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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눈물

전학 온 그 아이

by Shu Jul 27. 2024

어느 날이었다.

한창 잘 나가는 듯한 그 아이가 내게 말을 건 것은

지루한 음악 수업이었다.

인자하게 생긴 뚱뚱한 여성이 노래를 부르며 칠판을 가리켰다.

하지만 묵묵부답으로 교실은 잠잠했다.

그런데...


내 뒷자리던 그 아이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나 지우개 좀 빌려줄래?"


난 흔쾌히 그 아이에게 우개를 건넸다.

당시의 난 아무 상각이 없고 마냥 친절했다.

새 학기에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욕망 때문인지 그냥 멍청한 것인지 당시의 나를 떠올리면 그냥 한숨만 나왔다.


그 아이는 고맙다며 내 손을 잡고 붕붕 돌렸다.

처음 봤으면서도 과감한 행동과 활발한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날리는 그 아이에 나는 이마를 탁 치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은근히 그 아이가 내 옆을 기웃거렸다.

그러고는 우리의 이야기에 침입해 버렸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에 검은 먹이 칠해졌고 이야기는 나락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나락,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아이는 우리의 모든 것을 짓밟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행복이 피어나려 하면 잡초 뿌리 뽑듯 뽑아버리고는 제 자존감을 높이려는 악질적인 아이였다.


처음 넷이 모인 날, 뜬금없이 셔츠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온 어이없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흰색 반스타킹에 검은 구두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속옷색을 맞춰보라며 첫날부터 이상한 농담이나 하는...

그런 관심종자 같은 아이였다.

멍청하고도 변태 같은 이상한 아이였다.


난 그런 그 아이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그 아이도 그랬나 보다.


" 넌 너무 못생긴 거 아니야?"


나를 향한 그 얄미운 말에 가소로운 듯 웃어도 봤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에게 하는 갖가지 무시는 사라지지 않고, 내 상처와 트라우마는 갈수록 깊어졌다.


이대로 가면 난 평생 사람을 무서워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진희를 만나기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은 아이였다.

그 얇은 눈매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가슴이 콩닥댔다.

그리고 처음 꺼낸 한마디...


"나민이 우리를 너무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


'우리' 그것은 나와 진희에게 공통점을 만들어주는 단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진희는 내 말을 더 잘 들어줄 것이고 항상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난 그렇게 믿고 대화를 이어갔다.


"맞아, 좀 그런감이 있긴 해"


진희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역시 진희는 내 편이 맞았다.

난 이때다 싶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여태껏 있어서 상처받은 것들..

상처받는 말을 들은 것...


난 억울해 눈물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고서 입을 오물댔다.

진희는 차분히 내 말을 들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차분할까...

진희는 단아하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찰랑이며 나를 쳐다봤다.


"그렇긴 해, 나도 동감해"


나는 그렇게 진희를 내 뒤에 두었다.

사실 진희는 큰 바탕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에게 힘을 보태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민이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원래는 조금씩 간을 보며 괴롭히던 나민이였지만 이제는 아예 대놓고 무시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돈을 함부로 빌려 쓰고는 갚지 않는다던가 내 눈이 작다며 민지와 비웃는다거나..


아주 갖은 방법으로 날 괴롭혔다.

때린 적은 없었지만 말뿐으로도 나에게는 큰 상처가 입혀졌다.


체육시간

체육관 및 뛰어놀 수 있는 공간, 옆쪽의 작은 골목에 놓여있는 계단에 민지하고 나민이하고 단둘이 앉아 속삭인다.


난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너무 궁금했다.

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고 일부러 말도 걸어봤다.

역시 내 감이 맞는 듯싶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다.


집에 도착한 이후 난 내 강아지를 찾아 사방을 돌아다녔다.


" 초코!"


어느 방을 돌아다녀도 초코는 보이지 않았다.

안방, 주방, 거실, 작은방.. 초코는 없었다.


" 초코 동물병원에 입원시켰어"


난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코가 무슨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뭐라도 잘못 주워 먹을 걸까 싶어 걱정이 하늘높이 치어 올랐다.

초콜릿 같은 것이라도 먹었으면 이미 죽었겠지...


난 한숨을 쉬며 초코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초코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하교한 시점, 초코는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다음날

 난 등교가 두려웠다.

어쩌면 초코 곁에서 함께 썩어가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초코를 그렇게 땅속에 두고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당장이라도 달려가 다시 초코를 파내어 붙잡고 울고 싶었다.

마지막 인사가 너무 짧았다.

차량 뒷좌석에 나란히 나와 종이 상자가 있다.


난 종이 상자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저 검은 틈 사이로 금세라도 초코가 튀어나와 내 뺨을 핥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초코는 없다.


차갑게 굳어버린 초코의 몸을 보며 난 울컥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난 울어서는 안됐다.


바보 같은 난 그렇게 초코를 떠나보냈다.

시원했던 나무 책상과 의자가 오늘따라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듯하다.


난 조심스레 책상에 엎드렸다.

난 어제 뭘 한 것이지..

뭐든 것이 꿈인 것 같다.


옆을 슬쩍 보니 아이들이 나만 빼고 모여 대화하고 있다.

멍청이들..

내가 이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난 그냥 울어버릴까 했다.

그리고 슬슬 내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내 앞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전부 나를 빙 싸고는 걱정스럽게 날 토닥였다.

역시 난 관심이 고프다.


그런데...


"난 우는 사람 싫어해"


나민이의 말이었다.

사실 조금은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다들 민이를 보며 혀를 찼지만 민이 본인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바보 같은 것들..


난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몸을 고쳐 앉았다.

더러운 책상이 유난히 눈에 띄며 번져진 연필 자국을 지우개로 꾹꾹 눌러 지웠다.

누가 이런 짓을 해놓은 걸까...

범인은 바로 내 뒤에 있을 것이 뻔했다.


난 그렇게 1학년의 한 학기 동안 괴롭힘을 당해왔다.

하지만 곧 천국을 맛보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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