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고...
난 이미 서진이와 꽤 친해져 있었다.
서진이는 좋은 아이였고, 좋은 친구였다.
착하고 마음 여린 아이였다.
난 그런 서진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오늘 서진이와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갈 것이다.
이 시골마을 P시에서는 놀만한 것, 먹을 만한 것이 없다.
심지어는 지하철 역까지 없어서 탈것은 버스와 택시뿐이다.
자가용이 없다면 출퇴근이나 등교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도 여기엔 대학 하나와 초중학교 다섯 개 이상이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다.
더 이상 시설은 없고, 있다고 해도 시내에만 몰려있다.
P시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Y시에서 노는 것을 선택했다.
Y시는 완벽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P시보다는 발달되어 있었다.
Y시는 꽤 가까웠다.
P시의 거의 아래에 있는 도시였다.
대중교통을 타고도 30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역시나 오랜만에 온 Y시는 U시와 꽤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Y시는 그저 논밭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년도에 개발되어 신도시가 된 이후로는 쭉 발전해 현재 이런 모습이다.
곳곳 고층 건물이 자리 잡고 갖가지 가게가 빼곡한 상가 건물이 크게 몇 채가 있다.
도로는 빈 적이 없고, 전철도 바쁘다.
오랜만에 맡은 매연 냄새에 코가 아팠지만 역시나 도시는 좋다.
난 기침을 해대며 서진이와 함께 길을 걸었다.
서진이와 아직은 어색함을 다 벗지는 못했다.
그래도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밟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놀고 떡볶이를 먹으며 서진이의 모습도 촬영해 줬다.
그리고 작은 코인 노래방에 가 노래를 실컷 부르던 때였다.
뭔가 느낌이 싸했다.
기분이 이상하고, 배가 아파왔다.
화장실에 가보니...
맙소사...
월경을 시작했던 것이다.
난 매우 놀랐다.
밖에서 먼저 시작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항상 여분의 생리대를 챙겨서 다녔었는데...
이번에는 가방을 작은 것을 메느라 생리대를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난 코인 노래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서진이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공감력 좋은 서진이 답게 날 걱정해 줬다.
난 여분의 생리대를 챙기지 않은 나를 탓하며 한숨을 쉬었다.
얼마 후
서진이가 화장실로 자신의 생리대를 들고 왔다.
다행히 바지에까지 묻지는 않은 것 같다.
난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한 후 편의점에 들어섰다.
하필이면 아르바이트생이 남자였다.
그래도 친절하고 별생각 없어 보였다.
센스 넘치는 아르바이트생은 알아서 검은 봉투에 물건을 담아줬고 난 덕분에 무사히 뒤처리를 마쳤다.
큰일이 지나고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서진이에게 찜질방을 가자며 끌고 갔다.
서진이는 처음에 거절했다.
서진이와 난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고, 서로의 몸을 보기에는 쑥스러웠으니까.
" 괜찮아, 찜질복으로만 갈아입고 놀다 가자"
그 말에 서진이가 반쯤 넘어왔다.
난 그 틈에 어서 서진이를 데리고 찜질방 안으로 들어섰다.
만원이라는 비용을 내고 입장했다.
따끈하고 포근한 물 냄새와 비누거품 냄새가 내 코를 간질였다.
이 냄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냄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나의 눈치를 보며 쑥스러운 듯 조심히 옷을 벗는 서진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난 대충 옷을 갈아입은 후 서진이와 마주 봤다.
서진이 또한 옷을 다 갈아입은 것 같았다.
긴 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평평한 베이지색 바닥이 보였다.
저 멀리 인형 뽑기 기계와 오락기도 보이고 네일아트 샵도 보인다.
서진이와 난 먼저 계란을 주문했다.
서진이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난 이런 구운 계란을 아주 좋아했다.
고소하고 뭔가 짭짤한 맛이 내 취향을 저격했다.
난 원체 짠 것을 좋아했기에 항상 소금을 가득 먹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소금을 조금씩 먹다 엄마에기 걸려 혼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소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이 주문한 음료를 너무 많이 마셨나...
난 계속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내가 계속 화장실에 들락날락하자 서진이 또한 나를 따라 들락날락 아주 난리이다.
사람이 별로 없던지라 실컷 떠들고 놀았다.
더운 방을 오가며 놀다가 나와서 시원하게 대자로 누워보기도 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지일 행복한 날일 것이다.
여태껏 중에 이런 경험은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서진이도 마찬가지였다.
서진이는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 너 야동 같은 거 본적 있어?"
"뭐?"
난 서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서진이는 그런 나를 보고 킥킥 웃어댔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웃는 그 모습을 보고 난 머리를 긁어댔다.
"당연히 없지.."
"그래? 난 봤는데"
난 더욱더 놀랐다.
서진이는 매우 순수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 서진이가 그렇고 그런 동영상을 봤다니... 정말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 언제 봤는데?"
" 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가?"
난 이제 그냥 서진이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 법이고, 그것을 비난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난 그런 동영상에 관해 궁금해졌다.
하지만 시도는 해보고 싶지 않았다.
" 그래서 무슨 동영상을 봤는데?"
"게이도 봤고, 그냥 하는 것도 봤어"
난 정말 여러모로 차별적이지 않은 서진이를 칭찬했다.
그래...
칭찬해 줄 만한 것 맞지..... 그래..
시간이 지나고 벌써 나갈 시간이 되었다.
미성년자는 9시가 되면 시설에서 나가야 했다.
그것은 노래방도 피시방도 같았다.
난 엄마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잘 받았고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엄마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엄마를 기다리며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양꼬치 판매점에 들어가 마음껏 고기를 맛보고 있던 와중...
엄마가 도착했다.
엄마는 우리가 먹은 양꼬치의 모든 값을 지불했다.
정말 감사했다.
양꼬치가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닌데... 내 친구의 몫까지 전부 값을 낸다니... 보통 엄마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난 나중에 꼭 보답하리라 생각하며 엄마의 차에 올랐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살아 나에게도 폭력적인 엄마였지만 나에게 쓰는 돈은 아끼지 않고 나를 아꼈다.
덕분에 난 지금처럼 물질적인 아이로 자라 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이마저도 제 아이라며 사랑해 주고 돈을 썼다.
아마 난 평생 목 빠지고 허리 빠지게 일해도 이것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서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난 집에 가는 길에 엄마와 대화를 했다.
"그, 서진이라는 애 좋은 애 같더라. 예의도 바르고"
"응, 그렇지"
엄마는 서진이를 정말 마음이 들어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내 친구들은 딱 정해져 있었다.
서진이와 민지, 진희...
나와 항상 같이 노는 친구들이다.
지질 자주 놀며 우리 집에도 제일 자주 오는 아이들이라 엄마가 기억하고 있다.
난 서진이와 더 친해진 것 같은 느낌에 설레어했다.
다음날이 기대되고 학교에 빨리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난 몰랐다.
내일이 다시 나민이의 날이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