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법철학자들의 고민
학창 시절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법이라는 것은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고, 도덕은 그렇지 않은 것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문득 법이란 무엇인가? 사회가 만든 규칙에 불과한가? 그 이상의 도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 둘의 관계는 교집합인가, 합집합인가, 포함집합인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 법철학은 그 둘의 관계를 규명해 온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법과 도덕의 관계에 관하여 많은 학자들이 치열하게 맞서 왔다. 그 주장은 세 갈래로 나뉘게 되었는데, ‘자연법론'(Natural Law Theory),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 '법해석주의'(Interpretivism)가 그것이다.
자연법론은 법은 도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관계에 있다고 본다. 법이란 근본적으로 인간 본연의 도덕성과 보편적 정의에 기반하여야 하고, 만약 법이 도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해 왔는데, 토마스 아퀴나스(Tomas Aquinas, 1225-74)는 신의 자연 질서에 근거한 보편적 도덕 원칙을 강조했고,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와 자연권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장 자크 루소는 '사회 계약’ 개념을 통해 자연법과 자연권에 관한 중요한 철학적 입장을 제시하였다. 자연법론의 시각에서 보면 도덕적으로 부당한 법은 결코 법이 아니다. 자연법론의 이러한 입장은 도덕의 보편성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법의 객관성’과 ‘사회적 합의’를 간과할 수 있고,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법실증주의는 도덕과 법을 명확하게 분리하고 다른 것으로 취급한다. 법은 그저 법일뿐이며, 법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 뿐이다. 법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법으로서의 유효성을 갖춘 것이라면 그것을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 법실증주의는 법을 도덕과 분리해 객관적이고 명확한 사회적 사실로 정의함으로써 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 그리고 법치주의 원칙을 강화한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런 입장에 속한 대표적 법학자로는 존 오스틴, H.L.A. 하트, 한스 켈젠, 조셉 라즈와 같은 학자가 있다. 그러나, 도덕적 정당성을 간과함으로써 부당하거나 비윤리적인 법도 법으로 인정하게 되는 결과, ‘악법'도 법이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법의 사회적·도덕적 맥락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법해석주의는 법을 단순한 규칙 이상의 도덕적 원칙과 가치가 내재된 체계로 보고, 판사나 해석자가 사회적 맥락과 도덕적 기준을 고려해 법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연법이 보편적 도덕 원칙에 따라 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반면, 법해석주의는 구체적 법규칙의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도덕적 원칙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대표 학자는 로널드 드워킨이다. 법해석주의는 법과 도덕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법의 유연성과 현실 적응력을 높여 복잡한 사례에 적합한 판결을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허큘리스 판사는 존재하지 않는데) 판사의 재량과 주관적 해석이 과도해지는 경우, 법치주의의 예측가능성과 통일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연법론, 법실증주의, 법해석주의라는 법철학의 세 갈래 길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경쟁법과 온라인 플랫폼 규제 담론(disclosure)의 미로 속에서 각기 다른 등불을 들고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자연법론은 정의라는 불꽃으로 어둠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밝혀주고, 법실증주의는 견고한 길의 돌담처럼 명확한 규칙과 절차로 헌법상의 시장 질서를 지탱한다. 반면, 법해석주의는 변화무쌍한 디지털 강물처럼 흐르는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길을 굽이돌게 하며, 사회적 맥락(context)이라는 바람을 타고 법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법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이 세 빛이 어우러질 때,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라는 숲 속에서 '공정', '소비자후생', '혁신' 등의 다양한 가치가 균형이 맞춰진 진정한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