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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다가 파산핑

누가 책 사는데 돈 아끼는 거 아니라 그랬냐

by 반항녀

작년, 정말 열심히 책을 샀다.

어릴 적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마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말을 책을 사는 건 소비가 아니다로 이해했을까?


중학생 때, 엄마가 한 달에 30만 원어치 책을 사주셨다.

당시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이것저것 주문했고,

책이 가득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할 때마다 행복했다.


그때부터 이상한 믿음이 생겼다.

책에 쓰는 돈은 돈이 아니다.

써도 써지지 않는 듯한 묘한 기분.

물론, 그땐 엄마 카드였으니까.


하지만 사둔 책은 결국 쌓였고, 두어 달 지나고 흐지부지됐다.

기억나는 건 오직 하나,

‘트와일라잇 시리즈’.

사춘기였던 나는 ‘남자친구감으로 늑대인간이 나을까, 뱀파이어가 나을까’를 고민하며 잠 못 이루던 밤을 보냈다.


그 이후, 대학 갈 때까지는 책과 멀어졌다.

가끔 도서관에서 빌려 읽긴 했지만, 1년에 세 권도 안 읽었을 것이다.


취업을 하고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휴직을 하며 2년에 걸쳐 600권을 읽었다.

처음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서 읽고, 다 읽으면 팔고 또 사고를 반복했다.

그땐 책에 대한 욕심보다도,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표지가 예쁜 책들, 어딘가 가볍게,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골랐던 책들이다.


책 읽는 습관이 붙자 도전하고 싶은 책들이 생겼고,

그중엔 중고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도 많았다.

그때 문득, 오래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마라.”


나는 온라인 교보문고로 눈을 돌렸다.

새 책들이 택배상자에 담겨 올 때마다 두근거림은 커져갔다.

북스타그래머로 활동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도 커졌다.


책꽂이에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겹겹이 꽂고, 책탑을 쌓고, 바닥에도 놓고…

하지만, 산 책은 모두 읽었다.


책을 사고, 또 사고.

그러다 보니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 그리고 “11만 원만 더 쓰면 프레스티지”. 11만 원 정도야 뭐.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2025년 나는 자랑스럽게 교보문고 프레스티지 회원이다.

인스타에서 책 리뷰를 올리면 인친들이 묻는다.

“책, 다 사서 읽으세요?”

나는 자랑스럽게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연말정산을 해보니, 책 구매만 400만 원.

교보문고만 200만 원 이상, 알라딘과 독립서점까지 합치면… 가슴이 뜨끔했다.


(누군가에겐 400만 원이 적은 돈일 수도 있지만 저의 작고 귀여운 월급에게는 크답니다..)


솔직히 말하면 후회는 없다.

책은 다 읽었고, 나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다만, 예산이 빵꾸 날 때 카페 구석에 앉아 이마 짚고 펜을 돌리며 인상을 잠시 찌푸리고 있게 된다.


“책이라도 소비는 소비고, 내 월급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조언이자,

내 통장이 텅장이 된 것에 대한 변명으로.


그리고 출판업계에는 빛과 소금.


아무튼 내 책꽂이는 아름답다.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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