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톡을 하지 않는데요.”
카톡과 관련하여 오랜 기간 지속된 나의 고백과, 매번 거의 동일하게 이어지는 상대방의 반응은 이렇다.
“예? 아.... 그러세요... ”
대부분의 경우 이쯤에서 대화는 중단되고, 카톡을 하지 않는 사람이 취해야 할 다음 행위에 관한 안내가 이어진다.
그러나 때로는 반드시 꼬리말이 뒤따르기 마련.
“예? 왜요?”
나의 대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방해받기 싫어서요.”
“아, 예...”
하지만 그 이후의 표정들이 남긴 여운으로 미루어 그들은 나에 대해 대략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듯하다.
체념하자. 별종이다.
아니, 대체 무슨 방해를 얼마나 받는다는 거야?
요즘 같은 세상에 카톡을 안 하고 불편해서 어떻게 살지? 나라면 그렇게는 못 할 텐데.
사실 1번의 생각을 지닌 상대는 내가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을 때 더 이상 묻지 않는 부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끔씩 “왜요?”라는 질문 이후에도 이런 눈빛과 조우하게 되는 걸 보면(이는 전적으로 나의 눈빛 해석에 의거하지만) 이들은 무언가 자신들의 1번 생각을 다시금 확신하고자 내게 되묻는 느낌이다.
그러니 결국 나의 ‘무카톡 생활’에 대한 반응은 크게 2번과 3번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글들도 2번과 3번 생각에 대한 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카톡을 하지 않는 이유를 글로 정리해 보기로 결심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작업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앞으로 계속 카톡 없이 생활할 것인지, 아니면 카톡을 시작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카톡을 하지 않는 이유를 정돈해 보기로 결심하게 된 또 다른 계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한다. 몇 해 전, 나는 모 신문사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담당 기자께서 내 글이 채택되었는지의 여부를 카톡으로 알려주겠노라 했다. 내가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기자는 “예? 왜요?”라고 즉각적으로 물었다.
신속함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다행히 기자가 아니었던 나는 “방해받기 싫다”는 예의 정해진 대답으로 응수했다.
기고한 글의 게재 여부가 결정되고, 그 기자와 다시 연락을 취하게 되었을 때 그는 내게 카톡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 이유를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채택된 나의 글보다 오히려 내가 카톡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해 더한 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나는 언제고 시간이 되면 한 번 써보겠노라고 잠시 이 건을 유보해 두었고, 결국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간 동일한 질문과 대답을 또다시 몇 번이고 거치면서, 그때 기자분이 내게 했던 권유가 불현듯 떠오름과 동시에, 2024년에 접어 들어서도 카톡을 계속 하지 않을지, 혹은 카톡을 시도해 볼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심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