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지적 자유
자유의 육각형은 지금 보고 계시는 브런치북 시리즈의 제목이면서 제가 개발하고자 하는 가치 프레임워크(Value framework)의 이름입니다.
가치 프레임워크는 가치 판단을 위한 사고의 틀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유와 균형, 그리고 자기 사랑이라는 가치관을 세우고 나서, 삶과 일상도 가치관을 향해 정돈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상은 어질러지고 인생은 방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치 프레임워크는 앞으로 어떤 가치판단을 내릴 때 효율적이고 일관되게 판단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A와 B라는 선택지가 생기면 어느 것이 나의 자유, 균형, 자기 사랑에 가까운 것일까? 이런 식으로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연재를 시작한 지 세 달 가까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목적의식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지난번 에피소드('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느낌 - (2) 정서적 자유(마음의 자유)')에서 정서적 자유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뜻하는 단어로서 가져다 썼습니다. 정서적 자유는 다른 말로 하자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 중심을 지키고 통제력을 잃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정서적 자유에 이어 인지적 자유는 어떤 걸 가리키는 걸까요? 원래 이번 챕터는 정신적 자유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데 정서와 정신은 구분하기가 미묘합니다. 우선 '정신'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1.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2.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
3. 마음의 자세나 태도.
4. ((주로 일부 명사 뒤에 쓰여)) 사물의 근본적인 의의나 목적 또는 이념이나 사상.
5. 철학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비물질적 실재. 만물의 이성적인 근원력이라고 생각하는 헤겔의 절대적 정신이 대표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정서와 정신의 구분이 미묘한 까닭은 둘 다 마음에 대해 가리키는 단어라서 그렇습니다. 이번 파트의 키워드를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원래 정신적 자유와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은 논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사리분별하는 능력, 지적 호기심, 탐구, 학습, 혹은 지능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단어의 뜻풀이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성'이나 '지성'도 훌륭한 후보였지만,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적 능력(intellect)'과 같은 개념은 어떨까요? 국어사전 정의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지적 능력이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성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판단 능력에 치우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저는 국어사전이나 위키 백과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페이지를 더 넘나들던 중에 인지(cognition)라는 개념을 찾았습니다. 인지는 생각, 경험, 혹은 감각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이해하는 정신적인 활동과 과정이라고 합니다. 인지적 활동이 포함하는 범위는 포괄적입니다. 인식, 주의, 생각, 상상, 지능, 지식의 형성, 기억, 판단과 평가, 추론과 계산, 문제 해결, 의사 결정, 언어 능력 등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일단은 제가 생각하던 것과 가장 일치하는 개념입니다. 포괄적이어서 마음에 드네요. 이번 챕터의 제목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수정되었습니다.
신체적 자유와 정서적 자유에 이은 세 번째 자유 영역은 인지적 자유입니다. 과연 이성적 능력, 지각 능력, 그리고 학습 능력을 충분히 자유롭게 펼치고 계신가요? 그러한 능력을 제한하는 것들을 느껴보신 적이 있을까요?
인지적 자유도 수동적 자유와 능동적 자유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 자유는 나의 통제 밖에 있는 자유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인지적 능력 중에서도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는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하면서 맹자의 교육 환경을 개선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와 맹자의 어머니가 지낸 거처는 첫 번째는 묘지, 두 번째는 시장, 그리고 세 번째는 학교 근처였습니다. (이사 횟수는 두 번인데, '삼천'이라는 표현은 세 번 한 걸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묘지나 시장 근처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침내 학교 근처로 이사 간 곳에서 맹자가 제사 의식을 따라 하는 걸 보고 흡족했다고 하네요.
위의 옛이야기는 진위 여부에 대한 시비도 있고, 맹자의 성선설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동적 자유에 대해서 다루기엔 충분히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맹자의 학문적인 성취에는 그의 통제력 밖에 있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맹자에게 거처를 정할 능력이 있었을까요? 맹자는 어머니가 이사하는 곳으로 따라갈 뿐이었지만, 서당 근처로 이사 간 덕분에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유교 사상의 대가로 자라나게 됩니다. 물론 좋은 학군이 학문적 성취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 주거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지적 자유를 제한하는 외부 요인들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타고난 지능 수준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가지는 지능 수준의 한계도 있을 것이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지능 수준도 제각각일 것입니다. 선천적인 요인이 인지적 자유를 어느 정도 결정한다고 하면 서글프지만, 어느 정도는 과학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혹은 노화에 따라 인지적인 능력이 서서히 감퇴하는 것은 어떨까요? 마치 생로병사의 숙명에 따라 신체적 자유를 서서히 잃어가는 것처럼, 인지적 능력을 잃어가는 것 또한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일입니다. 다만, 각자 의식이 희미해지는 시점을 가능한 늦출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편 인지 영역의 능동적 자유는 어떤 걸 가리킬까요?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인지적 자유를 넓힐 수 있을까요? 인지 능력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온전히 독립적인 주체로서 사고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뜻입니다. 사고력은 인간의 정신 활동 중에서도 정서적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에 관여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따라 순수하고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 이치에 맞게 사리분별하고 의사결정하는 능력, 혹은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학습하는 능력 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능력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이 능동적인 인지적 자유라고 하겠습니다.
