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를 진짜로 가보다니, 그걸 발표 자료로까지 만들어 오다니' Judy가 특히 아주 좋아했다.
매번 모든 사람들이 출석하는 건 아니었지만 시민권 시험을 준비하는 페루 출신 Marko, 스페인 출신 Damaris는 매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는 어려움, 억울한 일을 얘기하거나 창피할만한 걸 물어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여기는 이민자들의 수업이니까. 마치 친목 모임 같아서 기다려지고 재미도 있다.
시민권 수업은 전체 10주짜리인데 Judy가 담당한 미국역사 5주 수업은 끝나고, 나머지 5주는 새로운 선생님 Owen과 정치경제 수업을 도서관 회의실에서 오프라인으로 하게 되어 있다.
오프라인 수업 첫날엔 드디어 Marko와 Damaris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반가웠다. 공지와 메일을 보내줬던 도서관 수업 코디네이터 Alison과도 인사했다. 하나같이 반가웠다.
5주간 수업을 해주실 Owen은 뉴욕 경찰로 40년 근무하고 은퇴하셨다고 한다. 흰머리에 장난기 있는 눈웃음이 있는 편안한 느낌의 할아버지다. 보조 선생님 Lauri도 함께 했다. 학생 셋에 선생님 둘이다.
Owen이 준비해 준 자료를 보면서 미국의 입법, 행정, 사법부 조직 구조에 대한 내용과 역사적 사건들을 배우기도 했고 TV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슈들을 자유롭게 얘기 나누곤 했다.
동네 곳곳에 경선(Primary) 푯말이 꽂혀있던 미국 중간선거(주지사와 연방 상/하원을 포함한 지역 대표 선출직 선거)에 대한 이야기, 알바니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 이야기, 병원 및 의료보험에 관련된 이야기 등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쉽게 배울 수 없는 배경지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Owen은 '왜 이 수업을 들으러 왔는지, 왜 시민권을 받으려고 하는지'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내가 답하길...
"이민 온 사람들은 현지인이 갖고 있는 상식이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만 어른들은 미국 역사나 상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저는 이웃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서, 그 상식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이 수업을 들으러 왔어요. 물론 시민권 시험 대상자는 아니에요."
Owen은 내가 약간 의외의 답변을 했다는 듯, 쓱 보고 웃어주었다. "Interesting"
몇 달 뒤 시민권 시험을 봐야 하는 Damaris는 나와는 조금 다른 얘기를 했다.
"저는 25년 전에 보스턴에 와서 공부도 하고 남편도 만났고 아이들도 낳았어요. 사실, 일상생활하는데 시민권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나는 미국에서 살아도 스페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느덧 스페인에서 살았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살게 되니 가끔은 정체성에 혼란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지금의 나는 미국 사람의 생각을 갖고 살고 있으니 이제는 미국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동네 사람으로서 지역에 참여해서 여러 역할을 하고 싶어서 시민권을 신청했어요."
나는 그녀의 고민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좌충우돌 정착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뿌리를 내리게 되면 뿌리를 내린 곳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행 온 게 아니니까.
3개월이 조금 안 되는 동안 시민권 수업은 매주 사람들을 만나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는 너무나 중요한 모임 그 자체가 되었다.
나는 이 수업이 끝나가는 것이 두렵기 시작했다. '이 수업이 끝나면 나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야 하나?'
(왼쪽) 도서관에서 열린 작은 콘서트. (오른쪽) 도서관 복도에 전시된 수박 조각 출품작. 미국의 도서관은 다양한 문화/교육 행사가 있는 곳이다.
엄마들 동네 사랑방인 아침 영어회화 수업
나는 수요일 저녁마다 시민권 수업을 듣고 아내는 화, 수 아침마다 도서관에 나가서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다.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난 뒤라서 엄마들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간이다.
아내가 도서관을 가는 날엔 같이 수업 듣는 한국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오기 때문에 나는 점심을 혼자 해 먹어야 하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내가 뭔가 재미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주재원들 또는 그 가족 중에 우리 도서관에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아예 이민으로 온 사람들뿐이었다.
그 덕분에 아내는 맛집 목록이나 한국인 과외 선생님 연락처 같은 현지인 수준의 정보를 받아오곤 했다.
같이 수업 듣는 사람은 10명 정도고 선생님은 서너 명 정도라고 한다. 선생님 한분씩 돌아가면서 메인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 후반부에는 학생들과 그룹 지어서 대화를 나누는 식의 수업이다.
