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는 무려 두 명의 남자애에게 구애받고 있었다.
물론 그 둘이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현택이 아닌 다른 사람은 바로 '김강훈'이라는 아이였다.
강훈은 성적도 안 좋고 성격도 별로인 아이라고 한다.
게다가 툭하면 자신의 복싱 실력을 뽐내니 항상 누군가가 다치는 일이 생긴다고도 했다.
심지어 현재의 담임 선생님도 그 아이를 싫어하고 한심하게 보셨다.
그래서 그런지 난 그 아이를 이유도 없이 싫어했다.
민지도 그 아이를 싫어했다.
민지는 진희를 아꼈다.
나보다 몇 배는 더..
그래서 진희는 달이였고, 민지는 해였다.
그리고 난 그 둘에 가린 지구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민지가 진희를 걱정하고 보듬어 주는 것은 당연하다.
난 내가 감히 알지도 못하는 그 아이를 싫어해도 되는 것인지 잠시 머리가 멍해졌지만 다들 안 좋게 보는 그 아이를 굳이 좋아해 줄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멀리서 보이는 그 모습에 그저 악의 없이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진희는 점점 더 우리와 멀어졌고, 쉬는 시간 진희의 반으로 찾아가면 항상 강훈과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뿐이었다.
솔직히 그 둘이 서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 둘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든지 모른 체 할 뿐이었다.
난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점점 메말라 갔다.
한편, 요새 서진이가 좀 이상하다.
요즘 들어 자꾸 우리 반 앞을 기웃거린다.
평소에도 우리 반에 자주 찾아오던 서진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우리 반 학우인 것 같이 행동했다.
나민이가 반에 없어도 줄곧 찾아왔다.
그래서 난 서진이를 불렀다.
서진이와 단둘이서 만남을 갖고 마주 앉았다.
장소는 한밤중의 편의점 앞 벤치
꽤나 낭만 있어 보이는 자리였다.
전부 불 꺼진 상가 아래 작은 편의점...
파랗고 하얀빛이 우릴 비췄다.
"요즘 무슨 일 있어? 낯빛이 안 좋네.."
"음... 사실 나 반에서 따돌림당해.."
서진이는 의외로 쉽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리고 서진이의 고민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성격 좋고 친절한 서진이가 반에서 왕따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들어보니
서진이는 이번에 같은 반이 된 남자아이 두 명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모양이었다.
그 주동자가 누군지 난 잘 몰랐다.
하지만 성격이 아주 못돼 먹은 것은 확실하다.
"어떨 때는 내 책상에 내 욕을 써놓거나.. 또 어떨 때는 내 인형을 남자화장실 변기에 빠트려놓고 내 얼굴에 던지거나.. 한 적도 있어"
서진이는 생각보다 따돌림을 심하게 당하고 있었다.
난 당해봐야 얼마나 더 당할까 생각했는데...
이 정도는 거의 전학 감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물었다.
" 선생님께는 이야기해 봤어?"
"응, 근데... 얘기해본다고 해 놓고 안 하신 것 같아.. 소용이 없어"
서진이의 담임 선생님은 국어를 담당하고 계신 '남정연' 선생님이셨다.
겉으로 보기에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또 마음이 여려 보였다.
" 그럼 또 말해야지... 그냥 가만히 있던 거야?"
내 말에 서진이가 또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서 말했다.
" 말해봤지... 근데 학폭위는 안 열어 주고.. 기도해 주겠다는 말만 하잖아"
남정연 선생... 그녀는 참 어이없는 사람이었다.
학폭위를 열어도 모자랄 판에.. 기도를 해주겠다고?
아주 미친 인간이다.
저런 게 선생이라니... 정말 역겹기도 하다.
난 한번 쓰린 이탓에 속을 두들긴 뒤 한숨을 쉬었다.
서진이는 여기서 일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정사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어쩌면 서진이는 그냥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싶다.
아마 강나민은 기댈 만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툭하면 무시당하고 비교당했을 터이지..
칭찬을 더 듣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서진이는 그래도 참았을 것이다.
끝까지...
난 그런 서진이를 위로했다.
서진이도 굵직 않지만 희미하게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처치가 안타까워 흘리는 것인지 모든 것이 다 거지 같아서 흘리는 눈물인 것인지 그것은 나도 서진이 본인도 모른다.
다음날, 난 민지와 여정이랑 함께 대화 중이다.
도중 반 밖으로 나갔는데 서진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서진이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곧 어떤 남자애의 뒷모습이 보인다.
머리카락이 꽤 길고 부스스한 모습이다.
서진이는 나에게 웃어 보이며 복수하고 오겠다고 신나게 말했다.
난 그런 서진이에게 코웃음을 쳤다.
" 그래, 다녀와"
서진이는 깡충깡충 뛰어 남자애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아주 기쁜듯한 표정에 나까지 웃음이 돌았다.
웃음은 전염병이다.
–
우연히...
난 진희가 강훈과 함께 노는 것을 보았다.
진희는 예전과 좀 달라져있었다.
우리와 노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주로 강훈과 붙어 다녔다.
강훈은 어떤 아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덩치가 꽤 컸고 마치 90년대 한국 남자 아이돌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바가지에 눈까지 내려오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이었다.
진희는 그런 강훈 옆에서 잘도 웃는다.
난 그 모습이 정말 싫었다.
민지와 나의 앞에서도 잘 웃지 않던 진희였기에 난 더 샘이 났다.
진희는 평생 남자아이들과 엮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여나 나쁜 아이에게 걸리면 또 어버버 거리다가 혼자 고통받을게 눈에 선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진희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진희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손을 잡는 모습도... 함께 밤새며 통화하는 모습도... 상상하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강훈과 서로를 알게 되던 순간이 생겼다.
난 어느 때와 같이 연아나 민지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산책 겸이기도 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복도를 걷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복도를 걷던 중..
난 우연히 강훈과 진희가 함께 복도에 나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연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강훈에게 제 주먹을 꽂았고 강훈도 그것이 장난임을 알았기에 적당히 대처했다.
닌 그것을 보고 다들 강훈이라는 애와 아는 사이구나... 싶었다.
난 그 이후로 강훈과 꽤 아는 사이가 되었고 그 후에 좀 더 친해졌다.
이렇게 난 점점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갔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게 해 준 받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