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MD의 일 04화

봉 마르셰는 파리를 혼자 갖지 않았다

1장_MD의 일 ② 직업정신

by 머큐리

1) 줄탁동시[啐啄同時]


내가 입사한 2002년만 하더라도 소매유통업종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매장 판매직은 고된 일로 손꼽혔으며, 관리직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공정과 차별, 비리, 부패, 갑질에 대해 적극적 경계보다는 소극적 인정이 주류였다.

분위기의 반전은 외부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정과 정의를 갈망하는 시대적 사명에 의해 사회가 점차 변화하면서 MD라는 직업이 속한 소매유통업에도 상당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기업들은 납품사들을 협력사라는 명칭으로 존중하려는 자세를 취했으며, ‘상생’을 강조했다. 최대 90일이 넘던 대금 지급 기일을 보름 이하로 축소하기도 했다. 매장 내에서 직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도 진행되었다.

한편 e-commerce로 급격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MD라는 직업의 위상이 높아지는 현상도 벌어졌다. 전통 오프라인 소매기업들과 경쟁을 시작한 신생 e-commerce기업들은 경쟁전략 중 하나로 MD의 차별적 상품 기획을 강조했는데, MD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도 신생 기업들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회환경과 시장경쟁이라는 외부로부터의 변화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MD 일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직업이 되려면 대세에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호응하여 보다 큰 변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안팎으로 쪼아야 껍질이 깨지게 마련이지만 밖에서 쪼는 힘은 그저 돕는 역할이지 않은가. MD로서의 직업정신을 세우는 과정은 안에서 눈을 뜨고, 자세를 잡아 가는 과정을 통해 점차 진척될 것이다.



2) MD라는 직업의 역사적 근본


현 세대에 출현한 명칭인 MD의 직무를 상인(商人)이라는 오래된 단어로 치환하면, 그것은 거의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고색창연한 업業이다. 상거래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오래된 통사이자 가장 유명한 역사서에서 상업이란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2천 년 전의 중국, 한나라 시대이다.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8)의 사기 열전 70편 중 제 69편인 화식열전의 한 대목을 보자.


대체로 관서 지역에는 재목, 대나무, 닥나무, 삼, 검정 소, 옥석 등이 풍부하고, 산동에는 물고기, 소금, 옻, 실과 미녀가 많다. 강남에는 녹나무, 가래나무, 생강, 계수나무, 금과 주석, 납, 단사, 무소, 바다거북, 진주, 동물의 이빨과 가죽 등이 많이 난다. 또한 용문과 갈석의 북쪽에는 말과 소, 양, 모직물과 가죽, 짐승의 힘줄과 뿔 등이 많이 난다. 구리와 철은 마치 바둑알을 펼친 것처럼 천리 사방의 여러 산에서 나온다. 이것이 각지 산물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농부들은 이 물건들을 생산하고, 도매상인들은 이것들을 시골에서 도시로 운반하고, 수공업자들은 가공하고 상인들은 유통한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가격의 조정이 이루어진다. 싼 물건은 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높은 물가를 낮춘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의 직업에 종사한다. 이는 마치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다. 모든 물건이 자발적으로 아무런 강요도 받지 않은 채 생산되고 필요로 하는 곳으로 움직인다.