수업에는 영어를 아예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기초 표현 같은 것을 연습한다고 했다. 아내의 영어 수준에는 너무 기초겠지만 그래도 아내는 만족하고 사람들 만나는 게 즐겁다고 한다.
하루는, 아내의 회화 선생님들 중에 Jean이 내 이름을 말하면서 혹시 아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아내가 대답했다. "제 남편인데 무슨 일이세요?"
Jean은 무척 반가워하며, 자기 남편도 도서관 시민권 수업을 하고 있는 Owen이라는데...
"우리 남편이 너네 남편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남편이 시민권 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 너네 남편 얘기를 많이 해. 그래서 나도 궁금해."
우와, 이게 무슨 일이람. 아내는 그 순간 무척 황당(?)했다고 한다.
아내한테 이 얘기를 전해 듣는데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Owen이 나를? 왜? 내가 뭘 했다고?'
부모님 나이뻘인 선생님들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나도 Jean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Owen과 좋은 관계로 계속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니, 지금 정도의 관계라도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을 방법이 있기를 바랐다.
시민권 수업이 다음 달에 끝나니까 지금의 이 즐거움이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곳의 일부가 되고 있어.
옆집 Lodico 가족의 식사초대 (Mark, Sarah, Gavin and Grant)
날이 따뜻해지니 집 밖으로 동네 꼬맹이들 노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1층 서재(Den)에서 일하다 가끔 창 밖을 보면, 유치원도 안 가는 옆집 꼬마 Gavin이 장난감 차를 몰고 나와 집 앞 도로를 달리곤 한다. 얘는 꼬맹이 주제에 세단, SUV, 픽업트럭까지 자기 차가 벌써 3대나 있다.
날씨 좋았던 어느 날, 문 밖으로 나가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수줍어하는 Gavin은 나를 힐끗 보고 그냥 지나간다. 그런데 뒤따르던 Sarah가 나한테 오더니 말을 걸었다.
"날씨도 좋은데 이번 달에 우리 집에서 저녁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늦으면 꽃가루가 날려서 안 좋아요."
지난번에 우리가 집에 초대하고 난 이후 겨울을 지내느라 교류가 없긴 했다. 또 막내 Grant는 첫 돌도 안 지나서 우리가 먼저 보자고 하기도 조심스럽긴 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초대해 주어서 고마웠다. 날짜를 정하고 나니 굉장히 기대된다. 한국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 말고는 옆집과 같이 식사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서울엔 아예 이런 문화가 없지 않은가. 세은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혹시 준비해 갈 것이 있겠냐는 말에 Mark는 그냥 몸만 오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뭔가 좀 가져가야 하니 한인마트(장터)를 좀 가야겠다.
뉴욕 이웃이 우리를 불러 준 첫 식사 초대다. 미국 사람의 집에 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우리가 좋은 이웃으로 잘하고 있는 거겠지? 미국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나면서 감개무량하다. 아직 1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리에겐 벌써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다.
초대 선물로 Gavin이 좋아할 만한 초코파이와 바나나 우유를 한인마트에서 사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Mark와 Sarah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 와요. 어우, 이런 건 안 가져오셔도 되는데,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Sarah가 맞이하는 인사말이 정말 신기하게도 한국사람들이 하는 표현과 똑같다.
Mark와 Sarah는 미국 사람들이 집에서 신발을 신고 지내는다는 것과는 달리 신발을 벗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왼쪽에 작은 신발장이 있다.
Mark는 원하면 신발을 신고 있어도 된다고 했다. 자기 집에선 신발을 벗고 있지만 손님에게까지 신발을 벗도록까지는 하지 않는다. 이래서 미국에서도 남의 집에 들어갈 땐 신발을 신어도 되는지 아닌지 물어봐야 한다.
우리 집보다는 약간 작다. 여기 이사 올 때 우리 집도 눈여겨봤다고 하는데 지금 사는 집이 조금 작아도 마당이 넓고 평평해서 아이들 생각해서 이 집으로 샀다고 한다.
Mark는 집 마당에서 아이들이 커서 마당에서 야구하는 것을 항상 꿈꿔왔다면서 미국 사람들에겐 마당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경계에 있는 덤불 나무들을 좀 쳐내고 마당을 더 넓힐 거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Mark가 사냥으로 잡았다는 사슴 머리 장식이 걸려있고, 여행 다녔던 곳의 사진과 Sarah의 센스가 담긴 여러 장식들이 걸려 있다.
2층 계단 난간에는 고양이 두 마리(Pepper, Frankie)가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우리는 부엌 옆 작은 응접실에 자리했다.
