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말, 짭짤한 돈, 쓰디쓴 눈물.
다른 집 자식들은 별 탈들 없이 평범하고 평화롭게 잘 들도 사는데 어째서 춘자의 자식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불행하고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식들의 평탄치 못한 인생의 근간이 무엇이었던가.
화장대에 놓여있는 십자가와 성모님 상을 보면서 춘자는 잠깐 기도를 멈추고 긴 한숨을 쉬었다.
애당초, 춘자와 남편 서대수의 만남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라.
춘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전에 이미 여자가 있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마저 낳은 대수는 그 사실을 춘자와 춘자의 부모에게 감춘 채, 춘자와 부부가 되었다.
만일 부모님이 춘자가 대수를 따라 시집으로 떠나기 전에 주도면밀하게 대수의 주변조사를 했더라면 춘자의 부모가 순순히 혼인을 시켰을까, 하고 생각하니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이제 와서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 탓을 하면 무슨 소용인가.
부모님을 생각하니 고향의 우물가에서 깨웃음을 웃어대며 시끌벅적 수다를 떨었던 처녀시절에 친구들 중 한 아이가 말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춘자는 그 둘째 마누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왜 내 자식들은 하나같이 평탄한 생을 살지 못하는가.
미사가 끝난 텅 빈 성당에서 제단의 정면 벽에 거룩하게 걸려있는 십자가를 보며 의자에 앉아서 얼마 전 큰딸에게 선물로 받은 루비똥 핸드백에서 묵주를 꺼내 들었다.
성호를 긋고 기도를 드리려고 했지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머릿속이 뿌옇게 연기로 가득 찬 것 같이 어두워지면서 기도문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게 있는데 루비똥 핸드백 안에서 두두둑 두두둑 소리가 났다.
미사시간에 방해가 될까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은 것을 기억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 밖으로 나왔다.
“엄마 뭐 해?”
큰딸이 째지는 목소리로 앵앵거렸다.
“엄마! 양대표 엄마가 시골에서 전복을 보내왔지 뭐야.
전복 먹으러 빨리 와요~!”
보험설계사무소 공동대표인 양대표의 본가는 전라도의 어촌이라고 들었다.
박사장이 없는 넓은 아파트에서 눈치 볼 필요 없이 신선한 전복 회를 먹을 것을 생각하니 아까의 답답한 머릿속이 어느새 맑게 개어 있었다.
큰딸의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 기색이 없길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큰딸이 종이쪽지에 써준 현관 비밀번호를 보고 삑삑삑삑 짜르릉 하고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큰딸도 없고 손녀딸 수진이도 없다.
식탁 위에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가 뜯지 않은 상태로 놓여있었다.
전복을 먹으러 오라고 해 놓고 아무도 없다니.
핸드폰 너머에서 큰딸 미정이의 교태스러울 정도로 째지는 목소리를 듣고 머리가 ‘쨍’하고 깨지는 것 같았다.
결국 춘자에게 전복 손질을 시킨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큰딸의 교묘한 계략에 뿔딱지가 났다.
저년 말을 듣고 기대했던 내가 등신이지. 등신.
커다란 박스에 담겼던 그 많은 전복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후에 소파에 걸터앉아 꺽꺽거리고 있는 막내아들 종민이에게 큰딸 미정이가 샐 샐 거리며 뭐라고 꼬드기고 있는 것 같아서 춘자도 그 옆에 앉았다.
회사대표로 명의만 빌려주면 한 달에 백오십만 원을 꼬박꼬박 통장에 꽂아 준다면서 이런 꿀 알바가 어딨냐며 미정이는 어리숙한 종민이에게 집요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모두들 잊고 있었는데 막내아들은 젊은 청춘을 신용불량자라는 사슬에 묶여 꼼짝달싹 못한 어두운 세월을 가족들에게 새삼 기억시켰다.
얇은 입술을 한쪽으로 삐죽이면서 미정이가 춘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로 뱀 같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하품 같은 미소로 웃어댔다.
순간 움찔했지만, 한 달에 백오십만 원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온다는 설명이 기억나서 소파의 등받이에 허리를 깊숙이 묻으며 글쎄~ 나이가 많은데도 회사대표가 될 수 있나? 하고 소심하게 말을 한 춘자의 앞에서 미정이가 눈을 흘기며 무릎으로 기어 아 춘자 앞에 다기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는 미정이의 달콤한 꼬드김에 송사장이라는 사람이 새로 창업하는 인력소개소의 대표로 춘자의 이름이 올라갔다.
미정이의 말대로 정말로 꼬박꼬박 한 달에 한번 돈이 입금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송사장과 연락이 안 된다며 미정이가 혼비백산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졸지에 춘자는 불법으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들을 암암리에 국내 공장과 농장에 소개하고 노동자들의 급여까지 챙긴 악덕 사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송사장이 법인세를 내지도 않고 해외로 도주해 버려서 그 책임을 춘자가 다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춘자가 그 회사의 대표자로 되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
“엄마! 내가 최사장 꼭 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미정이의 뺀질 뺀질한 얼굴을 보니 또 리프팅인가 뭔가를 했나 보다 하고 생각하니 춘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엄마를 졸지에 불법 악덕업체 사장으로 만들어 놓고 속 편하게 피부과 침대 위에서 시술을 받았다니.
생각해 보니, 그동안 미정이의 온갖 꼬드김에 큰아들과 막내아들, 둘째 딸 미영이 부부 그리고 춘자까지 혼돈의 인생을 살게 하면서도 큰딸 미정이는 아무런 피해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식들 중에서 가장 좋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가족들에게 갖은 생색을 내며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박사장을 내보내고 가족들끼리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미정이가 떠들어댄 말이 기억났다.
오랜 세월을 부부의 정으로 살아온 박사장이 돈 한 푼 못 벌어 온다고 시골 구석에 패대기치듯 쫓아낸 자신의 입장을 개똥철학 같은 기준을 빌미 삼아 합리적으로 변명하는 것이리라.
돈 밖에 모르는 사악한 미정이의 계략을 깊이 생각도 못한 춘자의 인생말로마저 미정이의 달콤한 꼬드김에 넘어가서, 종국에는 불법사업자라는 불명예 속에서 국세청에서 날아오는 ‘독촉’이라는 글자가 적힌 우편물을 받을 때마다 치를 떨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게 되었지 않은가.
누구 탓을 하랴.
춘자는 또다시 자신이 낚싯밥을 입에 문 물고기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살아나기 위해 몸서리치며 버둥대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몸에 박힌 가시에 살이 찢겨 처참하게 파멸하는 물고기.
제 가시에 박힌 물고기.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마저 춘자의 몸 안의 가시가 되어 남은 살을 찢는 것 같이 고통스럽다.
목구멍 속에서 언젠가 느꼈던 뜨겁고 역한 오물이 쏟아졌다.
아니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