중국 고대사에 나타난 한자의 어원에서도 상업(商業)의 본질을 유추해볼 수 있다. 기원전 11세기 상(商)나라(은(殷)나라라고도 불리는)를 무너뜨린 주나라 조정은 반란을 걱정한 나머지 유민들을 먼 지방으로 쫓아낸다. 정착할 땅을 확보하지 못한 유민들은 떠돌며 가축을 거래하여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가축을 거래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상나라 유민은 ‘상인(商人)’이라는 한자의 유래가 되었다. 이동하며 각 지역의 물자를 거래하는 중개자로서 상인이라는 직업군을 규정한 것은 이미 3천 년 전임을 알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물자를 움직여 거래를 만들어내는 업業, 상업과 상인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상업은 물처럼 언제나 이동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도 늘 변화한다. 유동성과 변화를 본질로 하는 상업에 있어 상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품을 독점하거나, 자본을 집중하여 한 곳에 고정하여 붙들어 매는 것이 아니라 원활한 연결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MD의 일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MD라는 명칭의 직업이 생겨난 때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50년이 되지 않으며, 상용화된 것은 20여 년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저 먼 곳을 헤매는 이유는 직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정신' 혹은 '직업관'을 수립하기 위해서이다. 명쾌한 정의, 규정이 어려운 것은 현대 사회에 새로이 생겨난 직무들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수천 년간 공존한 직업들과는 다른 상황이다. 하물며 뚜렷한 직업정신을 수립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MD라는 직무가 상품의 유통/판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간 조정자인 것은 틀림없다. 한국고용정보원(www.work.go.kr)에 따르면 MD는 ‘상품기획전문가’를 의미한다. 「중장기 인력수급 수정전망 2015~2025」(한국고용정보원, 2016)에 따르면, 상품기획전문가는 2015년 약 2만 5백 명에서 2025년 약 2만 4천 9백 명으로 향후 10년간 4천 명(연평균 1.9%)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직업의 위기 속에서도 지금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희망적이다.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인공지능이 성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인원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소매판매업 400조를 취급, 관리하는 실무자들이라는 점에서는 한껏 중요한 위상을 엿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MD의 업무가 대체되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앞에서 언급한 다보스 포럼이 개최된 지 불과 2개월 후 구글의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압도했다. 무려 인간계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둔다는 이세돌 9단이다. 2016년 3월의 일인데, 이후 인공지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위기가 몰고 올 결과는 훨씬 빠르고 심각하게 다가올 것이다. 게다가 소매유통업에서도 생산자가 중간 판매 채널의 간섭이나 조정 없이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지 오래이다. 이러한 때 MD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MD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관점의 변화 혹은 약간의 이동만 필요할 뿐이다. ‘커머스의 미래가 (기술이 주도하는)효율성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YES’에서 ‘글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1위가 독식할 것이 분명한 효율성의 시장이 압도적인 규모로 이슈를 장악하고 있지만 감성이 지배하는 시장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감성의 시장은 승자만 존재하는 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제각기 존재하는 시장이다. 온갖 상품뿐만 아니라 이야기와 사람들이 모여든 시장은 독점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장의 핵심 동력은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MD라는 직업의 역사적인 근본을 찾기는 어렵지만, 단어의 어원은 찾을 수 있다. MD에 관련한 용어들을 정리해보면 Merchandise, Merchandiser, Merchandising, Merchant와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어는 Merchant이다. Merchant는 상인 또는 상거래를 의미하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Hermes)에 연원을 두고 있다.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는 장사하다는 뜻의 라틴어 mercari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헤르메스는 상인의 신이면서 동시에 도둑의 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의 영어식 이름은 머큐리(Mercury)이다. 파생하여 나온 Merchandise는 상품 또는 물품을 의미하며, ~er이 붙어 상품 기획자로 불리지만, 사실 맥락을 그대로 유지해보면, 결국 상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취향의 지평을 넓히는 소비자들에게 ‘오직 거래만 존재하는 시장’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인간 MD역시 감성과 가치의 관점으로 직무를 재정의해야 한다. 효율성의 영역은 인공지능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신화의 헤르메스처럼 날개 달린 샌들과 요술봉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보다 신묘한 디바이스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은가. 필요하다면 나무 연필이나 만년필, 종이 수첩을 준비해보는 것이 그리 유난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런 상품 기획자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길 원한다면 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소매업에 있어 (인간)MD들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영향력이 큰 만큼 과정을 잘 만들어야 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많은 MD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결과 중 일부인 실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3) 시장 너머의 길로


