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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 순간 Sep 01. 2024

신혼일기 19- 결혼하고 알게 된 엄마의 역할

식탁에 앉아 8월 달 달력과 냉장고문에 적힌 식재료를 인했다.

이번주는 뭘 요리할까.

결혼 전에는 집에서 라면만 끓여 먹을 줄 알던 내가 이젠 2주 치 장보기 목록을 정리한다. 냉장고 문에는 남은 식재료가 적힌 보드가, 달력에는 당일에 먹을 메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포스트잇에 2주 치 장 볼 목록을 적고 즉시 마트로 향한다. 한 보따리 가득 안고 식재료를 정리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는데, 몸이 힘든 만큼 한동안 냉장고 안은 풍족해진다.

너무 많은 외식비를 쓴 달에는 냉동실에 소분된 식재료와 냉장고에 남은 요리로 더욱 맛있는 요리를 했을 때의 기분이란. 어찌나 뿌듯한지.


이 모든 게 2년 만의 일이라니.

"바빠죽겠는데 뭔 신부수업이야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엄마는 결혼 전부터 신부 수업을 받아야 사랑받는 아내가 된다고 말했었다. 집도 멀리 떨어지는데 매일 같이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볼 내 모습에 여간 불안한지 걱정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 밥 하나 할 줄도 모르잖아! 오빠한테 삼시세끼 라면만 차릴래? "
"어우 정말! 그때 되면 다 알아서 해!"
"그놈의 알아서 알아서! "


엄마는 집 안에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내 모습에 염려했었지만, 결혼하고 알뜰하게 식재료를 정리하며 밥도 잘 차려먹는 모습을 보다 보니 신기하다며 말한다.

것봐, 엄마가 신경 안 써도 나 이만큼 잘하고 있다고! 자만도 잠시, 집안일은 내가 겉으로 엄마가 했을 때 보이는 것 외로도 놓친 일들로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날이 더워서 쓰레기통 가득 알을 가버린 날파리들

쌀통 안에 생긴 쌀벌레들


혼자서는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으며, 오빠와 역할을 분담해야 겨우 깨끗한 집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문득,


엄마는 천하무적인가?


뿐만 아니라 평상시 손도 안 댔던 나물 반찬마저 소중해졌다. 명절 때 시할머니네 집으로 모두 모여서 각자 차려 온 음식을 함께 먹곤 한다. 먹고 남은 음식들은 각자 소분해서 챙겨가는데,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나는 나물 반찬을 잽싸게 가져간다.


"이거 제가 챙겨도 되?"
"어우 물론이지, 나물 좋아하는구나?"

나물반찬이 명절음식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따듯한 밥에 나물을 가득 넣은 김밥이 어찌나 맛있.

비로소 결혼하고 나서 엄마의 역할을 알게 되고, 이젠 엄마와는 식재료를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00가 엄마 닮아서 야무져"


엄마한테 인정받는 말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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