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동안의 행복도 그만...
그 아이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물론 별상태가 좋진 않았지만..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잤다.
듣기로는 무슨 약 때문이라나?
게다가 약 부작용으로 살까지 뒤룩뒤룩 쪄버렸다고 한다.
어쩐지 나보다 두배는 더 두꺼워진 그 아이의 팔이 보였다.
난 그 모습에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옆에서 민지가 중얼거렸다.
" 저게 다 벌받은 거지... 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야."
이제서야 그런 말을 하는 민지가 어이없었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넘어갔다.
민지 또한 이제 나를 믿었다.
진희도 날 믿어주었다.
우린 그렇게 날이 갈 수록 친해졌다.
나민이가 학교를 나온지 이틀째..
아침부터 나민이의 상태는 평소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끙끙 앓다가 기침을 하다가... 아주 난리였다.
무뚝뚝하고 자유로운 영혼이던 선생님도 나민이에게 만큼은 친절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나민이의 아픔을 알고있었다.
나 또한 잘 알고있었다.
종종 자신의 온몸에 꽂힌 주사자국을 보여주던 나민이였기에 말이다.
하지만 난 나민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한 남자아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 남자애는 나쁜 길로 빠진 아이들의 무리에 있던 아이였다.
다른 질 안좋은 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좋아하며 운동 또한 잘했다.
덩치는 산만하고 뱃살은 출렁거렸다.
똑부러지는 안경을 썼지만 그것은 시력 때문일 뿐 다른것과 관계는 없었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부르며 나민이도 함께 불렀다.
난 그것을 보며 저 둘이 사귀기라도 하는지 의심하였다.
하지만 그럴리 없다.
예쁜 여자만 밝히는 저 남자애가 뚱뚱하고 이가 누런 나민이를 좋아할리 없었다.
난 한숨을 쉬며 이번에도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
몇시간 후
그 남자애는 툴툴대며 교실로 돌아왔다.
난 무슨 일인지 가까이 다가가 들으려 했지만, 자리가 꽤 멀었다.
그래서 그냥 나민이에게 들으려고 나민이의 자리로 갔다.
어째선지 나민이는 물을 벌컥벌컥 마실 뿐 아까의 일에 대해서 알려주지는 않았다.
역시 수상하다 싶어 민지와 진희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둘다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민지는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나민이가 전학온 곳에서 나민이는 성폭력을 당했다고한다.
거기서는 완전 따돌림을 당해 전교생이 나민이를 외면했고 때문에 나민이가 이곳으로 전학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학교에 남자애와 친한 형이 있어 남자애가 혹시라도 소문을 퍼트릴까 선생님이 저지하신 것이였다.
난 이것을 민지만 알고 있다는 것에 찜찜하고 기분이 나빴다.
민지가 이런일이 있을때마다 나에게 바로 말해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학교가 거의 끝나갈때쯤...
나민이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했다.
화장실에 갈려다말고 제 자리에 주저앉아 심장쪽의 가슴을 붙들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아? 선생님 불러올게!"
민지가 나를 데리고 빠르게 교무실로 향했다.
난 민지가 그렇게 빠른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워낙에 뛰지 않던 민지였기에 이런 모습은 처음 볼 수 밖에 없었다.
민지는 선생님께 말씀을 드린 후 다시 나민이를 부축했다.
나민이는 비틀대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슬아슬해보이는 나민이를 보며 민지가 후문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나섰다.
난 그런 민지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와 진희가 당해온것을 봤으면서 어떻게 나민이의 편에 있을 수 있는지 배신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나민이는 홀로 문을 나서 끝까지 걸어갔다.
그런 나민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말했다.
"저러다 죽는거 아니야..?"
내 말 한마디에 민지와 진희가 날 쳐다봤다.
그리고 민지는 내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표정을 굳혔다.
완벽한 무표정이였다.
그런 민지의 모습은 처음이다.
항상 친절하고 장난스러웠던 민지였는데...
그리고 민지는 딱딱하고 차가운 말투로 나를 째려봤다.
