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_MD의 일 ① MD의 탄생
1장_MD의 일 ①
1) 접촉없는 상거래의 출현
온라인 이전의 소매업은 고객이 매장에 방문하는 점두판매(店頭販賣, over-the-counter dealings)와 상인이 고객에게 가는 방문판매(訪問販賣, Door-to-door sales)의 2가지 형태로만 존재했다. 상거래는 수 천년간 ‘가거나, 오는’ 물리적 접촉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패러다임은 급작스럽게, 급격한 속도로 깨졌다. 온라인 이후의 상거래, 즉 [전자]상거래는 상거래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물론 기술 발전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백여 년 전부터 가능했다. 19세기에 전화를 통한 카탈로그 쇼핑이 나타났고, 특히 광활한 북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던 미국에서는 시어스가 카탈로그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시어스가 창립 이후 70여 년이 지나 글로벌 최상위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은 전신, 우편, 철도 기술의 발전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1백여 년이 지나자 드디어 변화의 꽃이 만개한다. 21세기의 첨단 기술을 앞세운 미국의 아마존을 필두로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소매업을 장악(실제는 20% 내외의 점유율이라서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한다는 사실은 (물리적)접촉 없는 상거래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상거래가 태동하여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이르기까지 30여 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이슈의 규모에 비해 거래 규모와 점유율은 여전히 20% 남짓이라는 사실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전자상거래의 [기세]가 접촉 기반의 상거래를 완전히 압도했기 때문이다.
Source : https://www.emarketer.com/content/global-ecommerce-2019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534123/e-commerce-share-of-retail-sales-worldwide/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전자상거래 점유율(2019년 글로벌 기준 전자상거래의 소매업 점유율은 14.1%)을 보이는 한국의 경우 2019년 전자상거래 거래액이 135조원 규모로 전체 소매업 거래액의 28%를 차지하며, 향후 15%(19~23년, CAGR) 수준의 연 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다(통계청).
2019년에 기록한 28%의 비중을 다른 용어로 치환하면 온라인 침투율(penetration rate)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3년 후인 2023년에는 39%에 달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10개의 상품을 구매한다면, 그 중 4개 품목은 온라인에서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뿐일까? 손에 들려 있는 모바일로 모든 종류의 쇼핑이 가능한 상태이니 생활 측면에서는 거의 모든 쇼핑이 모바일에서 시작하거나 주문, 결제, 배송 등 적어도 한단계는 관련되어 있다. 결국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는 일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오프라인, 혹은 전통소매업 등으로 불리는 점두판매 매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반격도 거세다. 기업의 생존 문제이니 당연하다. 멀티채널, 옴니채널 등의 채널 병합 전략이 고안되었으며 월마트를 비롯한 오프라인의 공룡들은 이미 상당 부분 온라인으로 진입했다. 편의점을 비롯하여 지역 단위의 소형 포맷 점포들도 여전히 잘 해내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오프라인으로 역진입하면서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 따위는 그다지 주목받을 일이 아니게 되었다. 사실상 싸움은 끝났다.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되다가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소매업, 아니 상거래가 다시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총아인 커머스 플랫폼과 그곳에 모인 생산자와 판매자, 소비자, 중개자까지. 시장의 다양한 플레이어들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게 될까?
2) 소비자의 탄생
산업 혁명 이전의 상거래는 공급자가 주도했다. 늘 부족했기 때문이다. 생필품은 너무 쉽게 독점되었다. 소금은 정부가 독점하여 권력의 수단이 되었으며, 곡물을 유통하는 상인들은 극히 일부 집단으로 한정되었다. 유럽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대구, 청어의 경우 어장의 변화가 국가 또는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상품 거래의 매개인 화폐도 늘 부족했다. 금과 은의 매장량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에 이르러, 적어도 유럽인들의 “결핍”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재화가 유럽으로 빨려 들어가듯 이동했기 때문이다. 페루와 멕시코의 은이 대량으로 유출(사실은 수탈)되었는데,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의 은을 들고 중국과 인도로 들어가 재화를 쓸어 담았다. 차와 비단, 향료는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의 연료가 되었다.
그리고 설탕. 인간이 그동안 맛보았던 그 어떤 재료보다 강력한 감미료인 설탕이 등장하자 상업은 과열을 넘어 폭주하기 시작했다. 대서양을 넘고, 심지어 태평양까지 항로를 개척한 선박에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마치 화물처럼 적재되었다. 이들은 설탕을 재배하는 대농장에서 일하다 죽어갔다. 인간의 역사에서 교역은 항상 약탈과 혼재되어 있었다.
