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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시즌 선수 치기

by 반항녀

아직 이르긴 하지만 잠깐 나갔다 오는 길에 느낀 여름방학의 밤.


하루종일 요리를 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식당에서 나는 식은 음식 냄새.


올려다본 하늘에는 주황색 가로등.


그리고 이리저리 뻗어있는 전깃줄.


가장 중요한 건 살결에 닿는 살랑살랑 바람.




어릴 때 일을 늦게 마치고 오는 아빠를 엄마와 동생과 함께 마중 나가곤 했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집은 부산 화명동에 어떤 오르막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빠를 마중 나갈 때면 그 오르막은 내리막이 되었고 아빠를 볼 수 있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간다.


가끔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동네 볼링장에 가곤 했다.


어렸기 때문에 볼링공을 드는 건 무리였고, 그런 동생과 나에게 필수품은 옆 슈퍼마켓에서 파는 고구마만주.


아직도 가끔 고구마만주만 먹으면 어릴 때 여름방학 밤이 떠오른다.


나에게 고구마만쥬는 여름방학의 밤맛이다.

그렇게 볼링장에서 엄마, 아빠 볼링 치는 걸 구경하다 잠이 오기 시작하면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 된다.


그 시간 때는 가게들이 문을 닫고 주황색 가로등만 보인다.


문 닫은 슈퍼마켓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신이 보일까 싶어 엄마나 아빠 손을 꽉 잡고 고개를 돌리고 지나간다.




그 길의 낮.


여름방학의 낮 중 하루는 모았던 용돈과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내리막을 걸어내려 가 엄마아빠 몰래 금붕어를 사서 집으로 왔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물과 함께 담긴 금붕어 한 마리.


햇빛이 강해 금붕어가 더워죽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어린 동생은 힘들어하고.


그리고 오르막 중간쯤에 있는 퐁퐁을 타고 싶지만 금붕어를 사는데 돈을 다 썼기 때문에 퐁퐁은 다음에 타기로 동생과 약속을 한다.


엄마는 집에서 청소를 한다고 대문을 열어두었다.


대문에 서서 금붕어를 등 뒤로 숨기고 들어가려고 하면 집 안 창문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대문으로 나온다.


여름방학의 낮 냄새.


엄마가 준비한 점심냄새와 바람이 합심해 나를 배고프게 만든다.


맨발로 신고 갔던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모래기로 퍼석퍼석한 발로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가서 ‘짠’하고 금붕어가 담긴 봉지를 보여준다.


엄마는 뭐라고 하지만 금붕어를 키울 수 있게 어항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는 그 어항을 들고 침대에 앉아 잠시 동안의 행복과 성취감을 느낀다.


동생은 마트까지 다녀오는 길이 고됐는지 낮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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