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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온 희망

사라진 그 아이

by Shu Jul 27. 2024

얼마 후에 있을 신체검사 탓에 우리는 침만 꼴깍 삼킬 뿐이었다.

난 당시에 꾸미는 것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후줄근한 옷을 입고 다니고 행동거지도 흐느적 거리며 귀찮은듯 했다.

게다가 피부는 또 얼마나 까맣고, 눈썹은 옅고..

푸석푸석한 빗자루 머리카락은 덤이었다.


하지만 나민이는 그런 나와는 달랐는지 갑자기 일어서서는

이제 정말 다이어트를 할 거라며 진희와 내가 보는 앞에서 민지와 단둘이서만 팔짱을 끼고 계단을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하며 운동하는 시늉을 했다.


나와 진희는 나몰라라 하며...

나도 운동을 하겠다고 말을 했지만 민이는 들은 체 만 체했다.


진희와 난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서서 구경이나 했다.

마치 나민이의 공연을 보는 얼굴도 없는 관람객 같았다.

난 그곳에서 나민이의 엑스트라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나민이의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나민이의 중심으로 흘러가던 순간...


우리의 이야기가 반토막 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땐 이미 이야기의 절반이 먹칠해진 때였다.


"지윤아 잠깐 시간 돼?"


민지와 나민이가 나를 불렀다.

난 드디어 둘과 말을 섞을 수 있는 것인가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의 내 표정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환했을 것이다.

난 이것이 둘 과 다시 친해질 기회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민이는 나를 노련하게 째려보며 먼저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맏기고는 털썩 앉았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


민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지윤이 네가 나민이 뒷담했다며?"


'???'


난 그런 적이 없었다.

나는 급히 전에 내가 했던 행동들을 돌아봤다.

하지만 내가 나민이의 뒷담을 한 기억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난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수 밖에 없었다.


"난 그런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진희가 다 말해줬어"


난 그 말에 진희를 쳐다봤다.

진희가 쭈뼛대며 눈을 깔고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진희는 든든한 아군이 아니었다.

그저 고민을 털어놓은 것을 뒷담으로 바꾸어 일러바치는 배신자일 뿐이었다.


난 진희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민지와 진희는 나를 쳐다봤다.

그 억압 당하는 상황에서의 시선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 너희 진짜 어이없다."


나민이 가 제 이마를 매만지며 혀를 찼다.

나를 째려보는 그 눈빛에 지지 않으려 다리를 꼬고 당당하게 행동했다.

난 잘못한 것이 없었다.


난 당당하다는 생각으로 나민이를 째려볼 뿐이였다.

그랬더니 나민이도 슬금슬금  제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며 날 주시했다.


점점 더 격해지는 말에 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미안, 학원 가야 해서"


이 한마디로 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민이의 한마디에 속은 저 바보 같은 민지도 버리고, 날 배신한 진희도 내팽겨 쳐놓고 나 혼자 가방을 들쳐 매고 학교를 나왔다.

쓸쓸히 하교하는 내 뒷모습은 얼마나 처량해 보일까..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방에 처박혀 방문을 잠그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난 웬만해서는 잘 울지 않았다.

우는 것은 사치고, 울 가치가 있어야 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억울하게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것일까?

울만큼 슬픈 일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눈물이 흘렀다.


주방에서 들뜬 목소리로 친구들과는 재밌었냐는 말을 하는 엄마를 무시한 채로 침대에 누웠다.

엄마는 대답 없는 날 내버려 뒀다. 


속으로는 딸의 방문을 열어 곧장 달래고 싶겠지.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속을 달랠 기회를 줘야 한다.


난 과거에 친구 문제로 앓았다.

난 맞벌이인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하루종일 돌봐야 했고, 하교한 직후 스스로 밥을 차려야 했다.

난 그것을 8살의 나이에 해냈다.


깐깐하고 예민한 아랫집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와 문을 쾅쾅 두드리는 탓에 난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렇기에 난 친구가 있을 수 없었다.

항상 난 혼자였다.

누군가와 친해질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내 멍청한 머리로는 다른 인간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하교 후 홀로 육교 한 곳에 서 있는 슬러쉬 카트에서 슬러쉬를 사 먹는 것이 소소한 일상이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난 소아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상담을 받아 봤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난 그대로다.

겉으로는 착한 척 사교성 좋은 척을 해댔지만 실은 항상 로웠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모든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를 혼자 두었다.


다음날..

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일부러 아픈 척도 해봤다.

