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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방배정

by Shu Aug 31. 2024

다들 반배정을 하려 시끄럽다.

하지만 난 어째선지 반 배정에 대해 몰랐고, 그저 체육 대회를 마친 아이들이 신이 나 떠드는 것인 줄 알 뿐이었다.


그렇기에 갑자기 하린이와 채영이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하는 이유 또한 알지 못했다.

결과는 나 혼자 다른 방에 떨어지게 되었다.


한참 절망하고 있던 때에...

이번에는 버스 자리를 정해야 했다.

회장과 부회장이 종이를 들고 입이 닳도록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흐린 눈으로 들으며 한 귀로 흘렸다.


"자, 이상으로 한 명씩 나와서 자리 고르면 돼"


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앞 다퉈 교탁 앞으로 달려갔다.

난 그 수많은 아이들의 수에 허탈한 표정으로 책상에 엎드렸다.

그런데, 또다시 이지훈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바삐 굴리며 나에게 말을 건다.


" 버스 자리 같이 앉지 않을래?"


난 그 말에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고, 어째선지 그날 이후로 반장이 나와 이지훈을 자주 번갈아가며 보기 시작했다.


수학여행 당일, 우리는 버스 자리에 앉아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혼자만 창 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사실 난 이지훈과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그전에 민지가 했던 말이 조금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훈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난 깜짝 놀라 몸을 잔뜩 움츠리며 성난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뒤를 돌았다.

지훈은 그런 나에게 이어폰 한 짝을 주며 같이 노래를 듣자고 제안했다.


난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오른쪽 이어폰을 받아 들고 힘겹게 귀에 맞춰 끼웠다.

그렇게 노래를 들으며 가는 길 난 이번 수학여행이 내 인생 최악의 수학여행이 될 것임을 짐작했다.


수학여행 장소도 별로 좋지 않은 가평에 있는 한 산의 테마파크이고, 방 배치도 나 빼고 3명 전부 서로 친한 사이였다.

그렇기에 난 벌써부터 '집 가고 싶다'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옆에 있는 지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지훈은 건너 자리에 홀로 놓여있는 제 기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수학여행에서 있을 공연 탓에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난 선행이라도 베풀으려 지훈을 다독였다.


"다 괜찮겠지, 연습 열심히 했잖아. 부담감이 크겠지만 힘내"


지훈은 그런 내 말에 조금의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난 다시 창 밖의 강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금치 다발을 믹서기로 갈아 한번 마신 뒤 토해낸 듯한 색깔이다.


강 물의 색을 보고 인상을 한번 찌푸린 뒤 적색 커튼으로 창을 가렸다.

다들 강물 색이 이상하다며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난 모든 소음을 차단한 듯 팔짱을 끼고 의자 받침에 등을 기댔다.


한참이 지난 후, 테마파크에 도착했다.

이 테마파크는 내가 어렸을 때 한번 와 봤던 곳이다.

그때는 사람이 많았는데 오늘은 어째선지 우중충한 하늘만 보인다.

우리는 반 마다 단체로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4인용 레일 바이크뿐이다.

레일 바이크 몇십 대가 한 곳에 모여 징그러워 보일 수준으로 붙어있었다.


난 전에 이 테마파크에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4명이 해도 매우 힘들었었던 것 같다.

기억 속의 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페달을 굴리고 있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난 레일 바이크 오른쪽에 탑승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레일 바이크는 쉽게 움직였다.

게다가 뒤쪽에 탑승한 아이들은 2명은 힘이 매우 약한 여자 애들이었기에 따라 잡힐 걱정도 없었다.

또 앞은 쑥쑥 잘 나가는 남자 애들 4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팀이라 답답하지도 않았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자 내 걱정도 솜사탕 녹듯이 사르르 녹았다.

레일 바이크에서 내리자 많은 아이들이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1반의 지유와 유민이, 희지도 보였다.

셋은 같은 반이라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이호준이 나를 막아섰다.

이호준은 학교에서 종종 나에게 시비를 거는 녀석이다.

난 그런 호준의 배에 한방 먹인 후 옆으로 비켜섰다.


