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양락님의 외모를 비하코자 하는 게 아니고 단지 제 추구미와 맞지 않아 속상함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주기적으로 머리를 자르는 취미(?)를 가진 나는 이번에도 날개뼈 부근까지 자란 머리를 이기지 못하고 잘라버렸다. 봄이 와서 변신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 복실복실 파마를 펴기만 해도 충분했을 것을 굳이 매직까지 하고, 턱선 길이로 머리를 잘라버렸다.
길을 걷다 식당 유리창에 비친 내 짧은 머리를 보며 다시 한번 후회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하게 됐다. 나는 왜 단발머리를 좋아할까? 왜 주기적으로 이렇게 화끈하게 잘라버릴까?
그건 내가 ‘단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근자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근자감의 시작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살. 유치원생이던 시절, 나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파랑반.
(앞서 썼던 ‘기억의 시작’이라는 글에서 말했듯이, 내 유년기 기억의 대부분은 유치원에서 시작된다.)
하트 모양 날파리, 부드러웠던 무당벌레 애벌레.
그 시절, 한 문장이 아직도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단발이 참 예쁘게 어울려요.”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엄마와 통화하며 하셨던 말. 엄마는 그 말을 들은 뒤 너무 기뻐하며 나에게 전해줬고, 아빠도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그 어릴 적 어른들의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이 단발충동의 기원을 만든 셈이다.
어릴 땐 당연히 머리를 내가 고르지 못했다. 엄마가 데리고 가는 대로 미용실에 갔다. 엄마는 똑단발을 좋아했고, 머리를 자를 때마다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단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내 특기처럼 여겼다.
중학생 시절, 엄마랑 자갈치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근처 미용실에 충동적으로 들어가 칼단발을 했다. 그땐 ‘칼단발도 소화하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눈이 나빠 안경을 벗고 머리를 자른 게 문제였다. 머리가 다 잘리고 안경을 다시 쓴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이건 아니야…”
사춘기의 한복판, 외모에 민감하던 시절이라 충격이 더 컸다.
그래도 미용사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애써 웃으며 미용실을 나왔다. 엄마와 단둘이 되자, 참았던 눈물이 넘쳐흘렀고 나는 엄마에게 온갖 승질을 다 부렸다. 엄마는 억울했을 거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못생김의 충격을 엄마에게 쏟아내며 자갈치 시장 한복판에서 학교 못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런 아픔이 있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단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버리지 못했다.
오히려 머리는 확실히 자를수록 티가 난다는 생각에 더 짧게, 더 짧게 잘라갔다. 주로 귀밑 3cm였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도 자율적인 두발 규정 속에서 나는 자발적으로 머리를 잘랐다.
자를 때마다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자신감은 꺾이지 않았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턴으로 회사생활을 할 때도 나는 단발이었고,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대리님이 말했다. “이제는 좀 어른 같은 머리를 해보는 게 어때요?” 생머리에 웨이브 같은 걸 추천하셨다.
단발충동은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한두 번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래서 결국 며칠 전, 또 잘라버렸다.
렌즈삽입술을 해서 더는 안경이라는 서프라이즈 장치도 없고, 나는 머리가 잘려나가는 순간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거울을 마주보기가 힘들어 계속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자르는 도중, 또 그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야…”
이번엔, 내 나이를 생각했어야 했다.
시원하게 샴푸를 받고 드라이를 마무리할 즈음,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최양락이 됐네요…ㅎㅎ 아, 그래도 머리는 제가 원하던 스타일이에요! 얼굴이 문제죠…”
미용사님은 그저 웃으셨다.
잠깐의 정적. 내가 다시 쓰러지려는 걸 느끼셨는지 미용사님이 물으셨다.
“혹시 ‘돌싱글즈’에 나오는 누구 아세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 사람… 여자는 맞나요?”
다행히 여자란다. 그리고 미용사님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찾으시더니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셨다.
말씀하신 그 ‘돌싱글즈’의 누군가였다.
다행히 괜찮아 보였지만, 어쩐지 ‘애써’ 괜찮아 보이려는 느낌이 났다.
미용실을 나와, 곧 있을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함께 갈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래, 최양락이지만 괜찮아.”
그리고,
온전히 최양락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나에겐 화장이 있으니까.
화장을 한다고 크게 달라지냐고 물으신다면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