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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Jan 11. 2024

데님과 캔디 캔디의 도시 구라시키(倉敷)

지역 자원은 만들 수도 있다.


 일본 규슈대학 예술공학원에서 지역브랜드를 연구하면서 지역자원의 발굴은 지역을 브랜드화하는데 가장 중요하고 모든 면에서 우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역자원이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지역에서 자랑할 만한 역사와 문화, 그곳에서만 생성되는 특산물 등이 있으며, 고유의 지역자원을 터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소중한 전통과 풍습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라이프스타일 역시 지역자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은 「개인과 집단의 가치관에 의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생활양식・행동양식・사고방식 등 생활 전반에 있어서의 문화적・심리적 차이[1]」라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 라이프스타일이란, 지역의 자연환경과 지리적 조건, 풍토, 기후, 역사적인 배경에 의하여 주민들의 생활양식에 독특한 특징이 생성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삶의 풍습을 지키기 위한 지역주민의 노력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이미지의 지역 아이덴티티가 형성되고 우리는 이것을 지역성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이 현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및 문화적 조건, 즉 의・식・주・레저・건강의 유지 등을 충족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다른 환경조건 하에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독자적인 풍습과 민족적 전통의 차이가 발생하고,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고유한 지역 특산품이 생산된다.  


 일본 디자인 학회에서 주관하는 연구논문 발표회에 참석하느라 에히메현 다카마쯔시(愛媛高松市)에 있는 가가와 대학(香川大)에 방문한 적이 있다. 다카마쯔는 우동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미 우동이라는 지역자원을 기반으로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후쿠오카로 돌아오기 전에 다른 지역의 성공사례를 찾아보고 싶어서 지도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다. 에히메현(愛媛)과 오카야마현(岡山)을 잇는 세토대교(瀬戸大橋)를 건너면 구라시키(倉敷)라는 도시가 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하면서 교수님은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가보라고 권유하셨다.


 세토대교(瀬戸大橋)는 다섯 개의 섬을 도로와 철도로 연결한 다리로 세토내해(瀬戸内海)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지나가는 유명한 관광코스라고도 한다. 이곳은 바다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지역브랜드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倉敷美)」라는 곳에 도착하니 관광 안내소에는 다양한 관광 팸플릿이 구비되어 있었다. 


 뭔가 생소한 글자가 눈에 들었다. 「진즈 스트리트(ジーンズストリート)[2]」? 뭐지? 하고 자세히 읽어보니, 얼마 전에 지도 교수님이 얼핏 소개했던  「데님」 산업으로 지역을 활성화한 코지마(島)라는 지역에 대한 설명이었다.


 「섬유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코지마는 미국의 진즈( Jeans), 데님이라고 하는 섬유를 일본에서 최초로 국산화한 지역이다. 간척지인 이 지역에서는 목면 재배가 왕성했고 제봉 기술을 산업기반으로 하여 지금까지 섬유산업이 발전하였다고 한다 [3].


  거리의 상점에는 블루진이라고 하는 청바지를 비롯하여 쪽빛 염색으로 만들어진 데님으로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방과 생활용품, 디스플레이 등으로 활기 넘치는 데님의 거리 코지마(島)를 만들었다. 


 이미 우리나라의 방문객들이 진즈 스트리트를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행 블로그에 올린 것을 보면 데님 산업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것임에 틀림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팸플릿에 반가운 글자를 발견했다. 


「이가라시유미코 미술관(五十風ゆみこ美術館)」


 한때, 나를 만화덕후로 만든 「캔디 캔디」라는 만화가의 미술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들장미 소녀 캔디」라고 알려졌지만, 나는 이 만화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사실에 흥미를 갖고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나의 성적에는 전혀 반영이 안 되었지만 그 이후로 많은 만화의 역사적 배경을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주인공의 발자취를 지도책을 펼쳐가며 세계사에 열광하게 된 참으로 대견한 문화생활이었다.


  이 만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격정의 청춘을 보내는 주인공 캔디에 빙의하여 미소년 안소니를 사랑하고, 나쁜 남자 테리우스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며 자상한 알버트의 눈빛에 무너지는 소녀 시절의 감성이 되살아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이가라시유미코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캔디 캔디라는 만화가 세상에 나온 시기는 1970년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캔디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시절의 소녀감성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20대 젊은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만화에 나오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젊은 여성들도 있었고, 남자친구와 주인공 코스프레를 하는 커플들도 많이 보였다. 나와 같이 캔디에 빙의하면서 소녀 시절을 보낸 듯한 사람들도 아득한 추억을 회상하는 아련한 얼굴로 미술관을 배회하고 있었다 [4].


 그런데 왜 구라시키(倉敷)에 이런 미술관을? 

작가의 고향이 여기인가? 아닐 텐데...

분명히 만화의 배경은 미국과 영국의 어느 시골마을과 도시였는데? 


의구심이 발동하여 안내원에게 물어봤다.

미술관 홈페이지에도 설명이 되어 있지만, 무슨 연결고리가 있을까 궁금했다.


  약간 실망했지만, 내용은 이렇다.


 캔디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었고, 고아인 캔디는 「포니의 집」이라는 「고아원」에서 수녀님들의 자애로운 보살핌으로 살다가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힘들게 지내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에서 키워드를 「고아원」에서 찾아낸 듯하다.


 메이지 시대의 자선사업가이자 일본의 아동복지의 아버지(童福祉の父)라고 불리는 「이시이쥬지(石井十次)」라는 사람이 오카야마현(岡山)에 일본 최초의 고아원을 설립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억지로 연결시킨 모양이다. 캔디가 살았던 포니의 집과는 전혀 연결성이 없지만 구라시키라(倉敷)는 지역의 브랜드 자원으로 만들어버린 지역 주민들의 강한 의지에 찬사를 보낸다.


 지역자원이란, 그 어느 누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존재하지만, 주어진 환경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주민들의 각고의 노력에 의해서 수확되는 농수산물과 독자적인 기술과 제조법으로 생산되는 가공품과 특산물도 해당된다. 


 데님 산업의 활성화로 관광특구 「진즈 스트리트」를 창제하고, 「이가라시유미코 미술관(五十風ゆみこ美術館)」과 같이 문화 콘텐츠를 자신들의 지역자원으로 끌어들여 구라시키(倉敷)의 브랜드로 만든 지역주민들의 지역 산업의 활성화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역시 소중한 지역자원이 아닐까.


 이러한 자신들의 고장을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강력한 지역브랜드로 이끌어 올리는 「씨앗」이며 「DN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 참조 Michael E. Sobel, 「Lifestyle and Social Structure: Concepts, Definitions, Analyses」, 1982

[2] 참조 倉敷デニムストリート、 https://www.okayama-kanko.jp/spot/10362

[3] 참조 倉敷公式観光 사이트、 https://www.kurashiki-tabi.jp/kojima-h1/

[4] 참조 이가라시유미코 미술관, いがらしゆみこ美術館、 https://yumiko.jpn.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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