극단적인 사치와 무절제한 소비를 조장한다고 비난 받았던 19세기 봉 마르셰를 떠올려 보면 욕망이 들끓었을지언정 ‘인간’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봉 마르셰의 창업자 부시코와 마르그리트는 젊은 시절의 간난신고를 잊지 않고 박애주의를 실천했고, 그들이 평생 이룬 기업은 창업자 사후에 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봉 마르셰에서 수련한 직원들 중 쥘 잘뤼조는 프랭땅을 창업했고, 마리 루이즈 제이는 사마리텐을 꼬냑과 함께 공동 창업했다. 프랭땅, 사마리텐을 비롯하여 루브르, 라파예트, 베야슈베(BHV)와 같은 백화점들이 봉 마르셰와 함께 파리의 곳곳에서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어깨를 견주었다.

봉 마르셰는 파리를 혼자 갖지 않았다. 파리의 시민들이나 유럽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서로 다른 모습의 백화점들을 두루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원들의 봉 마르셰는 창업자의 희망과 달리 세계전쟁과 냉전을 견디지 못했다. 현대의 봉 마르셰는 명품 브랜드만 70개 이상 소유한 LVMH그룹의 아르노 회장이 독점적으로 지배하여 경영하고 있다.


노드스트롬은 현 경영진의 고조부인 요한 노드스트롬이 스웨덴에서 빈 손으로 건너온 지 십여 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차린 구두가게에서 시작했다. 가게를 열 무렵, 요한(한참 후에 미국식 이름인 존으로 개명했다)은 심지어 영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살이 박힌 손으로 손님의 발에 맞는 구두를 찾아와 신겨주는 것에만 집중했다. 노디스들은 그로부터 100년 넘게 사람의 발을 손으로 감싸 쥐며, 봉사(Service)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기업 정신으로 표방하고 있다. ‘서비스의 노드스트롬’이라는 명성은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에 가깝다. 물론 노드스트롬도 거대한 폭풍에서 비껴나지 못하여 휘청거렸지만 다시 살아나 반등하는 모습이 더욱 극적인 스토리를 더했다. 가문의 계승자들과 노드스트롬의 직원들 모두를 일컫는 ‘노디스’들은 이들의 친구이자 고객들이 부르는 친근한 이름이다. 지역에서 사랑받는 노디스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은 ‘고객’이다. 마케팅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진부한 단어, 바로 그 단어와 동일하다.

* (좌) 노드스트롬 시애틀 플래그쉽스토어 / (우) 노드스트롬백화점의 창업 점포


시어스는 3대 CEO 존 워드 이후의 멍청한 결정들이 반복되면서 결국 망했다. 1973년 오일쇼크가 있던 다음 해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세워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고, 거인다운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매장을 계속 확대했다. 무려 3,500개의 매장이었다. 73년과 78년 오일쇼크에 휩쓸려 80년대에 접어들자 그들을 세계 최고의 자리로 올려준 미국의 중산층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시어스는 이때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손님인 중산층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부동산과 신용카드로 사업을 다각화하는데만 몰두했다. 본채 대들보를 빼서 별채를 세운 셈이다. 그나마 있던 주춧돌도 빼버린다. 효율이 떨어진다며 93년에는 100년 전통의 카탈로그를 폐지했다. 이웃(시어스의 고객, 미국의 중산층)의 불행을 무시하면서도 20년 넘게 살아남은 사실을 칭송해야할까? 미국 전역에 깔아놓은 무려 3,500개의 매장은 보기 흉한 과거의 허물이 되어버렸다.


