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시는 딸기
그래서일까. 사무실에 채 적응도 하기 전, 인사발령이 났고 A 처장과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
고백하자면,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발령받게 되어 그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한창 발령지에서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A 처장의 입원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간이 문제였나. 벌써 몇 달이 지났다고 뭔가 민망하여 동생 손을 붙잡고 찾아간 그의 병실엔, 항상 고고하고 준수하던 사람이 흙빛에 환자복을 입고 쓸쓸히 앉아있었다. 다녀간 사람도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무실 앞에서 기다려 결재를 받고 그렇게 같이 술 먹자고 대접하겠다고 회식 약속을 잡고 하더니.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그러고 보니 A 처장이 이혼을 했다던가, 무슨 문제가 있더라 하는 흘려듣던 소문도 문득 생각났다. 뭔가 서글퍼졌다.
실없는 인사치레 대화가 오가다가, 그가 “퇴직이 곧인데, 아무도 안 찾아오겠지. 시골에나 가야지.”라며 푸념을 했고 그때의 나는, 나름 위로가 되고 싶어 “제일 좋아하시는 과일, 딸기 가지고 시골에 방문할게요."라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딸기가, 그 대답이 마음에 걸린다. A 처장의 소식이 끊긴 지 한참인데.
아, 여담으로 병문안에 따라갔던 동생은 말했다. 상사분, 얼굴 좋아 보이던데……?
그 후, 나의 회사 생활은 돌고 돌아 어느 지랄 맞은 상사 밑에 갈려지고 있었는데, A 처장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처장이 아니라, 이사였나 임원이었나 그랬다. 더 높아진 사람이었지만, 그는 한결같았다.
이제는 정말 비율을 딱 맞춰서 기깔나게 커피를 타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참으로 아쉬웠다.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예전처럼 실없이 대화하고 싶은 맘 반반이었다. 나는 정말 그가 반가웠다.
그는 나에게 살이 정말 많이 빠졌다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그저 일이 바빠서 그렇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후에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고 이젠 그마저도 몇 년이 흘렀다.
이해할 수 없는 상사들을 만나 회사 내 인간관계에 지쳐, 거칠어지다 못해 냉소적이 된 지금의 내가 그 당시 A 처장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조금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신입사원 시절의 내가 지켜보고 느낀 그 감정으로 이 글을 써야 A 처장에게 공평할 것 같다. 나의 수용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태도에 반응하여 A 처장 역시 나를 대한 걸 테니까.
좀 그리운 신입사원 시절을 보는 거 같은데, 마음 한켠이 쓰리다.
앞으로의 상사몽은 A 처장의 글처럼 온화하지는 못할 것 같다.
A 처장은 내가 다룬 끝판왕으로 높은 상사라 일적인 면을 자세히 알 수 없던 반면, 앞으로의 상사들은 바로 위 아니면 그 위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관찰하기 용이했다.
하지만 너무 자세히 알게 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던가.
참으로 못난 상사도, 다 약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고 또 보다 보면,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애쓴다면, 어떤 상사도 참으로 사랑스럽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