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하고 찜질방 가는게 제 로망이에요"
며칠 전 제이슨이 아들과 함께 찜질방 가는
유튜브 영상을 봤습니다.
많은 아빠들의 로망인 아들과 찜질방 가기.
하지만 아이는 찜질방보다는 키즈카페를 가고 싶어했고
찜질방에 가서도 놀이방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제이슨은 본인이 기대했던 찜질방이 아니었기에
아쉬워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낳으면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들을 낳으면 꼭 축구를 같이 하고 싶은
로망이 있죠.
제이슨이나 저처럼 취미 생활을 같이하고 싶은
가벼운 로망도 있지만 어떤 부모는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이루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좋은 대학을 못나와서 아쉬웠어요.
아들만큼은 꼭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낼거에요'
이런 로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드라마 같은 곳에서 자녀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하는 등
예체능 쪽으로 빠지면 꼭 하는 말도 있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좋은 대학 가서 취업이나 해라'
이것 역시 부모의 '로망', '기대'겠죠.
가족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본인 내면에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기대와 열망 등이 있기 때문에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죠.
자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기 때문에
자녀를 질책하기도 하고
자녀에게 서운해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녀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화가 날 때도 있겠죠.
하지만 자녀는 내가 아닙니다.
부모의 기대, 열망, 로망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죠.
부모 자신의 기대대로 자녀가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는 나와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부모이기에 기대를 할 수 있고
로망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 로망, 기대 때문에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조건부적으로, 내 기대를 충족시킬 때만
사랑한다면 자녀의 자존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아들을 낳았을 때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볼게요.
그러면 사람인지라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둘째 아들이 축구를 좋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도 모르게 둘째 아들과
시간을 더 보내게 될 것이고
첫째 아들은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축구를 억지로 할 수도 있겠죠.
첫째 아들은
'내가 축구를 해야 아빠는 날 사랑하나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장해서도
사랑받기 위해 어떤 행위를 계속해서 하겠죠.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건부'를 두는 것이죠.
인정받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하는
자녀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조건없이 사랑해줄 수 있을까요?
버지니아 사티어는 '빙산 이론'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탐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면에 있는 자신의 지각, 감정, 기대, 열망을
차근차근 탐색하면서
나를 이해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아빠와 함께 축구를 하거나
운동을 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는 많이 했지만
한번쯤은 아빠와 축구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죠.
아마 이런 기억들과 열망 때문에
아들과는 꼭 축구를 하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제가 이러한 열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고
그 기대가 자녀를 낳았을 때
축구 좋아하는 자녀를 편애할 수도 있다는
지각을 하고 행동한다면
미리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자녀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고
제가 바라는 기대에 따라 자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내 기대대로 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아들, 딸. 엄마(아빠)가 어렸을 때
~~하게 살아서 그런지
우리 oo이한테도 무의식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나봐.
그래서 이렇게 얘기를 했나봐"라고 말한다면
서로를 이해해주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