엄청난 모험으로 추앙 받는 콜롬부스, 바스쿠 다가마, 마젤란의 항로 개척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 자본과 재화가 넘쳐나자, (물론 시차는 있지만)드디어 소비자가 탄생했다. 공급자 주도에서 소비자 주도로, 상거래의 헤게모니가 이동한 것이다.
소비자가 탄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세기 중엽, 봉 마르셰를 비롯한 그랑 마가쟁(Grand Magasin_대형 패션잡화점)이 백화점으로 확장하자 소비자는 기어코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물론 당시의 소비자 그룹은 이른바 부르주아라는 한정적인 계층에 머물러있었지만 소매업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뼈대를 만들고 몸집을 키우는데 충분한 자양분을 공급했다. 그로부터 백 여년이 지난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비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소비하는 인간)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소비하며, 상거래 세계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런데, 소비자 그룹이 탄생한 지 불과 2세기도 지나지 않은 현재, 전자상거래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다시금 변화가 찾아온다. 접촉없는 상거래로의 전이(Transform)라는 극적인 변화에 못지 않은 커다란 변화이다.
모바일 환경의 상거래에서 실제 가장 열일하는 이들은 판매자나 플랫폼이 아닌 소비자라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가장 편리하며, 없는 게 없는 무한 시장인 가상세계의 시장에서는 비록 왕이지만 소비자가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온라인(모바일)에서 소비자는 검색하고,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담은 뒤, 혹시 빠졌을 지 모를 혜택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본 뒤, 결제한다. 그리고 (빨리오든 늦게오든) 배송을 기다린다. 배송을 받은 후 상자를 해체하고 상품을 꺼내서 정리한다. 상자는 테이프와 스티커 따위를 떼어내고 접어서 재활용 수거함에 가져다 놓는다.
온라인 쇼핑의 모든 과정은 ‘소비자가 왕’이라는 소매업의 모토와는 전혀 다르게 소비자가 다 해야 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아무리 검색을 편리하게 하고, 원터치 페이 시스템을 탑재했다고 해도 결국 이 모든 일을 소비자가 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셀프서비스를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20세기 초 수퍼마켓이지만, 전자상거래의 셀프서비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온라인(모바일) 쇼핑은 고도의 집중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요하는 고난도의 일이다. 자칫하면 비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의 초창기와 달리 고도 발전기에 돌입한 현 시점에서는 더 싸게 사기 보다는 비싸게 사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소비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쇼핑이 만연하고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 쇼핑에 대한 찬양이 넘쳐난다.
결핍이 해소되면서 소비자 그룹이 등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잉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은 상품들 중에서 무엇을 골라, 무엇을 사용할지의 책임은 오로지 소비자에게 있다. 정글과 같은 온라인 마켓에서 훈련 받은 똑똑한 소비자들을 활용하며 첨단기술과 빅데이터까지 장착한 플랫폼이 상거래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이제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플랫폼의 이용자일 뿐이다.
플랫폼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현대의 사례를 고대(古代)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과잉’과 ‘결핍’의 확연히 다른 결과를 볼 수 있다. 지도 상에 가상의 선으로 연결하여 이름 붙인 실크로드는 실제로는 점점이 흩어진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한 무역로이다. 오아시스 도시들을 중심으로 상인들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교집합이 생기는 형태였다. 사람이 낙타나 노새를 타고 1개월 내에 왕복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500km 정도인데, 이 거리를 이동하는 상인들은 생명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만큼만 제한적으로 상품을 선별했다.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낙타나 노새가 적재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비타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원과 초원의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차(茶)를 비롯하여 소금, 모피 등이 가장 주요한 상품이었다. 이러한 절대적 결핍으로 인해 상거래의 헤게모니는 오아시스 도시들의 시장과 상인들이 장악했다.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인 완전한‘과잉’이 발생한 것은 실상 인류의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70년대 오일쇼크, 2008년 금융위기 등의 위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넘쳐나는 상품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 정리하고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온라인 마켓의 플랫폼들이 없다면 사람들은 일대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 가상세계의 한정 없는 정보에 파묻힌 소비자들은 오늘도 쉽고, 간편하게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아가고 있다.
