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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 순간 Aug 19. 2024

신혼일기 16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소화기관마저 닮은 우리는 천생연분

지난 주말 예배가 끝난 후 남편과 함께 일본 라멘을 먹으러 갔다. 그 집이 후기를 찾아보니 덥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지만 별 신경 쓰이진 않았다. ‘맛만 좋으면 됐지 뭐. 얼마나 덥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상가 지하에 주차 했다.


 1층으로 올라가서 위치를 찾던 중 주방 쪽으로 열린 라멘 집 문을 발견하고 빙 돌아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총 4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먼저 온 커플 말고는 없었다.      


에어컨 최저 온도입니다. 음식 뜨겁게 나가기 때문에 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앉아서 둘러보던 중 눈에 들어온 글귀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에어컨 두 대 아래로 바람개비 같은 날개가 휙휙 돌아가고 있었다.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 강도의 중 정도 되는 바람세기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이 먼저 나온 라멘을 조용히 먹고 나갔다. 그 사이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꽉 채웠다. 우리가 시킨 라멘이 나왔을 때 젓가락으로 휘휘 젓자 뜨거운 라멘의 공기가 얼굴을 뒤덮었다. 몇 입 먹고 나서부터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말없이 둘 다 들이키듯 국물을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맙소사. 뭔 식당이 이리 더워.”

“카페 꼭 가야 하지?”

남편이 지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에 고민하면서 목을 한 번 훑었더니 땀이 흥건했다.

“시원하잖아. 땀 좀 식힐 겸.”

“그래. 그렇지. 가야지.”

나의 똥고집이 문제지. 아침에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 노선이 변경되는 건 원치 않았다.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 차를 타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집에 가자. 00아. 옷도 불편하고 지쳤어. 집에서 커피 내려마시자! 어제 커피 머신도 청소했는데.”

“아 맞네!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러다 집으로 가던 도중 살짝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빠 핸드폰 네비 시간을 힐끔 보니, 집까지 거리는 5분 거리였다.

“배가 좀 아픈데?”

“조금만 참아 5분밖에 안 남았어.”


오빠가 네비를 힐끔 보곤 대답했다. 나 역시 5분 정도는 충분히 참을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신호가 아주 짧은 간격으로 찾아왔다.


“진짜, 급한데?”


세상에. 3번째 신호에서는 온몸에 닭살이 돋는데, 생전 처음 경험했다. 다리에 오돌토돌한 영계백숙처럼 올라오는데 오빠한테 기겁하며 말했다.

“어머, 나 닭살 돋은 것봐.”

오빠는 끅끅 대며 웃더니 안색이 확 굳어졌다.

“아 잠깐만. 나도 배 아픈데?”


자,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5분을 넘기면 큰일이다.


겨우 3분이 지나서 집 앞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차량 안은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제 4번째 신호를 받고 있었다. 식은땀이 줄줄 나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먼저 올라가. 오빠는 주차하고 올라갈게. 근데 가능하면 우리 층 도착하면 지하 2층 좀 눌러 줄 수 있어?”

“노력해 볼게. 내 거 양산이랑 가방 좀 들고 와줘.”

대답하던 도중 초록불로 바뀌었는데 오빠가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았다.

쫌 있다 찾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갑자기 뭔가를 찾는 오빠를 보며 버럭 소리쳤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방지턱에서 둘의 표정은 더욱 굳어갔다.



아파트 동 앞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엉기적 걸음으로 우리 집 층수를 눌렀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허리를 굽은 채 유난히 오늘따라 느린 엘리베이터 층수를 올려다보았다.

"미쳐버리겠네"

혼잣말이 절로 나오던데. 우리 집 층수에 멈춰 서자 오빠가 부탁했던 지하 2층을 연달아 눌러댔다. 그렇게 겨우 내가 먼저 한숨을 돌렸다. 화장실에 있는데 오빠가 다급하게 누르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내가 있는 화장실 문 앞에서 후다닥 지나가는 소리. 이내 안방 화장실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 찾아온 정적.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세상이 참 평화롭다는 걸 느꼈다. 느긋하게 안방 쪽으로 가보니, 화장실 앞에 오빠의 허물 벗듯 벗어진 옷들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애!”

안에서 오빠가 소리쳤다. 잠시 후 밖으로 나와 오빠와 얼굴이 마주쳤다. 한참을 웃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지?”

“라멘이 잘못됐나?”

“아니야. 더운데 갑자기 기름진 거 들어가서 그래. 근데 갑자기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에 우리가 화장실 1개였으면 나한테 먼저 양보했을 거야?”

이 와중에 오빠는 이런 상상을 하고 있다니. 잠시 고민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먼저 신호 왔으니까. 나 먼저지.”     


우린 소화기관으로부터 맺어진 부부가 아닐까. 연애 시절 때부터 우리 둘은 방광도 작았다. 영화를 보기 전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영화가 끝난 후 각자 ‘갔다 와’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영화 3시간 러닝타임일 경우에는  물 마시지 않기. 마시지 않아도 영화 시작하기 전 서로 ‘안 다녀와도 돼?’라고 묻는다.

유럽 신혼여행을 갔을 때에도 창문 쪽으로 예약한 탓에 안 쪽에 앉은 손님한테 '저희 때문에 불편하실까 봐 혹시 안 쪽에 앉으실래요?' 이런 민폐까지 보였다. 앞으로 절대 창가 쪽으로 예약할 일은 없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최근에 했던 대장내시경은 이상 없었는데 이제 비뇨기과를 가봐야 하나? 그럼 의사분께서 이러시려나?  

   

"부부가 둘 다 방광이 작네요. 방광이 똑같아요. 이것 참. 천생연분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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