(왼쪽) Lodico 가족의 저녁 초대. Sarah는 우리를 위해 일부러 쌀 요리를 했다. (오른쪽) Mark가 준 맥주. 한국에서 먹어 본 적 없는 맛인데 마트에는 없다.
Sarah가 저녁 식사에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이탈리아 음식 카프레제, 꼬치 바비큐 그리고 한국은 밥을 먹지 않느냐며 우리를 위해 쌀요리까지 했다. 아이들도 다 모여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다 하고 Mark가 맥주 좋아하냐며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지하실에 가더니 처음 보는 캔을 몇 개 가져왔다. "이건 마트에서는 살 수 없고 브루어리에 가서 받아와야 해." 술을 받아다 먹는다고?내가 잘 모르는 미국 문화구나. 옛날 한국 막걸리 받아먹는 느낌인 건가?
Mark는 나에겐 IPA 맥주를, 아내에겐 Hard Cider를 주었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둘 다 알코올 도수(ABV, Alcohol By Volume)도 6~8 정도로 꽤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각종 맥주들을 꽤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지금껏 먹어왔던 IPA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다. 향이 진해서 훨씬 맛이 좋다. 아내도 Hard Cider가 과일 탄산음료 같이 맛있다고 좋아한다.
"한국에선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월마트에서 Heineken이나 Coors 같은 것만 사다 먹었어요. 이거 정말 맛있네요." 뭔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느낌이다. 내일 당장 찾아봐야겠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아이들 이야기, 선생님인 Mark의 학교 아이들 이야기, 우리 집 집주인에 대한 이야기, Mark와 Sarah의 결혼 파티 이야기, 다른 이웃들 소식 등 내가 잘 몰랐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도 그동안 다녔던 여행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학교 선생님과 도서관에 보내기 위해 PPT를 만들고 있다고 했더니, Mark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면서 자기에게도 보내달란다.
어느덧 밤이 되어 집에 가려고 인사할 때 Gavin이 수줍게 나에게 오더니 나중에 뒷마당에서 같이 야구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언제든지, 네가 하고 싶을 때"
Mark는 아이가 요즘 야구에 미쳐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꼬맹이의 마음을 얻는 건 정말 어려운데 먼저 다가와 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집에 왔다. 바로 옆집이니 그냥 걸어오면 된다. 옆집과 부담 없이 어울리는 것은 나에겐 30년도 넘은 일인 것 같다. 그것도 미국에서 다시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Grant의 첫 생일을 축하해요"
식사 이후 며칠 지나서 생각해 보니 Grant의 이맘때였던 것 같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모르지만 이사 왔을 때 Sarah가 보내준 편지를 보면 왠지 지금쯤이지 않을까 했다.
부담 없이 기념될만한 선물을 하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처럼 돌잔치를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이의 첫 생일이니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면 좋겠지.
Sarah가 날짜까지 알려준 건 아니었어서 이미 지났을 수도 있는데, 설령 그렇더라도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뭐. 우리도 아기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선물을 전해주는 게 중요한 거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뉴저지 한인타운에 갈 일이 있어서 한국 스타일의 케이크 하나를 선물로 샀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케이크는 크림이 단단해서 두껍고 거친 식감인데 설탕을 정말 많이 넣어서 단맛도 엄청 강하다. 너무 달아서 그런지 유통기한도 굉장히 길다.
그런데 한인 빵집에서 파는 한국식 생크림 케이크는 유통기한이 짧아도 가볍고 부드러운 맛이 있고 과일이 얹어지니까 미국 사람들에겐 조금 색다른 맛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아하려나?
집에 오자마자 세은이를 데리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한국에서는 아이의 첫 생일이 아주 큰 잔치예요. 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도 같이 축하하고 싶어서 뉴저지에 간 김에 한국 스타일 케이크를 하나 샀어요."
Sarah는"고마워요. Grant 생일이 내일이에요."라며 정말 깜짝 놀라며 고마워했다. 운 좋게 늦지 않았다.
Grant의 생일에는 여러 대의 차가 옆집에 와 있었다. 아마도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겠지? 이런 거 보면 미국 사람들의 생활이 한국 사람들 사는 것이랑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며칠 뒤 Sarah는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다. Grant의 첫 생일 기념사진에 우리가 선물한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개구쟁이처럼 딸기를 하나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기념사진에 넣고 찍을 만큼 엄마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돌아가고 싶다. 미국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건 여행, 미국 직장, 영어공부 같은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골프가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지 않나 싶다. 그런 건 돈만 있으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진정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미국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일 것 같다. 여기 사람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도 없는 것이고, 저녁 식사 초대받는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