"왜 말을 그렇게 해?"
난 그 순간 어안이 벙벙해짐과 동시에 당황스러워 어버버 거렸다.
민지는 그런 나를 두고 혼자 뒤돌아 교실로 돌아갔다.
진희는 내 손을 붙잡고는 교실로 함께 돌아가자고 했다.
난 또 가슴의 통증을 참으며 숨을 헉헉 쉬어댔다.
몇년전의 그 일이 떠올랐다.
난 아빠쪽의 유전으로 인해 폐가 많이 약했다.
덕분에 5살때까지는 폐렴으로 병원에서 생활해야했다.
어린 나이에 주사바늘을 견뎌내야 했고, 하루하루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이 와중에 아빠라는 사람은 제 형들과 놀러간답시고 날 다른 사람에게 맏겨놓고 룰루랄라 컷노래 부르며 놀러가 난 낯선 사람의 품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난 지금까지 종종 폐가 아파왔다.
그리고 지금도...
이제 슬슬 병원에 갈 때가 된것 같다.
호흡기 질환에 쓰는 약도 이제 거의 다 사용했다.
-
병원에 가자 바로 접수가 되었다.
엄마에게 폐가 아프다는 말을 하자마자 그동안 말 안하고 뭐했냐며 등짝을 여러대 맞았지만...
걱정받는 일은 언제나 좋다.
날 걱정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니까.
소아과로 올라가니 예전에 보았던 촌스러운 동물그림이 아직도 있다.
이 초록색 소파는 몇년동안 바뀌질 않는다.
간단한 진료 후
난 폐검사를 진행했다.
호스를 입에 물고 몇번이나 강하게 바람을 불어야하는 검사라 내 체력이 따라 주어야 한다.
이런 검사는 시골 동네 병원에서 하지 못하기 때문에 U시까지 나가야 한다.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노래를 들으며 갈 수 있으니 마음에 평화도 찾아오고 앞으로의 걱정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기 따문이다.
난 콜록대며 마스크를 썼다.
검사가 끝났다.
아마 몇달동안 폐가 심각하게 악화 되었었나 보다.
난 한숨을 쉬고는 처방 받은 약을 들이켰다.
맛없어...
그렇게 나민이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민지의 말로는 1학기때 내가 바이러스로 격리를 하는 동안 나민이가 나쁜 아이들과 어울렸고, 어째선지 그 무리에서 떨궈져 우리의 무리로 들어오게 된것이라고 했다.
난 그 이유를 민지에게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 난 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민이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질 나쁜 아이들과 떠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배 언니들 몇명이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서며 요즘애들은 치마가 짧다느니 화장이 진하다느니 같은 식의 이야기를 했단다.
그랬더니 나민이가 그 상황에서 눈치없이 자기네들은 얼마나 잘란거냐며 깔깔 웃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민이는 모든 선배들의 표적이 되고 무리의 아이들도 나민이와 친하게 지내면 자신들도 해를 당할까 두려워 나민이와 연을 끊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다.
정말 재밌다 나민이의 이야기는 파도 파도 끝까지 계속 나온다.
난 더 듣고 싶어 민지를 졸랐다.
결국 민지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 학년 여자 1짱인 수아 알지? 걔가 나민이를 한밤중에 불렀다는거야. 그래서 나민이가 나가봤더니 수아 걔만 의자에 앉아 다리 꼬고 있고, 나머지 노는 아이들은 주변에 서 있었다는 거야. 드라마 같지?"
이미지를 상상해보니 살짝 웃겼다.
드라마 같기도 하고... 웹툰 같기도 하고...
" 그리고 나민이가 거기서 얼어붙었는데, 수아가 나민이한테 가서 이마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막... 너 찬민 오빠 알아? 나 그 오빠랑 사귀는데... 이랬다잖아"
정말 웃기는 것이다.
수아라는 애도 웃기고..
그걸 직접 당한 나민이 또한 너무 웃기다.
난 그날 배꼽이 터지도록 웃어댔다.
나민이의 일은 정말 안됐지만 어쩌겠는가?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