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MD의 일 02화

MD_Mercahndiser의 어원

feat Hermes

by 머큐리

MD라는 직업의 역사적인 근본을 찾기는 어렵지만, 단어의 어원은 찾을 수 있다.

MD에 관련한 용어들을 정리해보면 Merchandise, Merchandiser, Merchandising, Merchant와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어는 Merchant이다. Merchant는 상인 또는 상거래를 의미하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Hermes)에 연원을 두고 있다.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는 장사하다는 뜻의 라틴어 mercari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헤르메스는 상인의 신이면서 동시에 도둑의 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의 영어식 이름은 머큐리(Mercury)이다. 파생하여 나온 Merchandise는 상품 또는 물품을 의미하며, ~er이 붙어 상품 기획자로 불리지만, 사실 맥락을 그대로 유지해보면, 결국 상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헤르메스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헤르메스는 태어나자 마자 거래를 시작한다. 아폴론과 거래하여 비파와 점성술을 얻고, 케리케리온이라는 지팡이도 얻는다.

제우스의 바람기를 지독하게 증오해서 혼외자식이라면 무조건 미워하던 헤라와도 사이 좋게 지낼 정도로 언변과 재치가 뛰어났다고 한다.

제우스는 헤르메스의 뛰어난 언변과 거래기술을 높이 사서 인간과 신을 잇는 전령으로 삼았다. 헤르메스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을 뿐 아니라 제우스가 나타나는 신화의 많은 대목에서 그림자처럼 등장하곤 했다.


직업적 위기에 봉착한 MD의 어원이 신화 속 헤르메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도둑과 상인, 전령의 수호신으로서 헤르메스가 신화의 곳곳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엉뚱하고 기발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헤르메스를 어원으로 하는 MD라는 단어는 감성과는 거리가 먼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현대의 MD는 오직 거래만 존재하는 시장에서 거래과정의 일부를 기능적으로만 담당하는 관리자이다.


MD의 의미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MD : Merchandiser (두산백과)

상품이라는 의미인 ‘merchandise’에 ‘er’을 덧붙여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에 대한 결정권자 및 책임자를 의미한다.


Merchandising (두산백과)

시장조사와 같은 과학적 방법에 의거하여, 수요 내용에 적합한 상품 또는 서비스를 알맞은 시기와 장소에서 적정가격으로 유통시키기 위한 일련의 시책.

상품화 계획이라고도 하며, 마케팅 활동의 하나이다. 이 활동에는, ① 생산 또는 판매할 상품에 관한 결정, 즉 상품의 기능 ·크기 ·디자인 ·포장 등의 제품계획, ② 그 상품의 생산량 또는 판매량, ③ 생산시기 또는 판매시기, ④ 가격에 관한 결정을 포함한다.


전문가들이 기술한 MD의 직무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기업의 마케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장 효과적인 장소, 시간, 가격과 수량에 맞도록 제공하는 일에 관한 계획과 관리를 통칭하는 구매 및 판매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MD경쟁력은 고객니즈와 트렌드에 맞는 상품 발굴 또는 기획, 그리고 저가 소싱에 있다. 또한 경쟁사 및 타 채널에 없는 상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경쟁력이다. (최낙삼, “MD Who & HOW”,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MD 직무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MD의 역할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의는 “상품기획자”이다. 특히 ‘선제적 기획’과 ‘독점적 기획’에 방점이 찍혀있으며, 업무의 범위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이르는 모든 유통 과정, A부터 Z까지의 전체 과정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실제 MD의 역할은 대기업처럼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분절된 업무로 조각조각 편재되어 있으며, 기획업무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대기업 유통사의 경우 카테고리를 세분하여 분업화하고 있다. 신선식품에서는 과일MD, 채소MD, 곡물MD. 이런 식이다. 심지어 과일MD를 국내산 과일과 수입과일로 나누고, 국내산 과일은 다시 품목별로 쪼개어 담당을 따로 두기도 한다.

이러한 분업을 토대로 경쟁 관점의 선제성과 독점 추구, 운영상의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MD의 덕목이다. 이렇게 오직 거래만 존재하며 극단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에서, 잘게 쪼개진 특정 영역의 상품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운영자가 필요하다면, 인간 MD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MD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관점의 변화 혹은 약간의 이동만 필요할 뿐이다. ‘커머스의 미래가 (기술이 주도하는)효율성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YES’에서 ‘글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1위가 독식할 것이 분명한 효율성의 시장이 압도적인 규모로 이슈를 장악하고 있지만 감성이 지배하는 시장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감성의 시장은 승자만 존재하는 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제각기 존재하는 시장이다.

온갖 상품뿐만 아니라 이야기와 사람들이 모여든 시장은 독점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장의 핵심 동력은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노트를 대체하는 시대에 연간 1,000만개 이상 팔리는 아주 오래된 노트 몰스킨(아주 오래되었지만 1997년에 다시 태어난)을 보자.

브루스 채트윈의 여행기 <송라인>의 한 구절에 아주 잠깐 언급된 프랑스의 노트 ‘카르네 몰스킨”을 발견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리아 세브레곤디가 민감하게 포착한 감성은 효율, 독점, 경쟁 등의 단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앞으로도 유구한 역사를 지속할 것이 분명한 위대한 노트를 탄생시켰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필기하던 그 검정색 노트에서 동경과 열망을 읽어내는 것은 꽤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성이다. 더 나아가 브루스 채트윈의 첫 번째 여행기 파타고니아로 취향의 지평을 넓히는 소비자들에게 효율만 강조하는 ‘오직 거래만 존재하는 시장’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 MD역시 효율성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감성과 가치의 관점으로 직무를 재정의해야 한다. 효율성의 영역은 인공지능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신화의 헤르메스처럼 날개 달린 샌들과 요술봉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보다 신묘한 디바이스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은가. 필요하다면 나무 연필이나 만년필, 종이 수첩을 준비해보는 것이 그리 유난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런 상품 기획자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길 원한다면 말이다.


최근에 e커머스 분야에서 창업하는 이들은 초심자의 마음으로 허리를 굽혀 바닥을 볼 줄 안다. 편견과 레거시(Legacy)로부터 자유로우니 창의적인 기획이 가능해진다. 대기업에서 분절된 업무의 일상을 그저 견뎌내고 있는 MD들 중 미래의 전망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들의 활동을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진지한 고민과 함께 현재의 역할에 변화가 없다면, 가까운 미래에 MD라는 직무는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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