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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시작

by 반항녀 Mar 03. 2025

어젯밤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다 기억의 시작을 알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생각은 내가 흠뻑 잠겨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때문에 떠오른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란 게 참 얄밉다. 내가 야금야금 기억을 타고 오르려고 하니 잡히지 않으려고 파사삿 주변으로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불을 켰더니 바퀴벌레 엉덩이를 본 듯한 느낌만 들고 잡을 수 없는 상태 같은..?


그래도 몇 가지 기억은 건졌다.

추측으로 여섯 살. 아파트 놀이터였던가, 나무로 된 기다란 그네가 있었다. 그네를 타다가 미끄러져서 모래사장에 엎어졌다. 그 순간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들자마자 나 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네가 그대로 내 이마를 쳤다. 난생처음 혹이란 게 생겼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는 나를 보고 있던 어른들의 ‘고개를 들지 마!’하는 소리였던 것 같다.

난생처음 생겨본 그 혹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남아있다.


유치원에서의 기억. 유치원은 화장실과 마당만 기억난다. 유치원 화장실은 하얀색 타일로 도배되어 있었다.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려고 앉으면 항상 하트날파리를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하트.. 하트.. 색은 칙칙한 회색이지만 어린 마음에 하트모양이 신기했다. 여전히 가끔 하트모양 날파리를 보면 유치원 때가 떠오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유치원 마당에는 애벌레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나는 벌레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 애벌레를 잡아서 손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기를 했는데 부드러웠다. 정말 부드러웠다. 뒤늦게 커서 알고 보니 무당벌레 애벌레였다. 혹시 무당벌레 애벌레를 쓰다듬어 보신 분 계신가요? 없으시면 봄에 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정말 부드럽답니다. (사진을 첨부하려고 했는데 가까이서보니 속이 안 좋아요. 새끼라고 다 귀여운 건 아니구나.)


더 어릴 때로 들어가면 한 가지 기억만 언뜻 난다. 근데 기억이 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다. 아마 다섯 살 정도가 아닐까. 영도에 있는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기억 속에 내복을 입은 나와 따뜻한 한약을 담은 컵이 보인다. 그리고 한약을 먹으면 꼭 사탕을 주곤 했는데 크리스마스 지팡이 모양 사탕이다. 약한 박하맛이 났던 것 같다. 그땐 한약 먹는 게 너무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아쉽다.


다른 기억들은 엄마가 만들어 둔 사진 앨범에서 만들어 둔 기억 같다. 그래서 내 기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마르셀에게 홍차와 마들렌이 기억을 불러내 줬듯이 나에게 따뜻한 한약과 사탕을 준다면 기억이 다 살아나려나?


혹시 여러분의 기억은 언제부터 새겨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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