인지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편견과 선입견은 어떨까요? 편견과 선입견은 합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어떤 대상에 대해 미리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정신적인 활동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비판적인 사고를 생략한 것입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사회적인 평판을 무비판적으로 학습하거나, 과거의 자기 경험을 일반화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어느 경우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지적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예시로는 습관성 중독 행위가 있겠습니다. 생명의 3대 영양소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라면, 오늘날 직장인의 3대 영양소는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중독성이 강력한 물질들입니다. 저는 12년 동안 담배를 피우다가 니코틴 중독에서 얼마 전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알코올은 다행히도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잘 찾지 않는 편입니다. 카페인은 거의 커피를 수혈받는 수준으로 마시기 때문에 여전히 습관성 중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중독 행동은 합리적인 판단을 가로막습니다. 시간과 돈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하게 만듭니다. 물론 누구나 커피, 술,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고, 초 단기적인 쾌락을 주는 걸로 이해는 하지만, 쉽사리 끊어내지 못합니다. 이러한 중독 물질들도 인지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것들입니다.
소셜 미디어 중독도 유사하게 인지적인 자유를 제한합니다. 하지만 위의 중독 행동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주지 않는' 형태로 사람들을 통제했다면 오늘날에는 단절된 정보를 무작위로 '쏟아내는' 방식으로 통제한다.
『폴리매스』 p. 309
SNS를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독적인 미디어 사용은 수동적인 콘텐츠를 무한히 야기합니다. 이러한 미디어 소비는 자기 자신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학습할 능력을 빼앗는 것 같습니다. 알고리즘이 권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다 보면, 영영 콘텐츠 소비자로서 인지적인 자유를 제한받은 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폴리매스』라는 책 제목은 그대로 번역하면 박식가(博識家)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지식이 여러 분야에 뻗친 사람을 가리킵니다. 박식가는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라서 조금 생소합니다. 척척박사 내지는 만물박사가 좀 더 친근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그 책에서는 전문화의 함정에 대해 비판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노동시장은 분업과 특화에 따라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규 교육 과정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각자의 전문성만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전문성은 개인의 사회경제적인 성취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개인이 펼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지식과 정보를 포식하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저자는 다 빈치처럼 현대인들도 각자의 호기심에 대한 봉인을 해제하고 잠재력을 폭발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긴 하지만, 개인으로서 노동시장의 현황을 무시할 수도 없고 대세를 거스르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양비론을 펼쳐보자면, '커리어 전문성을 지향하되 궁금한 건 참지 말자' 정도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지적 호기심을 자유롭게 좇는 것만큼 높은 수준의 인지적 자유가 없을 것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지적 능력은 비판적으로 읽고 쓰는 연습을 통해 유지하거나 개선할 수 있습니다. 마치 꾸준한 운동을 통해 신체적 자유를 개선하거나, 성찰적 일기를 통해 정서적 자유를 개선하는 것처럼, 인지적 자유 또한 규칙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멈추면 생각하기가 점점 더 귀찮고 어려워지는 법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월 천만 원 수익을 내는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인지적인 자유를 가능한 많이 누리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신체적 자유, 정서적 자유에 이어서 인지적 자유까지 다루어 보았습니다. 저는 앞의 세 가지 자유 영역을 삶의 필수 자유 영역이라고 분류합니다. 다음 편부터 이어질 경제적 자유, 기술적 자유, 그리고 예술적 자유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몸, 마음, 그리고 정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소한의 자유도와 통제력을 갖추어야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지적인 자유는 앞서 정리한 것처럼,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나 학습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으로서, 다른 영역의 자유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정확한 판단이나 계산 없이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주사위 눈금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물론 모든 의사결정을 철저하게 따지고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행동이든 '그냥'은 없습니다. 설명하기 어렵거나 귀찮을 뿐입니다.
신체적 자유를 누리는 데에 있어서 인지적 자유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신체적 자유를 능동적으로 넓히는 데에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그리고 클린하고 간소한 식단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어떤 운동이 맞는지, 수면 환경은 어떻게 개선할지, 그리고 어떤 음식이 유익한지 판단하는 것은 인지적인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비판적인 판단 능력이 없다면, 자기 몸을 여러 가지 '카더라'에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식단은 사실 몸에 나쁜 음식들을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애써 찾아다니는 데에 헛된 노력을 기울이고 돈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심리학이나 인지과학에 대한 지식은 정서적인 자유를 달성하는 데에 대단히 유익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이해하는 것은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중심을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인생에 반복되는 문제를 맞이하였을 때, 그 이면에 숨겨진 트라우마적인 경험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과거의 경험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파악한다면, 감정에 덜 휘둘릴 수 있을 겁니다. 정서적인 반응을 논리적으로 객관화함으로써 부정적인 영향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자유 영역은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자유가 온전히 나 자신에 대한 영역이었다면, 나머지 세 가지는 나와 이 세상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의 자아실현과 무관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욱 중요한 영역일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정의한 나머지 자유 영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보겠습니다.
참고자료: 1) 와카스 아메드(Waqas Ahmed) 지음, 『폴리매스』, 이주만 옮김, 안드로메디안(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