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서 간질간질 기침이 나오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마치 깃털로 목구멍 깊숙한 곳을 약이 오르게 간지럽히는 기분이다. 기침은 꼭 사람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나오기 시작한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멈출 듯하다가 내가 간 줄 알았지라고 약을 올리듯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온다. 안 하려고 침을 꼴깍 삼키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해 봐도 기침이란 녀석은 어딜 도망가려고 하냔 듯이 터져 나온다. 참을수록 더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그럼 나는 가방에서 일분일초라도 빨리 사탕을 찾아서 꺼내 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방을 헤집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침은 연거푸 나오고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러다 가방 구석에서 오래된 사탕하나를 발견하곤 미친 듯이 포장을 까서 온몸에 독이 퍼지기 전에 해독약을 마시듯이 얼른 사탕을 입에 문다. 사탕이 입속에서 천천히 녹으면서 침이 고이고 마른 목구멍에 촉촉이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다. 이제야 좀 안심이다.
이런 기침을 한지 벌써 한 달째다.
한 달 전 감기를 앓고 나서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보단 많이 나아지기도 했고 약도 계속 먹을 수 없기에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차를 마시면서 목이 마르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꼭 기침이 나오면 안 되는 곳일수록 기침이 나오니 이건 환장할 노릇이다.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데 사랑은 모르겠고 기침은 정말 숨길 수 없다. 다른 곳이 아프면 좀 참으면 되는데 기침이란 녀석은 한 번 시작하면 나의 제어망을 벗어난다.
기침을 하면 주변의 눈총이 따갑기도 하지만 나도 매우 괴롭다. 우선 조절이 어렵다. 방귀는 조절이 되지만 기침은 참을수록 억눌렸던 분까지 더해서 몰아치듯이 나오고 심지어 더 크게 나온다.
그날은 역 앞에서 회사까지 들어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출근길의 버스는 만원이었고 난 밀리듯이 버스에 올라타 앞 좌석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그런데 또 눈치 없는 기침 녀석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잇치"
다행히도 이번 기침은 한 번에 끝났다.
더 이상 기침이 나올 기미가 없기에 다행이구나 했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앞 좌석에 앉은 마스크를 끼고 화장기 없는 메마른 나뭇잎 같은 여자가 나를 홱 째려보는 거다.
순간 내가 대단히 잘못한 건가 싶다가도 기침 한 번 한 게 이렇게 무시당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째려본 걸로 성에 안 차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불쾌하고 화났는지 똑똑히 보라는 듯 가방을 거칠게 뒤지더니 휴대용 손세정세를 꺼내서 또 거칠게 손바닥에 탁탁 쳐대면서 손에 문지르더니 그것도 모자라 버스 창문을 휙 열어젖히는 거다.
그 일련의 과정은 마치 나를 위한 일련의 모노드라마 같았다. 짧지만 강렬한 모노드라마를 봤으니 그 대가로 나는 그녀 앞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양손으로 앞 좌석을 가로막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곤 두어 차례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쥐어짜 내서 더 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째려봤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뭐 어쩌라고 식의 눈인사를 했다. 버스는 세균덩어리 그 자체다. 기침하는 사람은 버스타지 말란 법이 있었던가. 그렇게도 세균에 민감하면 자전거를 타던지 택시를 타던지 아니면 자가용으로 이동하면 될일 아닌가?
이 모든 능력이 안된다면 조용히 버스를 타고 가면 될 일이다.
버스에서 기침한 번 했기로서니 이런 모욕적인 눈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모질게만 느껴졌다.
결국 내가 먼저 내릴 차례가 됐는데 욕한 번 시원하게 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그럴 일로 나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내릴 때까지 맹렬한 눈으로 쏘아붙이고는 과거의 해프닝으로 그녀를 보냈다.
그녀는 오늘 하루도 주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세균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마스크는 코로나 이후 외출 필수템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마스크가 없으면 마치 발가벗고 나간 것처럼 불안하다. 가방엔 언제 어디서고 바를 수 있는 손세정제가 충분히 있는지 체크한다. 바닥이 보이지만 오늘 쓰기엔 충분한 양이다. 집밖으로 나서는데 오늘도 회사로 출근할 때까지 타인들과 웬만하면 부딪히지 않고 가기만을 기도한다. 코로나 이후 세균에 대해서 더 민감해진 건 사실이다. 주변에선 이제 코로나도 지났는데 마스크 그만 써도 되지 않냐며 너무 유난스럽다는 뉘앙스로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세 번의 코로나를 겪어본 그녀로서는 걸리고 나서 후회하느니 철저하게 예방할 수 있을 때 예방하는 게 더 현명한 거 아닌가 생각한다. 버스에 올라타서도 환기가 잘 되는 맨 앞 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한 정거장씩 지날 때마다 인간들이 한 무더기씩 탄다. 아.... 제발 내 앞에는 아무도 안 서길 기도한다. 그러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역 앞에 버스가 서자마자 역에서 밀려 나온 인간들이 쓰레받기에 쓸려서 쓰레기통으로 쏟아지듯이 우르르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역시나 그녀 앞에도 조심성 없어 보이는 여자가 섰다.
"에엣취"
그녀 앞의 여자는 버스에 타자마자 가차 없이 기침을 해댄다.
심지어 마스크도 끼지 않고 기침을 하다니 기본 매너가 없는 몰상식한 여자구나 생각한다. 뭐라 말도 못 하고 눈으로 있는 힘껏 째려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본다. 그런데 이 여자 또 기침을 두 번이나 더 해댄다. 감기 걸렸으면 마스크를 쓰던지 택시를 타고 가던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째려봐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눈빛을 발사하는 게 어이가 없다.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지길.
회사들이 밀집한 곳이 다가오자 이 여자도 슬슬 내릴 채비를 한다. 골칫덩이가 드디어 사라진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는 게 오늘 하루는 조심해야겠다.
내일부턴 출근시간이 붐비지 않는 새벽에 출근해야겠다 다짐하는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