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다 기억의 시작을 알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생각은 내가 흠뻑 잠겨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때문에 떠오른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란 게 참 얄밉다. 내가 야금야금 기억을 타고 오르려고 하니 잡히지 않으려고 파사삿 주변으로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불을 켰더니 바퀴벌레 엉덩이를 본 듯한 느낌만 들고 잡을 수 없는 상태 같은..?
그래도 몇 가지 기억은 건졌다.
추측으로 여섯 살. 아파트 놀이터였던가, 나무로 된 기다란 그네가 있었다. 그네를 타다가 미끄러져서 모래사장에 엎어졌다. 그 순간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들자마자 나 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네가 그대로 내 이마를 쳤다. 난생처음 혹이란 게 생겼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는 나를 보고 있던 어른들의 ‘고개를 들지 마!’하는 소리였던 것 같다.
난생처음 생겨본 그 혹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남아있다.
유치원에서의 기억. 유치원은 화장실과 마당만 기억난다. 유치원 화장실은 하얀색 타일로 도배되어 있었다.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려고 앉으면 항상 하트날파리를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하트.. 하트.. 색은 칙칙한 회색이지만 어린 마음에 하트모양이 신기했다. 여전히 가끔 하트모양 날파리를 보면 유치원 때가 떠오른다.
유치원 마당에는 애벌레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나는 벌레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 애벌레를 잡아서 손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기를 했는데 부드러웠다. 정말 부드러웠다. 뒤늦게 커서 알고 보니 무당벌레 애벌레였다. 혹시 무당벌레 애벌레를 쓰다듬어 보신 분 계신가요? 없으시면 봄에 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정말 부드럽답니다. (사진을 첨부하려고 했는데 가까이서보니 속이 안 좋아요. 새끼라고 다 귀여운 건 아니구나.)
더 어릴 때로 들어가면 한 가지 기억만 언뜻 난다. 근데 기억이 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다. 아마 다섯 살 정도가 아닐까. 영도에 있는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기억 속에 내복을 입은 나와 따뜻한 한약을 담은 컵이 보인다. 그리고 한약을 먹으면 꼭 사탕을 주곤 했는데 크리스마스 지팡이 모양 사탕이다. 약한 박하맛이 났던 것 같다. 그땐 한약 먹는 게 너무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아쉽다.
다른 기억들은 엄마가 만들어 둔 사진 앨범에서 만들어 둔 기억 같다. 그래서 내 기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마르셀에게 홍차와 마들렌이 기억을 불러내 줬듯이 나에게 따뜻한 한약과 사탕을 준다면 기억이 다 살아나려나?
혹시 여러분의 기억은 언제부터 새겨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