이런 낯선 곳에서 내 친구들을 만난 것은 으 어느 때 보다도 신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난 희지와 유민이에게 뛰어갔다.

둘은 내성적인 성격에 조용히 나를 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내가 아니었기에 난 다시 둘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기적적인 만남의 시간은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난 그 버스에 올라 유민이의 옆에 앉았다.

가는 길에 나무나 강이 많아서 버스에 벌레가 계속해서 출입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우르르르 몰려 도망치는 발소리도 들렸다.

난 그 소리의 방향에 따라 고개를 움직이며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 의자를 덜컹거렸다.

나 또한 6개 이상의 다리를 가진 생물을 무서워했다.

그렇기에 난 어느 순간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검은색의 생물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난 그 뒤로 안심하고 버스 밖의 풍경을 즐기기 시작했다.

버스로 본 바깥 모습은 아까 본 것들과는 달랐다.

푸른 하늘과 뭉게뭉게 구름, 흔들거리는 생생한 나뭇잎들은 내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고, 저 멀리에 보이는 작은 집들은 마치 만화 속에 나오는 집 같았다.

난 이런 풍경을 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이후, 버스를 타고 내려온 직후...

우리는 다시 또 다른 버스를 타야 했다.

두 번이나 버스를 타는 것은 멀미를 잘하는 나에게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고 결국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려 고통을 호소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며 수학여행 분위기가 한참 끓어오르던 때...

난 혼자서 갈곳 없이 떠돌고 있었다.

수학여행에서 난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같은 반에 친구 한 명씩은 다 있기에 난 더욱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지고 우리는 실내로 들어갔다.

내가 가봤던 G 리조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시설이 좋지 않다거나 경치가 구리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G 리조트 보다 훨씬 좁았고..

놀거리도 없었다.

외부는 더 했다.


좁은 로비에, 낮은 천장...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난 그래도 이 정도에 만족하자... 하고는 속으로 구역질을 했다.

그 좁은 로비에 100명이 넘은 학생들이 가득 들어차니 좁아서 어디 발 내달 곳도 없어 보였다.


난 배정받은 방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2층에 도착하고, 조심스레 백색의 차가운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러자 안에서 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와 그 애들은 서로 어색한 사이니 문을 열어주는 데에 시간이 걸릴까 싶었다.

1분 후...


그 무리 중 한 명이 문을 열으며 멋쩍게 웃었다.


" ㅎㅎ.. 안녕?"


"아.. 응, 안녕"


난 오른쪽 어깨에 검은색의 큰 가방을 매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방의 모습은 괜찮았다.

거실도 넓고 쾌적했다.


난 아이들이 짐을 모아 둔 방에 내 가방을 던져 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노란색의 조명이 반짝 거리는 화장실은 꽤나 세련되어 보인다.

난 이런 깔끔한 방의 모습에 한번 안심했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은 거실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는 테이블 앞으로 모였다.

다들 대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여자애들 중 가장 예쁜 애가 나를 불렀다.


"지윤아, 너도 같이 게임할래?"


"응? 좋아"


난 바로 그 여자애의 옆에 앉았다.

옆에서 보니 코도 꽤 높고 눈도 트여있었다.

난 다시 정면을 보고는 세 명이 대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누군가의 욕을 하기도 하고...

재밌는 일화를 얘기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한 명이 중간에 앓아누우며 테이블 앞에 남은 것은 세명뿐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말이 잘 통했고...


새벽 3시쯤..

난 홀로 방에서 잠에 들었다.

어느새 아침이 찾아오고 시곗바늘은 숫자 7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 로비로 내려가 진희와 강훈의 옆에서 조식을 먹고 일어섰다.


곧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지긋지긋한 빨간 버스를 타고 또다시 긴 시간이 지나 마침내 버스는 학교 앞에 멈춰 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인지 하늘은 주황빛을 띤 해가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곧이어 똑같은 버스들이 도착하며 아이들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덕분에 거리에는 큰 가방을 든 아이들로 넘쳐났다.

우리는 묘하게 힘 빠지고 벅찬 마음으로 집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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