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는 오늘도 출근길에 아파트 뒤편 풀밭에 떨어져 있는 음식물쓰레기를 한참 보다가 그 위편의 아파트 창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도대체 어떤 자식일까? 이런 일말의 양심도 없는 놈의 면상을 봐야 하는데...'
그러다 시계를 보곤 바쁜 출근시간에 너무 여유를 부린 것 같아 홧김에 발을 몇 번 쿵쿵거리다가 잰걸음으로 출근을 재촉했다.
태수는 요새 아침 출근길에 한 번, 저녁 퇴근길에 한 번 아파트 뒤 편 화단에 떨어져서 흩어져 있는 온갖 음식물쓰레기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왜냐하면 태수의 집이 아파트 일층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떨어진 곳이 태수의 집 주방과 다용도실 쪽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태수는 다용도실에 모아둔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다용도실에 나갔다가 창문의 방충망에 묻은 빨간 액체가 눈에 들어왔다.
'방충망에 묻은 이건 뭐지?'
자세히 보니 김치 찌꺼기였다.
그러다 우연히 그 아래를 보니 온갖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바나나껍질, 김치 쪼가리, 닭뼈다귀...
그리고 치킨박스가 처참히 떨어져서 마치 투신 자살한 시신처럼 느껴졌다.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음식물을 투척한 거야.'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진 태수는 아내를 불러 이 처참한 광경을 보여줬다.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체 누가 쓰레기를 투척하는 걸까? 정말 위에서 버린 거야? 라며 의심의 말들을 뱉어내자 태수는 당연히 위에서 버린 거지 라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굳이 현관을 나가더니 몇 분 뒤에 뒤편의 휀스를 넘어 화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때면 태수는 평소보다 행동이 두 배는 잽싸진다. 태수는 음식물 쓰레기와 위 편의 집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쓰레기를 핸드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러곤 집으로 들어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가동 101호인데요 주방 쪽 화단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요. 누군가가 쓰레기를 투척해서 쌓인 거 같아요. 저희 집이 1층이라 창문으로 냄새가 들어오는데 좀 치워주세요."
그렇게 관리인이 와서 쓰레기를 정리해준 뒤에도 쓰레기는 꾸준히 쌓여갔다. 태수는 출퇴근하면서 오늘은 쓰레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마저 생겼다. 관리사무소에 번번이 말하는 것도 껄끄럽기도 해서 참다 참다 눈에 너무 거슬리기 시작하면 전화를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관리소에서도 바로 치워 줄 때가 있고 전화를 몇 번해야 치워줄 때도 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태수는 관리소에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좀 쓰레기 버리지 못하게 조치 좀 취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호통 같은 민원을 넣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엘리베이터 문 앞에 경고 공문이 붙었다.
'쓰레기를 투척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발각 시, 고발 조치하겠습니다! '
라는 다소 강한 어투의 문구가 들어간 경고문을 엘리베이터와 층별 복도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경비아저씨도 태수 부부만 보면 시시때때로 확인하고 있다고 보고까지 해주신다.
"이제 깨끗하쥬? 제가 매일 확인하고 있어유."
"아, 네 감사합니다. 요새도 계속 쓰레기 버리나요? "
"아뉴, 경고장 붙이고는 안 버리는 거 같아요."
"아,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아내는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며 태수를 바라보니 태수도 매우 흡족한 미소를 띠며 경비아저씨를 바라봤다.
"여보, 이제 더 이상 안 버리겠지?"
"모르지. 또 버릴 거 같은데. 어떤 놈인지 면상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게,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양심 없이 버릴까? 나도 궁금한데 알 길이 없지 뭐."
"그나저나 이제 보일러 환기통이 문제야. 산 넘어 산이라더니. 아휴 1층살이가 쉽지 않네."
보일러 환기통은 지난겨울 2층 환기통 주변의 수분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점점 커지다가 날씨가 풀리면서 그 고드름이 아래로 떨어져서 1층 태수의 환기통에 직격탄으로 맞아 환기통이 구겨지면서 밖으로 나가야 할 연기가 배출이 안돼서 집안으로 들어와 가스에 질식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그 뒤로 태수는 겨울이면 위층의 환기통에 고드름이 어는지 유심히 지켜보다가 고드름이 적당히 성장해서 낙엽처럼 질 시기가 오면 관리소에 전활 걸어 고드름 제거 작업을 요청한다.