3) MD라는 직업의 등장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발달하자 본격적인 직업 그룹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집단이 엠디(MD_Merchandiser)이다. 물론 소매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상품 소싱(Sourcing)과 판매(Sales)에 관여한 직업 그룹은 존재했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일컬어지는 [봉 마르셰_Au Bon Marché]의 창업주인 아리스티드 부시코(Aristide Boucicaut, 1810~1877), 봉 마르셰의 직원으로 출발하여 [프랭땅_Au Printemps] 백화점을 설립한 쥘 잘뤼조(Jules Jaluzot_1834~1916) 등이 바로 MD이다.
위 : 아리스티드 부시코와 봉 마르셰 백화점
아래 : 프랭땅 백화점(1865년)과 창업자 쥘 잘뤼조
하지만 MD라는 이름이 직업으로서 구체화된 시기는 최근이다. 유래를 찾자면 고대의 상인 집단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MD(엠디, 머천다이저)라는 이름을 붙여 핵심 직군의 하나로 위상을 부여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 오프라인의 전통 소매업체들과 경쟁을 시작한 전자상거래 기업(커머스 플랫폼_Commerce Platform)들이다. 그들은 경쟁 전략 중 하나로 상품 차별화를 내세웠고, 이를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을 MD로부터 찾았다. 상품을 기획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MD가 상거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MD들은 생산, 수집, 중개, 소비에 이르는 상거래 과정 중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상품을 매개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을 한다. 소비자와의 최접점에 위치하여 유통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MD의 역할은 중요하다. 더군다나 과잉이 만연한 전자상거래에서는 큐레이터로서의 역할도 부여받는다. 정교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탐색과 선택 과정에서 소비자의 일을 대신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MD는 소비자가 지나치게 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헤매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최종 선택을 받을 상품들은 결국 이들의 손을 거치게 되어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중요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높은 위상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인간 MD 대신 인공지능이 큐레이션하고, SNS가 네트워킹하기 때문이다.
플랫폼들은 방대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인간보다 정교한 큐레이션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적어도 '개인 맞춤형 추천'이라고도 일컫는 큐레이팅은 인공지능이 훨씬 잘할 것이 분명하다.
중개자로서의 역할도 전망이 밝지 않다. 소매업이 온라인으로 전이하면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연결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SNS를 기반으로 생산자가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면서 중간 과정의 일이 줄어들었다. 소싱의 과정이 축소되었다는 말이다.
브랜드 제조사들도 지금 당장은 플랫폼에 의지하며 MD의 협상력을 존중해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 소비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상거래의 역사에서 공급자 주도의 시대는 무려 수 천년 간이나 지속되었다. ‘상품’을 보유한 이들은 언제든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이렇게 MD라는 직업은 중개자 또는 큐레이터로서 소매업의 역사에 등장했지만, 동시에 인공지능과 SNS에 의해 대체될 것이 거의 확실한 직업으로 전락했다.
우리 모두가 체감하듯이, 기술이 이끄는 변화의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빠르다. 소비자가 2세기 만에 가장 열일하는 집단이 된 것처럼, MD역시 등장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자리를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소비자가 왕으로 군림한 소매 시장에서 소비자가 가장 열일하는 역설에 비하면 역설도 아니다
2016년 1월 18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_WEF은 ‘일자리의 미래’보고서에서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닥쳐 기존 직업의 상당수가 사라지고 기존에 없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내 선진국에서 500만 개의 일자리(결과적으로 수 천만 명이 실직할 것이다)가 사라질 전망이다. 지구촌 일자리의 65%(19억 명)를 차지하는 주요 15개국의 350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아울러 10년 안에 로봇이 45퍼센트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고 한다. (Source : 백민정, ‘전 세계 7세 아이들, 65%는 지금 없는 직업 가질 것’, 중앙일보, 2016.01.20, https://news.joins.com/article/19441065 ) 전망이라기보다 선언 혹은 통보처럼 들리는 것은 그냥 기분탓일까?
소개가 너무 늦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이다.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직업을 간신히 유지하다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면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공연한 걱정 대신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거의 완벽하게 연결된 세계, 넘쳐나는 상품들,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공지능의 틈바구니에서 나와 같은 인간MD들이 찾을 수 있는 직업적 전망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다양한 플랫폼을 개미처럼 부지런히 드나들며 열일하고 있는 우리의 고객들은 언제쯤 편히 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