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에필로그

어리석은 응징의 말로

by Marisol

오래전,


동네 이웃인 영철엄마에게 이끌려 갔었던 사이비 종교 교회에서 사기꾼 같은 교주의 괴상망측한 막말을 듣고, 캑 캑 구역질을 해대며 도망쳐 나왔을 때가 등골이 오싹한 소름과 함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박 씨 성을 가진 자를 집안에 들이지 마라.

집안에 망조가 들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 도 아니고 셋이야!'


바로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환상 같은 장면도 아련히 그려졌다.


새로 지어진 성당건물 앞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사제님과 멋진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교양 있어 보이는 여인들,

햇빛이 내려앉은 성모님 동상 앞에서 그들이 우아하게 대화를 하고 있던 장면이다.


그때, 춘자는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하고 머리 안에서 박하사탕이 녹는 것 같이 화~ 해졌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춘자 자신도 그들과 같은 거룩하고 우아한 교인이 되기 위해 성당 문을 열고 처음 십자가 앞에 나섰을 때 춘자는 확신했다.

주님과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면 평화롭고 행복한 봄날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이후,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정갈하게 씻고 나서는 묵주를 손에 들고 성경책을 외우다시피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면 온갖 병균으로 오염된 자신의 몸이 성스러울 만큼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식들 앞에 다가온 불행과 파탄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춘자는 문득, 자신의 자식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었던가 새삼 생각해 보았다.


춘자는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했었다.


성당에 나가면 의례적으로 누구나 읊어대는 기도는 춘자도 물론 다 외우고 있다.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30년 동안 새벽같이 일어나서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서 읽어 내려갔던 기도문이다.

두껍고 꺼칠꺼칠한 입술을 열고 어물어물 느리게 읊어 대는 기도문이지만 주님과 성모님에게는 춘자의 기도가 들렸을 것으로 믿었다.


주님! 성모님!

저 오춘자, 리드비나가 봄날 같은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십자가 앞에서 이 간절한 기도문을 올리고 성수를 손가락에 묻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며 정성스럽게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오지 않았던가.




멍~하니 지난날의 일과 지금 춘자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느라 주일 미사시간에 늦어서 허둥지둥 긴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성당으로 달려갔다.


성당 정문은 닫혔을 테니 왼쪽 옆에 있는 문의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려 문을 살짝 열고 살금살금 들어갔다.


미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마침 '고백의 기도'를 올릴 차례가 되었다.

신부님의 경건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성당 안에서 울려 퍼졌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이다음 부분부터는 신자들 모두가 같이 읊어야 한다.

춘자는 묵주를 꼭 쥔 두 손을 모으고 두꺼운 입술을 얇게 열며 소리를 내어 기도문을 읊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순간, 그동안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읊조렸던 말이 머리 정수리 위로 튀어나왔다.


니들 인생이니 니들이 알아서 살아라!


남편 대수가 다른 여자와 살면서 낳은 아들이 있는 것을 속이고 춘자의 인생을 불행하게 일그러뜨린 것에 대한,

어리석은 응징이었다.


춘자는


생각행위

자식들의 인생을 방관하여

부모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지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일까.


갑자기, 배꼽 근처에서부터 묵직하지만 뾰족한 통증이 위장을 헤집고 창자를 꼬아 폐를 뚫고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춘자는 배를 끌어안고 의자에 엎드렸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춘자는 기도의 의식에서 정해진 대로 오른팔을 들어 왼쪽 가슴을 한 번, 두 번, 세 번 순서대로 내려치며 기도문을 읊어댔다.


속살이 찢어지는 것 같이 통증이 심해지면서 입에서 역한 냄새가 토해졌다.

하지만 기도를 멈출 수가 없다.

멈추면 안 된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제발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고백의 기도가 끝났다.


춘자는

뜨거운 불덩어리와 날카로운 가시가 자신의 속살과 내장을 헤집어 찢는 공포스러운 고통을 참지 못해,


목구멍으로 썩은 냄새가 나는 오물을 쏟아냈다.



춘자의 몸에 박힌 가시가


춘자의 오장육부를 헤집어 냈다.


춘자의


가증스러웠던 인생 속에서


그토록 오래 묵어 썩어버린


어리석은 응징의 대가인가.


춘자는 뜨겁고 쓰디쓴 고해의 눈물을


목구멍으로 토해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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