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항녀 Apr 27. 2024

나의 신은 요절했다

블라디미르 라보코프 ‘창백한 불꽃’ 중

저 책은 처음 보는 형식의 길고 긴 시로 돼있었다.


그리고 주석이 본문보다 긴 책이었다.


사실 감정이 넘칠때 시를 쓰는 것 말고 읽는 것은 그닥..


하지만 나에게 딱 한 가지 꽂힌 문장을 줬다.


나의 신은 요절했다.


사실 책에서 정확히 어떤 의도로 쓰인 말인지 이해를 제대로 하진 못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인생문장(?)이 되었다.


나는 어릴 때 겁이 무진장 많았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도 무서워서 누군가들에게 기도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귀신을 무서워하는 학생들은 수업 마치고 남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귀신을 무서워하는 걸 이해해 주는 선생님도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울만큼 감동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교회 전도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면 제우스, 헤라에게 이런저런 기도인지 소원인지를 빌었고 이집트 신화를 읽으면 라와 셉트에게 기도인지 소원인지를 비는 다양신(유일신 반대말이 뭔지 모르겠다) 소녀였는데, 안타깝게도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회 전도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담임선생님한테 낚인 기분에 실망을 했고, 귀신을 계속 무서워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성당은 또 열심히 다니며 세례도 받고 성가 피아노도 쳐보고(한번) 그랬다.


아무튼 나의 신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느 순간 나는 신에 의존하고 있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신앙심이 깊음에도 불구하고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보이고, 친구 따라 간 교회에서는 전광판에 헌금을 내라고 떡하니 띄워두곤 목사님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경주로 놀러 갔을 때였나, 스님이 ‘링컨’ SUV 운전석에서 내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스님도 사람이니 좋은 차를 타고 싶을 수 있지만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물론, 성당이라고 완벽하지는 않았다. 막말을 하는 신부님도 계시고.. 뭐 전 세계적으로 봐도 드문드문 성추문도 발생하고 있으니까..


어쩌다 보니 종교 모두 까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의미로 신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책을 나름.. 많이 읽다 보니 신보다도 내 선택과 내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끼고 내 삶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헤라, 제우스, 라, 셉트, 하느님, 성모님, 예수님 등 다양한 나라의 많은 신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싹 사라졌다.


그리고 저 문장을 만났는데, 아무래도 나의 신은 요절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무언가를 믿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또, 내가 필요할 때마다 신한테 의존하는 나 자신에도 이제 질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요절했다는 말에 극히 공감을 한 게 죄송하지만..


일단 나에게는 요절하셨다.


종교인들 존중합니다!

주절주절

이전 11화 아님 말고, 이럼 말고, 저럼 말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