담센터를 안내해주셨다고 한다. 상담을 받으며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 약을 드시면서 정신을 잡으셨다. 그리고 취업지원센터와 같은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아 조리사 자격증도 몇 개 따셨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꽤 있으신 탓에 식당에 취직하는 것은 어려워 다시 잠깐의 좌절.. 여기서도 무너지지 않고 일어서신 게 놀라웠다. 그러다 찾으신 게 택시기사였다고 한다. 본인은 지금 정말 만족하신다고 하셨다. 나와 같은 손님을 만나면 이야기도 하고 또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치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신다. 감사했다. 나는 저녁에 기사님과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릴 때는 건강하라고. 건강한 게 일단 최우선이라며 응원(?)을 받고 내렸다.


택시 안이라는 그 좁은 공간에 함께 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익명 그 자체의 관계에서 주변인에게 하지 못하는 하소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소오오오올직히, 아니 솔직히라고도 붙일 필요도 없이 택시를 타는 이유는 귀찮아서, 더 움직이기 싫어서, 또는 게으름을 부리다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서다. 그래도 이런 이벤트에 즐거움을 느끼면 어차피 우리가 시 X비용이라고 부르는 택시탑승에 대한 자괴감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것은 정신승리인가?


이 이야기에 덧붙여 예전에 올렸던 웃긴 택시 에피소드를 붙여본다.

읽어주시면 감사 ٩(ˊᗜˋ*)و


https://brunch.co.kr/@lfemme-revolte/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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