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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Oct 13. 2023

가라쓰 야끼(唐津焼)의 화려한 변신

와비사비(侘び寂び)와 아로마 향기의 협연


 사가현 가라쓰시(佐賀県唐津市)는 우리나라의 이천이나 청주와 같은 전통적인 도자기 마을로도 유명하다. 사가현에는 가라쓰 야끼 이외에도 아리타(有田)의 아리타 야끼(有田焼)와 이마리시(伊万里市)의 이마리 야끼(伊万里焼)가 있다


 아리타 야끼의 역사는 1600년대에 일본을 통일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가라쓰 나고야(名護屋) 통해 조선을 침략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도요토미 히데요시는 () 마시는 다도(茶道) 심취해 있었는데 조선의 기품 있는 도자기를 부러워했다고 한다당시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와 같은 품위 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가 없었는지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의  지방에서 5 명이 넘는 도예가들을 납치해왔다고 한다그중 ' 삼평(李 参平)'이라고 하는 도예가가 도자기를 만들 좋은 흙을 찾아다니다가 아리타의 이스미산(泉山)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만든 것이 일본 최초의 도자기라고 전해진다이곳 아리타에 조선의 도예가 ' 삼평' '도자기의 '이라는 의미로 그를 기리는 도잔신사(陶山神社) 있을 정도로 일본의 도자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있다.

 

 가라쓰 야끼는 아리타 야끼와는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다흙에서 느낄  있는 투박한 서민적 감성이라고 할까기품이 있으면서도 생활에 필요한 식기와 장식용품으로 사용하기에 편안함을 주는 소박한 감칠맛이 있다가라쓰 야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감성을 「와비사비(侘び寂び)라고 표현하고 있다. [와비사비(わびさび)]: 간소한 가운데 깃들인 한적한 정취(일본인 특유의 미의식을 나타내는 말, 네이버 사전).

 

 가라쓰 야끼는 모모야마(桃山時代)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공예품으로써, 조선에서 온 도예가들에 의하여 조선의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면서 생산량이 증가했으며, 가라쓰항(唐津港)을 통하여 교토(京都), 오사카(大阪)를 비롯한 일본 각지로 퍼져나가게 되어, 차()의 애호가들 사이에서 차도(茶陶)로서의 위치를 확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1]


 현재에도 가라쓰 마을에는 10여 곳의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다. 대를 이어 작품 활동을 하는 도예가를 포함해서 많은 신진 도예작가들이 가라쓰 야끼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가마가 있는 곳에는 각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으며 중심 상점가에도 여러 곳의 가라쓰 야끼 갤러리가 있어서 오랜 전통의 가라쓰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그중, 중심 상점가 고후쿠마찌(呉服町)에 이찌반칸(一番館)이라고 하는 가라쓰 야끼 갤러리가 있다. 내가 운영하는 공방과 가까워서 지나는 길에 가끔 들리곤 했다. 가라쓰 야끼의 와비사비 감성을 느끼며 이것이 가라쓰 문화의 냄새구나~ 하고 작품 감상을 하는 것이 망중한의 문화생활이었다.

 

 어느 날, 이찌반칸 갤러리의 대표이사인 사카모토(坂本) 씨로부터 제안이 있다며 나를 찾아오셨다. 사카모토 씨는 가라쓰 야끼 도예가들의 개인전과 기획전 등 젊은 도예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며 가라쓰 야끼의 전통과 문화를 전파하고자 늘 분주하게 활동하는 분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풍요롭게」라는 의미의 「일상의 사치(日常の贅沢)」를 콘셉트로 가라쓰 야끼를 생활과 밀접한 일상용품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 사카모토 씨의 사업 이념이라고 했다.

 

 그 사업 이념을 바탕으로 한 제안의 내용은 「가라쓰 야끼와 아로마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이다. 가라쓰 야끼 작품 중에 손잡이가 없고 정종이나 차를 마시는 컵을 '쪼코(ちょこ)'라고 하는데, 쪼코를 활용해서 아로마 향을 넣은 캔들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가라쓰 야끼 쪼코 캔들(唐津ちょこキャンドル)」. 멋지지 않은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에가라쓰(絵唐津),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구로가라쓰(黒唐津), 투박하면서 소박한 멋의 조선가라쓰(朝鮮唐津). 스타트는 이  종류의 작품을 10개씩작품과 어울리는 향을 선택하여 각각 다른 향의 아로마 캔들을 만들었다이찌반칸의 가라쓰 야끼와 나의 공방의 아로마 캔들 컬래버레이션이 시작되었던 것이다상품은 꾸준히 판매되었고 컬래버레이션 활동은  후로도 지속적으로 운영되었다.


가라쓰 야끼 쪼코 아로마 캔들


  가라쓰 야끼의 쪼코 캔들이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자주 공방에 오시는 손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가라쓰 야끼를 좋아해서 욕심나는 대로 샀더니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된 쪼코가 있는데, 그걸로 캔들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다. 가라쓰 야끼는 도자기 상품이기에 일반 그릇보다 비싸서 사용하지 않게 되어도 버리기 아깝다는 얘기이다. 그럼요. 버릴 수는 없지요. 가져오시면 만들어 드릴게요 했더니, 다음 날 바로 종이 가방 한 꾸러미를 가져왔다.


 좋아하는 아로마 향을 고르게 해서 가져온 그릇들을 멋진 아로마 캔들로 만들어 주었다. 캔들 용기 값을 제외하니 저렴하게 고급 향초가 되었네요 했더니, 정말이네요 하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Up Cycle Design!


 물건을 재활용한다는 개념과 달리 친환경, 예술적 가치로 업그레이드하는 디자인 활동으로, 버려지는 것들의 가치를 재창조한다는 의미이다.  


 그 이후에도 많은 지역 주민들이 시용하지 않지만 버리기 아까운 값비싼 그릇들을 내 공방으로 가져왔다. 유럽 여행길에 기념으로 사 온 와인 잔, 결혼 기념 선물로 받은 커피 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조상의 유품 그릇 등등. 나는 아낌없이 내 공방의 선반 한편을 그것들을 위해 내주게 되었다.


가라쓰의 지인 중 대다수가 70대 이상의 여성으로, 그들의 고민 중 한 가지가 남은 생(生) 안에 자신들의 물품을 잘 정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은 가족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 

 젊었을 때 사 모았던 예쁜 옷과 명품 살림살이. 버리기 아까워서 딸이나 며느리에게 주겠다고 해도 됐어요~ 하면서 거부한다고 한다. 아무리 값비싼 고급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패션 트렌드도 변화하고 개인별 취향이 다르니 좋다고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버리는 것도 있지만 누군가가 잘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각종 그릇들을 내 공방으로 가져왔다. 그들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속절없이 받았더니, 어느 순간 선반 한편 이 아니라 창고에까지 그놈들로 쌓이게 되었다.

 

너희들 모두 다~ 캔들로 만들어 버릴 테다!

걱정 마라! 너희는 앞으로도 계속 값지고 향기로울 테니!



사용하지 않는 그릇류를 활용한 아로마 캔들 Up Cycl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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