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17- 어딘가 이상한 그 남자의 잠버릇
꿈속에서 뭘 하길래 그럴까?
침대로 모인 고요한 시간. 대화를 나눴던 잠들기 전의 시간도 이제 3년 차가 되고 나니 둘은 파이터가 되었다. 한 명이 시작된 공격에 마치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서로 덩굴처럼 몸싸움이 시작되는데 시간이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걸 느낄 경우 한 사람이 말한다.
"안 괴롭힐게. 이제 자자."
"아니야. 내가 안 괴롭힐게 자자"
"아니야!! 내가 괴롭혔던 거야!"
2차전 시작. 대화의 포인트는 자신은 괴롭힘을 당하는 자가 아닌 괴롭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취지에서 절대 봐주지 않는 레이스가 시작된다.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어버린 시간. 나의 눈은 반쯤 풀려있다. 반면 야행성인 오빤 실실 웃고 있으니. 내가 진 싸움이다. 어쨌든 좀처럼 결론은 안 나고 한참 물고 늘어지는 별 의미 없는 투쟁 속에서 내가 외친다.
"우리 이러다 잠 못 자!!!"
오징어 게임 깐부 할아버지처럼 간절히 잠이 들기 위한 외침에 오빠는 작게 중얼거린다.
"알겠어. 오늘도 충분히 괴롭혔다. 나는 3초 만에 잠들어야지~00는 바로 잠에 못 드니까 아"
얄밉게 또 공격을 주는데. 이를 악물고 잠에 들어야만 한다.
나는 또 상상의 꼬리를 물고 공상에 잠기다 자야 하니까.
어느 장소이든 바닥에 눕자마자 바로 잠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들 때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작된 공상에 잠을 바로 들지 않는 부류. 그게 바로 나다. 잠도 잘 못 들뿐더러 새벽에 기본 2번 이상은 깨는 사람이기에. 뒤척거리며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든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슥슥 슥슥 슥슥 거린 후 스으윽, 마치 뱀이 방 안을 기어 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그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밤새 들려왔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나였기에 그 소리는 심히 거슬렸고 무시하고 자기란 어려웠다. 정체 모를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던 중. 잠들어 있는 오빠 이불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이불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움직였다.
소리의 원인은 다름 아닌 오빠의 무릎이었다.
문득 혼수를 마련했을 당시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00야 침대는 큰 거 사자"
이전 회사에서 기숙사생활을 했던 오빠가 본인 몸보다 작은 사이즈 침대를 사용했다고 들었다. 발을 편히 뻗을 수 없어서 무릎을 굽히고 잔다고 했었는데 그곳에서 3년을 다니고 이직했으니.
그래놓고 왜 무릎을 굽혀서 자는 거야 대체. 마음 아프게.
"여기 이제 기숙사도 아니야. 다리 편하게 내려서 자도 돼"
"나도 몰랐는데? 알겠어. 내리고 잘게"
말하면서 과연 고쳐질까라는 의문이 생기긴 했다. 역시나 한 밤중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굽힌 무릎이 스스로 내려올 수 있던 건 여름에 장만한 실크 이불이 미끄러워서였다. 내려오면 그만인데 스스로 또 무릎을 굽혀서 잔다. 누가 천장에서 들어 올리기라도 하나?
"안 내려줘도 돼. 어차피 다시 올릴 텐데 뭐."
"오빤 느껴져?"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됐나 봐."
그래도 새벽에 무릎을 굽히고 자는 남편을 어떻게 모르고 잘 수 있나. 잠이라도 편히 잤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내려줘야지. 몇 번 일어나서 내려주다가 요령이 생겨서, 내 왼쪽 다리를 오빠의 무릎 아래에 껴서 밑으로 내렸다. 간편하니 좋았다.
그렇게 몇 번이 곤 엄마의 마음으로 내려줬지만 어느 날은 새벽에 눈이 떠져선 적막 속에 들리는 그 소리가 거슬렸다.
행동에 짜증이라도 베인 듯이 왼쪽 다리를 껴고 홱 내렸더니 오빠가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00야 내려쥴거면 살살 내려줘요. 깜딱 놀랐잖아요.."
"어머.. 미안미안"
아차 싶었다. 내가 왜 그랬지?
요 근래 오빠와 함께 자꾸만 올리는 무릎에 대해서 의논하며 잘 때라도 묶어둬야 하는지 의논 중이다. 그런 와중에 잠버릇 하나가 더 추가됐다. 두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리고 잔다.
"참 특이하게 자네.."
하루만 그런 줄 알았지만, 한 달 넘도록 무릎을 굽히고선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던 이 사람. 꿈속에서 영웅이 되기 위한 훈련이라도 받는 걸까.
평상시 게임을 많이 하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잠은 편하게 자자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