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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노래실력

대학교 축제

by Shu Sep 16. 2024

지훈과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아직 손도 안 잡은 갓 시작한 연애였다.

물론 이 연애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내 인생, 내 이야기에 갑자기 끼어든 이 아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있다.


지훈은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다가왔다.

이쯤 되었으면 질렸겠다 싶어 또 그를 확인해 보면 여전히 같은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의아했다.


여태껏 만난 아이들 중에 이렇게까지 질기게 내 옆을 지키던 아이는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난 이 아이를 버릴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한 번씩은 꼭 지훈에게 잘해주라는 말을 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던 중, 나무 무성한 산 위에 있는 대학에서 곧 있을 축제에 강훈과 진희가 신난 모습으로 나에게 왔다.

둘은 아마 대학교 축제에 갈 모양이었다.

실은 나도 대학 축제에 가보고 싶었다.


마침 지훈이 나에게 연락했다.

각진 말풍선이 파란 배경으로 떠오르며 글자가 몇 보였다.


-나랑 같이 대학교 축제에 가지 않을래?-


-그래-


난 지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미 갖가지 변명과 방법으로 지훈과의 약속을 거절한 지 5번째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내 걱정은 이미 하늘 높이 구름을 뚫고 우주까지 닿을 지경으로 쌓였다.


지훈과 함께 다니면 존재감 없던 내가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또 이상한 소문도 퍼질지 몰랐다.

그렇기에 난 앞으로 퍼질지 모를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강훈과 진희의 앞으로 찾아갔다.

강훈과 진희도 함께 대학 축제에 가는 것이 내 방법이었다.


"너희도 같이 대학 축제 가지 않을래?"


"뭐,  나쁠 것도 없지. 진희야 정사장이랑 같이 가도 되지?"


강훈은 나를 정사장이라 칭하며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여자 아이들 중 가장 친한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훈도 같이 가야 해. "


내 말을 들은 진희는 강훈과 몇 번의 눈 맞춤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럼 커플끼리 가는 거네."


"어..? 뭐, 그렇지."


난 잠시 당황했다.

내가 지훈과 사귀는 것을 잠시나마 잊은 것 같았다.

난 곧 정신을 다잡은 뒤 하교 시간을 기다렸다.


하교 시간부터 1시간이 지난 후, 진희가 먼저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다.

강훈과 꽉 잡은 그 손이 마치 기차 칸마다의 연결고리 같았다.


그렇게 지훈 또한 우리 집 앞으로 도착했다.

지훈은 갑자기 보이는 진희와 강훈에 조금은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내 옆에 서 진희와 강훈을 앞에 둔 채 걸었다.

진희와 강훈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둘이 친해진 것이고, 어떻게 저렇게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난 슬쩍 지훈을 바라봤다.

어느 때와 같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

물론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지훈도 나와 같이 별것 아닌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겠지.


우리는 푸른 밭을 바라보며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버스 정류장의 넓은 벤치만큼은 P시가 U시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저 멀리에서 우리가 탈 버스가 느릿느릿 바퀴를 굴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진희는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고, 강훈도 주머니를 뒤적이며 버스에 오를 준비를 했다.


그것은 지훈과 나도 마찬가지였고..

우린 버스에 올랐다.

산 높이에 있는 대학 탓에 가는 길은 꽤나 험했다.

대학 축제에 가는 길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아, 앉을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난 넘어질 듯 말 듯 하며 겨우겨우 버스 오른쪽에 있는 봉을 잡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정문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벌써부터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시끄럽게 땅속부터 울려 퍼져 내 발끝을 간질이는 음악은 덤이었다.

나는 귀를 막으며 넓은 잔디밭에 발을 올렸다.

저 멀리에서 무명도, 유명인사도 아닌 그저 그런 옛날 래퍼들이 마이크를 잡고는 열심히 랩을 하고 있었다.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강훈이 갑자기 제 배를 부여잡았다.


"너희는 배 안 고프냐?"


우리는 강훈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178센티의 또래치고는 좀 큰 키, 복싱과 식단으로 다져진 큰 덩치를 보면 배고플 만도 한 것 같다.

그래선지 우리가 고개를 한번 돌릴 때마다 강훈은 어디서 사 온 것인지 각종 음식과 컵라면을 들고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 강훈을 보면 이곳에 혼자 둬도 잘만 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강훈을 뒤로 한채, 난 진희와 지훈 옆에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지훈과 나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함이 감돌고 있었지만 진희덕에 한껏 긴장한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역시 지훈과의 약속에 진희와 강훈을 껴 넣기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진희는 음식을 사러 눈앞에서 사라진 강훈이 몇십 분째 돌아오지 않자 벤치에서 슬금슬금 엉덩이를 떼었다.


난 속으로 진희가 제발 강훈을 찾으러 가지 않기를 빌었다.

진희는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결국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훈을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난 점점 멀어지는 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절규했다.


그렇게...

난 지훈과 단둘이 남겨지게 되었고, 아까부터 계속 꾸벅꾸벅 졸던 지훈은 어째선지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런 지훈의 모습에 덩달아 나까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무대용 조명이 내 얼굴을 비추며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난 조명이 너무 밝다는 이유로 고개를 돌려 맨 땅을 쳐다봤다.

