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
“까꿍!”
“까꿍!” “까꿍!”
소리 자체가 듣기 싫어서는 아니다.
카톡의 소리는 매우 귀엽고 재미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카톡 소리를 들었던 건 지하철 안에서였다.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에게 “까꿍!”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려서, 당시 카톡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있던 나는 필경 어느 일 하는 엄마가 자기 아기의 목소리를 녹음해 전화벨 대신으로 사용하는 것일 거라 제멋대로 상상하고는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그런데 차츰 여기저기서 동일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곧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소리라는 것과, 내가 “까꿍!”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기 목소리는 바로 “카톡!”이라는 소리였다는 것도.
이 새로운 매체의 소리가 내 예상을 너무 빗나가 버린 데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모두들 카톡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물살을 타던 그때, 나는 웬일인지 카톡을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때때로 조용한 곳에서 집중해 뭔가를 읽거나 쓰고 있을 때, 하염없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갑작스레 울리는 “카톡!” 소리는 가뜩이나 소리에 민감하고 필요 이상으로 놀라기를 잘하는 내게 “어유, 깜짝이야!”를 연발하게 한다.
그러나 누군가 카톡의 효과음을 크게 틀어놓았다고 불평할 수만도 없는 것이, 카톡의 생명은 무엇보다 신속한 발신과 답신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접하는 타인의 카톡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 일의 맥락을 끊어먹기 일쑤인 내가, 정작 나의 휴대폰에서 빈번히 카톡음이 울린다면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묵음으로 전환시켜 버리겠지.
그러나 이것은 문자가 아닌 카톡이다.
가능한 한 신속히 답하는 편이 서로에게 예의인 매체인 것이다.
혹시라도 폰을 꺼둔 채로 작업하다가, 뒤늦게 카톡을 받았음을 알고 상대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하느니, 내 입장에선 차라리 이 신속함의 상징인 매체와 처음부터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카톡을 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이 이유는 곧 이어질 두 번째 이유와도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