내 질병에 민감한 엄마였지만 이번에는 나를 학교에 보냈다.


엄마에게 끌려 등교하고.. 난 가시 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민이 와 민지는 서로 대화도 하고 즐겁게 노는 듯했다.

진희와 난 서로 눈치만 보며 대화를 하지 못했다.


난 진희를 싫어하지 않기로 했다.

진희는 아마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희에게 다가갔다.

진희는 기다란 색종이를 가지고서 이리저리 접어 별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부채 모양으로 여러 색의 색종이가 모여 있었다.

이 틈에 민지도 껴서 함께 웃고 떠들었다.

민이는 이걸 보고 배가 아팠나 보다.

이 틈에 지도 껴서 함께 웃는 척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채 모양의 색종이를 빼앗아 들고는 제 얼굴에 부채질하며 귀족 부인 마냥 호호 웃어댔다.


" 어때, 나 좀 예쁜가?"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민이의 제멋대로인 행동이 반복되자 난 나민이에게 색종이를 돌려받고 이미 망쳐버린 분위기도 바로잡고자 나민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나민이는 마치 더러운 벌레라도 본것마냥 인상을 찌뿌리고는 내 손을 뿌리쳤다.

자신이 여왕 노릇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물건을 빼앗아 거의 구겨트려 놓았다.


난 그 모습에 진희의 반응을 살폈다.

진희는 그저그런 무표정이였지만 조금 당황한듯 했다.

난 그런 진희를 보고는 화가 치밀어 올라 나민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나민이는 잡힌 손목을 휙휙 하고 휘둘렀다.

그러나 나의 악력은 꽤나 강했고, 나민이의 손에서 색종이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나민이도 꽤나 독했다.

내 손을 할퀴어 버리고는 내 얼굴 쪽으로 색종이를 던졌다.

촤락하며 펼쳐진 색종이가 내 얼굴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 자, 그렇게 가지고 싶었어?"


난 벙찐 표정으로 나민이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나민이는 씩씩대며 날 때릴 기세로 말했다.


"왜 힘자랑을 해? 너 하나도 안 쎄. 난 너 안무섭다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난 나민이를 더 멀리했다.

그리고 내가 진희와 함께 하교를 하던 순간이였다.


진희와 나란히 걸어 후문까지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그런데...

나민이가 갑자기 걸어와 뒤에서 날 잡았다.

 난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장난스런 표정을 지은 나민이가 있었다.


" 나도 같이 가자"


난 뭔가 미심쩍었지만 옆에있던 진희의 눈치를 살펴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민이는 길을 걷다 말고 나뒹굴어 냄새가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며 웃어댔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보고 아주 똑같다며 킥킥댔다.


난 너도 그렇다며 반격했다.

그래도 난 나민이의 이상한 논리와 말 솜씨를 이길 수 없었다.

나민이는 또 한참 가더니 진희에게 말을 걸었다.


" 우리 우정 테스트로 진짜 안맞는 것 알아? 나 너 같은 소심한 애는 진짜 싫어"


진희는 그런 나민이를 여유롭게 비웃었다.

나민이도 이 때문에 만족을 못했는지 나를 또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정말...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의 난 별 생각이 없이 살았기에 그나마 괜찮았다.


곧 신체검사의 날이다.

나민이는 그동안 많이 굶었다며 아직도 두꺼운 제 허리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난 뭐가 달라진건지 모르겠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나민이는 그러고 다시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듣기로는 몸이 많이 아파서 못 온다고 들었다.

나민이와 우리는 카톡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민이는 아마 오랫동안의 공복으로 거식증에 걸려 입원한 모양이다.

거식증이 심해 심장까지 약화 되어 수술할 위기에 달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소식을 듣고 조금은 걱정했다.

나민이는 점점 쇠약해지더니 이제는 정신병원에 갇혀 버렸다.

매일 병원으로 마라탕과 치킨을 들여 먹는다고 자랑질을 해대더니 진짜였는지 며칠 뒤, 학교에 뚱뚱한 모습을 비췄다.


물론 잠깐동안...


난 나민이가 없는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 사이 나와 진희, 민지는 꽤나 친해졌고, 함께 놀이공원도 가고 서로의 집에서 밥도 먹을만큼 가까워졌다.


이제서야 우리의 이야기에 칠해졌던 먹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근본적인 홀수 무리가 되었다.


나민이를 뺀 우리는 그 어떤 우정보다 값비싸 보였다.

그렇게 천국이 지나가고... 슬슬 다시 지옥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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