지훈 또한 제 안경을 벗어 놓고는 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렸다.


평소 안경을 끼지 않던 지훈이였지만 어째선지 오늘은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었다.

시력이 2.0으로 매우 좋았던 지훈이였기에 이런 지훈이 안경을 쓴다는 것은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어울리지 않았다.


곧 저 멀리서 진희와 강훈이 음료수와 컵 떡볶이를 들고는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저 당당한 걸음걸이가 정말 얄밉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나를 두고 강훈을 찾으러 간 진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끝내고, 슬슬 해가 질 때.

강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일어나라고. 이대로 집에 가긴 좀 아쉽지 않아?"


난 강훈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이미 텐션이 오를 대로 올라버린 강훈에게 그런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10시까지 2시간 남았으니까, 노래방이라도 가자!"


강훈은 진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나와 지훈은 평범하게 각자 일어났다.


그리고 강훈이 가는 대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강훈은 혼자 신나 잔뜩 떠들어대는 탓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너희는 참 닮은 점이 많아~"


난 강훈의 장난 섞인 말에 지훈을 쳐다봤다.

지훈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우리가..? 어떤 부분이 닮았다는 건데.."


"일단 둘 다 잠이 많고, 항상 피곤해 보여!"


난 강훈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을 뿐이었다.

강훈은 내가 다크서클이 좀 심하다면서 판다를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강훈은 피라니아를 닮은 것 같았다.


"강훈아!"


진희가 강훈의 등을 한번 때렸다.

강훈은 진희가 화낼 때면 마치 자신이 개라도 된 것처럼 발발 기었다.

거기에 되지도 않는 애교질은 필수였다.


난 그 광경을 보며 항상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강훈은 내 눈을 찌푸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 더 이상한 질문까지 했다.


"그런데 너희는 커플 같지가 않다?"


"..."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지훈과 난 커플 같은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손도 잡지 않고, 서로 마주 보는 일도 별로 없다.

마침 강훈이 말했다.


"그럼 오늘 손 잡으면 되겠네~ 잡아라 잡아!"


강훈의 부추김에도 난 그저 내 손만 꼼지락 댈 뿐이었다.


"우리가 알아서 차근차근해 나갈게. 네가 신경 쓸 것은 아니잖아?"


지훈은 강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언뜻 보면 제 여자 친구가 곤란해하기에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지훈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며칠 전, 지훈과 난 평소처럼  함께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훈이 가던 길을 멈추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서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잠깐 손 좀 줘 볼래?"


난 이번에도 지훈이 초콜릿이나 작은 간식 따위를 주려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지훈은 다른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훈에게 손을 내밀었고, 지훈은 그런 나의 손바닥 위로 제 손을 포개려 했다.

난 갑작스러운 지훈의 행동에 놀라 재빠르게 손을 빼버렸다.


이러한 상황에 지훈 또한 당황한 듯 보여 동공이 미친 속도로 흔들렸다.

아... 이를 어쩌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미안해, 싫으면 안 할게."


사실 이랬던 적이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손이 조금 닿기라도 하면 바로 깜짝 놀라 빼버리곤 했다.

그렇기에 지훈이 상처받아 토라지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지훈은 잘 삐지는 아이였다.


그런 지훈에게 불만을 갖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지훈은 감정 소비가 심했다.

무슨 일이 있든 그냥 넘어가는 나와는 달리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지훈에게 아쉬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훈과 아직은 어색한 사이이기도 하고...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기에 어물쩍 넘어갔었다.


그렇게 현재, 지훈은 아직도 나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평소의 친절한 미소는 개나 줬는지 마치 강훈을 보듯 나를 쳐다본다.


난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아 양팔을 손으로 문질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와 지훈은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 노래방에 도착했다.


소파형 의자가 계단처럼 두 개 놓여있었다.

강훈은 자연스레 2층의 의자에 누워 마치 티브이 시청 중인 아버지인 듯이 턱을 괴었다.

덕분에 나와 진희, 지훈은 쭈뼛거리며 1층에 나란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


진희가 먼저 마이크를 집어 들고는 강훈에게 건넸다.

전주가 흘러나오며 급하게 노래방 모니터의 화면이 바뀐다.

파란색의 가사들이 줄지어 모니터를 채우고서 반짝 거리는 화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강훈의 노래를 기대했다.

강훈이 슬슬 입을 열고 정말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의 노래 실력이었다.

심지어는 모니터에 떡하니 나와있는 가사마저 조금씩 틀렸다.


난 강훈의 충격적인 노래 실력에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너 노래 진짜 못 부르는구나?"


강훈은 민망한 듯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엄청난 노래를 선보인 후, 이제 진희의 노래를 들을 시간이 찾아왔다.

진희는 노래를 잘 부른다.


조금 낮은 목소리 톤이 노래의 디테일을 더 해 주기도 했다.

난 집중하여 진희의 노래를 들었다.

어째선지 진희의 노래를 들으면 잠이 솔솔 쏟아졌다.


워낙 잘 불러서 그런가?

난 곁눈질로 지훈을 쳐다봤다.

어둡고 여러 색의 불빛이 비춰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무표정이다.


난 그런 지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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