시어스의 카탈로그


조선인 최초의 백화점 화신을 세운 박흥식이 반민특위의 1호 검거자이며,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친일 사업가(이경영 분)의 모티브라는 사실만으로는 화신의 몰락을 규정하지 못한다. 세계대전과 한국전쟁보다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박흥식이 조선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주었더라면 근현대사를 통틀어 몇 명 찾을 수 없는 존경받는 기업인(혹은 상업인)이 한 사람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은 일본이 조선에 폭력배를 보내주는 대신 쌀과 금을 가져가던 시기였다. 왕조 시절 거의 내내 빈곤했던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과의 거래(사실은 수탈이었던)로 인해 극빈층으로 전락하던 시대였다. 미츠코시를 닮은 휘황찬란한 백화점을 세우는데 몰입했던 젊은 사자 박흥식은 신태화의 은 투기 자금을 빌려주어 몰락의 씨앗을 심었고(본인은 이에 대해 낭설이라고 일축했지만), 결국 화신상회를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당대 최고의 금은상이자 근사한 양복점 쇼윈도까지 갖춘 종로 상권의 상징, 화신상회였다. 이름만 백화점으로 바꿔 달면 되는 찰나에 최남의 동아백화점이 등장한다. 최남의 별칭은 무려 ‘조선 상계의 기린아’였다. 하지만 승부사 박흥식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백화점 설립에 가장 큰 자금을 댄 권모씨가 등을 돌리면서 최남도 동아백화점을 박흥식에게 내주고 만다. 당시 조선상계에서 벌어진 승부는 대부분 박흥식의 승리였다.

총독부와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정경유착의 모델을 세우는 한편 전국에 화신연쇄점을 설립하는 신新유통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국에서 1천 명이 넘는 소상공인이 얼마 안가 도산했다. 일각에서는 승부사로서의 박흥식을 기업가의 모범으로 추앙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상업을 논해야 하는 21세기, 오늘에서는 반면교사일 뿐이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의 양반체제가 완전히 몰락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젊은 지식인’그룹과 ‘젊은 사업가’들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와 선망은 그저 단순히 영웅담에 대한 호기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기대는 현대에 들어 국가부도 사태와 IMF구제금융의 환난을 거쳐가던 시기의 대한민국에서 벤처인들에 대해 대중들이 가졌던 열망과 닮은 꼴이다. 결과적으로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도 닮은 꼴이다.

이들이 놓친 것, 혹은 외면한 것은 무엇일까?


(좌) 화신백화점 / (우) 박흥식


융합을 포기한 정치권력이 육상 실크로드를 단절시킨 후 상인들에 의해 해상으로의 연결을 모색한 장면을 포함하여 역사에 나타난 상업의 흐름은 끊어질 듯하다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상업은 기술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확장했고, 급기야 중단 없는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했다. 그렇게 약 2백여 년이 지났다.

무한 성장을 지속할 듯 달려나갔지만 더 크게 부풀려 확장하기 위해 무한 경쟁하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계의 인구는 늙어가는 중이며, 지구의 자연이 인간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상업의 흐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독점적 리테일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붕괴시키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바 있다. 그보다 더 거대한 독점이 e커머스, 혹은 전자상거래라 불리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커머스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현재의 방식처럼 효율성에 집중한 형태로 계속 진행된다면 상업의 흐름은 다시 단절의 국면으로 넘어갈 것이다.


앞에서 상인商人이라는 한자의 유래를 인용한 것처럼 필요에 따라 물자를 움직여 거래를 만들어내는 업業을 수행하는 상인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수요를 찾아 공급을 연결시키고 결핍과 잉여를 해소하는 데서 이익을 취했다. 다만 상업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으며, 상인의 역할도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러면 현대에 들어 MD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터넷에 의해 상거래의 양상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이 때 MD의 역할도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최근까지 MD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설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거래를 할 것인가”에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거래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상업과 상인이 부정적인 의미로 천대받은 기간이 훨씬 길다는 사실에 주목해보면 계급 또는 계층 구조에 의한 천대는 사라졌으되, 통제 없는 무한정의 이익추구에 대한 경계와 배척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명확한 직업정신을 토대로 거래의 내용을 주도하던가, 아니면 (지금처럼)거래 과정의 일부에만 개입하여 분절적인 업무만 하다가 인공지능에 대체되던가의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

천 년 전 실크로드의 시대,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앞두고 옥문관에 선 대상隊商들은 아마도 길 너머의 길을 보며 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이제 MD라는 직업도 시장 너머의 길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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