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다루는 경쟁 전략의 핵심은 상생과 연대, 공존이다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경쟁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소매업 시장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1등을 하기 위한 전략은 아니다. 전략은 기본적으로 싸움 혹은 승부를 내포한다. 승자와 패자가 있고 1등과 그 외의 등수가 나오게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승부의 내용을 바꾸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점유율을 놓고 상대방과 마주한 채로 다투는 승부가 아니라 시대 상황의 변화에 순응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는 전환을 의미한다. 경쟁자에게만 머물던 시선을 사람들, 혹은 우리의 이웃들에게로 이동시키는 전환을 통해 새로운 전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병법서에 이르길, 상대가 아닌 내가 유리한 전장에서 싸우라고 했다. 승자가 이미 정해진 시장이라면 특히 경쟁자의 방식을 답습하는 방식의 싸움을 당장 멈춰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경쟁 전략의 핵심은 상생과 연대, 공존이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전통 소매기업들을 무너뜨린 전자상거래 기업들도 최근에는 대형화, 독점화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넘어 세계를 석권했던 시어스와 월마트가 그러했듯 아마존, 알리바바 역시 자국 시장을 완전히 점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는 짐작한 대로이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한다.
전세계를 촘촘하게 연결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훨씬 많은 기회의 장이 열렸지만, 적어도 소매업을 놓고 보면 이건 마치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 우리의 소비자들은 더 많이 벌어들이기는 고사하고 살아가기 급급하며, 설상가상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 세계 경제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용어인 성장은 천천히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었다. 독점이 반복된다면 온라인 시장에 펼쳐진 기회 역시 신기루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무한 성장의 외길을 달려가며 독점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또는 우리가 일하는 기업)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1등만 바라보며 모방의 길을 가거나, 틈새를 미친 듯이 찾고, 차별화를 목놓아 외치는 정도였다. 하나만 하면 모자랄 것 같아 모조리 다하기도 했다. 그러나 짝사랑이나 숨바꼭질 놀이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의 이웃들(고객 혹은 소비자와 파트너)은 어느새 거대한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근대화 이후 지금까지 숨차게 달려가던 인류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돌아보거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전진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외면했던 가치들이 수면 위로 등장하는 과정은 세대가 바뀌는 과정과 맞물려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오직 성장만을 위해 헝그리 정신으로 일하자는 구호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안타깝지만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상당 수의 갑질(괴롭힘)이 헝그리 정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탓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 사회는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 기술의 진보를 기둥으로 세운 세상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의 삶을 어렵게 하는 제약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과 함께,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환상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사뭇 달랐다.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빈부 격차와 참혹한 환경 파괴,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불공정 행위라는 결과가 드러났다. 혹자는 이러한 문제들은 학자들이나 다루는 거대 담론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젠 많은 사람들(시민들)이 문제를 깨닫고 있다.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식의 확산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이다.
복고와 상생은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본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 둘은 또한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복고復古는 트렌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것은 안식처이며,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상생과 공존, 연대는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열망이며, 해가 떠오른 아침에 맞이하는 일상이 될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정신적 안정과 휴식을 갈구하는 경향은 레트로 뿐 아니라 워라밸이라는 단어에서도 진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인간들이란 물러나기만 하는 동물이 아니라서, 앞을 보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강구한다. 복고라는 유행이 크게 번져나가듯 상생과 공존,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흐름도 보다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왜 역사인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결과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상은 대개 빗나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섣불리 예상하며,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예측을 하는 이유는 어디로 나아갈지 결정을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좋은 ‘결정’을 위해서라면 과거를 통해 지혜를 얻어내는 것이 섣부른 미래 예측보다 나을 수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 있는 이들이라면 대개 성공한 사업의 사례들을 찾아 다니며 분석하는 작업을 자주 하게 된다. 어떻게 성공했을까? 그들은 어떤 결정을 했을까? 사례에 따라 이유는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성공의 이유 중에서도 거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 성공은 어느 한 순간, 하나의 결정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결정들이 누적되면서 드디어 도출된 결과라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게 될 동아백화점, 화신백화점, 시어스, 노드스트롬, 봉 마르셰 등의 수 십 년에 걸친 역사는 좋은 결정들이 누적되어 성공에 이르고, 다시 잘못된 결정들이 누적되어 실패 혹은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노드스트롬과 봉 마르셰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들은 여전히 좋은 결정을 해내고 있다.
과정으로부터 단절된 예측, 예상은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이미 몰락했거나, 혹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는 퀴퀴한 사례들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과정, 특히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성공’은 지난한 과정과 좋은 결정의 누적 값이라는 사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찾아 역사를 궁구하는 진지한 이유 말고, 다소 감상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내가 역사를 찾아가는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
한가롭게 창가에 앉아 바라 보는 풍경. 소나기가 오거나 함박눈이 내린다면 더 좋다. 바라 보고, 소리에 젖어 들다 보면 생각은 여행을 떠나게 마련이다. 나에게 역사는 소나기이거나 함박눈이고, 여행이다. 옛날 이야기이자 사람 구경이고, 이웃들과의 대화이다. 방향을 잡고, 결정을 돕는 여러 소재 중 하나이다.
왜 MD이며, MD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명감이다.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직업의 유래를 찾아가다 보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상인 집단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실제 MD라는 직업은 난해한 명칭이 웅변하듯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직업 집단이기도 하다.
상인 집단으로 보면 예로부터 사회적인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경제 분야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영향력을 확보했음에도 존경으로 승화되기 어려운 데에는 뿌리깊은 원인이 있다. 이익을 최우선시한다는 자타의 행위 목표에 대한 규정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인 은 사회의 공동선이 아닌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매도 당하기 일쑤였다.
비교적 최근에 직업의 하나로 자리잡은 MD역시 마찬가지이다. 상거래의 중요한 참여자이지만 MD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존경 여부는 생존 여부에 비하면 작은 문제이다.
지금, 알라딘처럼 등장한 마법 같은 기술을 마주한 인간 MD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명감을 중심으로 직업정신을 세우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