그러면 관리소에서 사다리를 가져와서 마치 벌통을 제거하듯이 고드름을 열풍기로 녹여서 떼어간다. 지금 태수는 그 고드름 얘기를 하는 거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는 12월의 중반에 접어드니 고드름이 얼까 벌써 고민하는 태수이다.
"참, 저녁이면 윗 베란다 밖으로 물 버리는 인간도 있잖아. 우리 아파트엔 별별 인간들이 많아. 내가 다 누군지 잡아내고 싶은데 한 놈도 못 잡았네"
"맞네. 물 투척 집도 있지. 쓰레기 투척하는 집이랑 같은 거 아냐? 도대체 무슨 물을 시간이 되면 주기적으로 버리는 걸까?"
"아, 그거 합리적 의심이네. 앞으론 물을 버리고 뒤로는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지도."
저녁 어스름한 시간 아내와 잠깐 산책을 하러 나온 태수는 밤이면 나와서 아파트 앞 주차장과 인도를 빠른 걸음으로 지그재그로 걸으며 한 손엔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다른 손엔 기다란 수건-닳고 달아 수건의 돌기들이 모두 떨어져서 너덜너덜한-을 들고 연신 땀을 닦으며 신발을 질질 끌듯이 걷는 할아버지와 아저씨의 경계를 오가는 할저씨가 오늘도 어김없이 운동하러 나온 모습을 마주쳤다.
"저 아저씨 진짜 특이하지 않아. 여기 아파트 단지도 넓고 공원도 많은데 굳이 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주차장 앞에서 운동을 할까?"
라며 아내가 묻자,
"며칠 전 아침에 출근하는데 아저씨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연기를 내쪽으로 보내길래 걸으면서 담배 좀 피우지 마세요. 여기 금연 아판튼거 모르세요? 하면서 얼굴 봤는데 저 아저씨였어."
"헐, 진짜? 근데 그냥 앞질러 가면 되지 뭘 그런 소릴하고 다녀."
"내가 그것도 몇 번 봤는데 참다 참다 한 거야."
"그랬더니 뭐래?"
"길게 말해 뭐 해. 난 내 말만 하고 앞질러 갔어."
"저 아저씨는 운동하는 모습도 참 거슬리는데 아침 출근길도 민폐 캐릭터였네."
"그나저나 쓰레기는 어느 집에서 버리는 걸까? 그걸 잡아야 하는데... 내가 직접 cctv라도 달아서 볼까?"
며칠 후, 집으로 cctv용 거치대가 배달되어 왔다. 태수는 거치대를 이리저리 만져가며 플렉시블 하고 단단한 게 아주 튼튼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태수는 애들 방에 거치해 둔 cctv를 시험 삼아 보일러실 창문밖으로 설치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으나 아내는 괜히 어설프게 했다가 떨어지면 멀쩡한 cctv만 고장 나는 거 아니냐고 만류를 했지만 태수는 끝내 고집을 피워서 힘들게 cctv를 설치했다. 그리고 내심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려 보라며 언젠가 내가 범인을 잡을 거라며 의기양양한 자세를 취했지만 아내는 어째 걱정스럽기만 했다. cctv를 설치한 뒤론 태수는 아침저녁으로 cctv가 잘 붙어있나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고 기다리던 쓰레기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태수의 관심도 식어갔고 cctv는 홀로 불침번을 서게 됐다.
어느 날 겨울바람이 몹시 불던 밤이 지나고 새벽 출근길을 나서던 태수는 무언가 쎄한 느낌에 cctv를 봤더니 거치대는 휘어서 아래로 머리를 떨구고 있고 그 아래로 cctv는 처참히 떨어져서 깨져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아냥 거리듯 사발면 껍데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태수는 짜증이 올라왔지만 화를 억누르고 cctv녹화본을 열심히 되돌려 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발면이 떨어지는 순간은 찾을 수 없었다. 쓰레기 투척범은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태수는 다시 모바일 쇼핑으로 cctv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태수의 오기는 더욱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