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마음이 아늑해지는

by 화진


“들어와요.”


안채 내부는 심플하면서 자연친화적이었다. 통나무를 사용한 들보와 기둥들을 그대로 노출시킨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여기 와 앉아요.”


라한이 주방 식탁 의자를 권하고는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좀 거들어 드려요?”


쌀부터 씻어 돌솥에 안친 뒤에 미역국을 냄비에 옮겨 담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라한의 뒤통수에 대고 물으며 문비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니, 아니에요. 앉아 있어요. 제가 하는 게 편해요.”


손사래를 친 라한은 작은 접시를 늘어놓고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밀폐용기의 반찬들을 젓가락으로 조금씩 나누어 담았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손놀림, 고운 모양으로 소담하게 담기는 찬들. 보는 마음이 아늑해지는 광경이라고, 가만히 바라보던 문비가 홀로 작게 끄덕였다.


“산초장아찌 먹나요?”


라한이 물어볼 때 벽에 걸린 사진 액자를 보던 문비도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근사하네요, 사진. 직접 찍은 건가요?”


이어 문비가 대답했다.


“좋아해요.”


불을 조절하여 밥물을 잦히던 라한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이지만 순간 멈칫했다. 물론 산초장아찌를 두고 한 말인 줄은 알지만.


“좋아한다고요?”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되물었다.


“네, 좋아해요.”


흥미로운 눈길을 액자에 고정한 문비의 대답은 진지했다. 장난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라한은 그녀의 등 뒤에서 엷게 한 번 웃음 짓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직접 찍은 사진 맞아요.”


“저긴 어디예요? 저런 걸 뭐라고 하죠? 저걸 했던 거예요?”


여전히 액자 속 사진에 시선을 고정한 문비가 질문을 쏟아냈다.


“노르웨이 라그나록, 스노카이팅, 아직 대회 참가는 못 해 봤지만 시작한 지는 몇 년 됐어요.”


라한을 스노카이팅의 세계로 이끈 건 미텐발트 악기제작학교에서 친해진 독일인 친구 안톤이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스노카이팅을 접한 안톤은 대회에도 참가하는 실력자였다.


“무지개색 연에 매달린 친구가 안톤이에요.”


문비가 눈을 떼지 못하는 그 사진은 공중에 낙하산을 닮은 연들이 떠 있고, 스키를 신은 사람들이 낙하산처럼 생긴 연에 연결된 줄에 매달려 설원을 달리는 광경을 찍은 것이었다.


연푸른 하늘과 구름, 끝없이 펼쳐진 설원 그리고 허공을 부유하는 색색의 연들. 거기,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겨울바람이 불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사진이었다.


“저렇게 바람에만 의지해서 온통 하얗기만 한 눈밭을 달리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 맞다!”


주방 입구 한쪽에 내려놓았던 에코백 앞으로 문비가 급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서 꺼낸 한 움큼의 참두릅을 라한에게 내밀었다. 두릅 철은 거의 끝났지만 운 좋게도 늦된 것 예닐곱 개를 만났던 것이다.


“두릅초회? 아니면 튀김?”


건네받으며 묻는 라한의 태도는 매일 그러고 사는 사람들처럼 예사로웠다.


“꼭 지금 먹자는 건 아니었고 그냥 생각나서 드리려던 건데…….”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말해 봐요, 어떻게 먹고 싶은지.”


“좋으실 대로요.”


문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라한이 잠시 생각하는 눈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개수대를 향해 돌아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번 마주쳐서 이야기 나눈 게 전부인 사람과 이러고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조용하지만 능숙한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또 그 어떤 긴장감이 전혀 없는 자연스러움은 아니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분명 의식하고 있었다.


“스노카이팅을 하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죠? 아무것도요. 눈과 추위와 바람, 그러니까 감각하고 대자연, 그뿐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좋다는 말인 줄을 문비는 알 수 있었다. 진즉에 알았다면 오로라를 보러 가는 길에 저것도 도전해 봤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레포츠 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 순간 문비는 스스로가 조금 새롭다.


보글보글 국이 끓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마른 행주에 손 닦는 소리, 개수대에 물 트는 소리, 가볍게 딛는 발소리……. 소리들이 어우러져 문비의 귀에서 화음을 이루었다. 편안하고 정겨운 가락이 되어 문비의 머릿속에 허밍으로 떠다녔다.


식사 준비를 끝낸 라한이 문비의 맞은편에 앉았다. 전복미역국과 산초장아찌, 삼색북어보푸라기와 송이장조림 그리고 백김치와 두릅초회를 바라보며 문비는 감탄했다. 다채로운 색감과 뭉근하게 미각을 일깨우는 냄새에 마음 한 구석이 솜구름처럼 몽글거렸다.


“제가 알아맞혔나요?”


“뭘요?”


“이거 말이에요.”


라한이 두릅초회를 가리켰다.


문비가 파릇한 두릅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첫 입은 초장에 찍지 않고 본연의 맛만 음미해 보는 것이 그녀가 두릅초회를 먹는 방법이었다. 두릅의 향긋한 풋내가 입안에 퍼졌다. 딱 좋을 만큼 부드러우면서 아삭한 식감도 좋고, 무엇보다 봄 푸성귀의 파릇한 맛이 살아 있었다.


“맞혔어요. 두릅하면 초회죠. 아주 적당하게 잘 데쳤어요. 간단한 것 같아도 쉽지 않다던데.”


먹을 줄만 알았지 정작 요리할 줄은 모르는 이의 천진스러움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두릅이 좀 더 있었으면 초밥을 했을 텐데. 두릅초밥, 좋아해요?”


“그렇게도 먹는 줄은 몰랐어요.”


앞에 앉은 남자가 그런 것까지 만들 줄 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개인적으론 두릅 요리의 으뜸으로 쳐요. 아마 문비씨도 먹어 보면 좋아할 거예요.”


“그럴 것 같아요.”


“반찬, 입에 맞아요?”


“네, 전부 다 굉장히 맛있어요.”


담백하게 먹는 편인 문비의 기호에 잘 맞을뿐더러 아주 맛깔스러운 음식들이었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라한은 문비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입맛이 비슷하구나, 우리. 라한은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저 고요한 미소만 잠깐 지었다.


간간이 평범하고 사소한 짧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담담히 이어진 점심식사 후에 두 사람은 지난번 그랬던 것처럼 살구나무 그늘에서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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