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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질투심과 배려

by Shu Sep 23. 2024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였다.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불빛과 티브이 화면이 반사되어 흰색으로 비치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게 내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난 슬쩍 강훈과 진희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의 고개는 오직 방 앞에 놓인 모니터만을 향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난 내민 손을 다시 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는 지훈을 째려봤다.

용기 내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 줄은 몰랐다.

내 눈은 다시 모니터 화면 속을 비췄고, 지훈 또한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강훈의 끔찍한 노래를 듣고 노래방을 나왔다.

지훈은 강훈의 형편없는 노래 탓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인지 한참 허공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공허한 시선이 하필이면 진희를 향했다.


난 그런 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 강훈의 뒤에 슬쩍 숨었다.


"뭐야, 정사장! 남자 친구랑 있으라고."


눈치 없는 강훈이 내 등을 떠밀어 지훈의 어깨에 밀착시켰다.

지훈은 슬쩍 뒤로 한 발짝 내디뎠다.

덕분에 난 휘청거리며 옆에 있던 벽을 짚게 되었다.


내가 저런 애를 남자 친구로 두게 되었다니...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 고개를 휙 돌려 지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애써 내 시선을 피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지훈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훈은 또 어디선가 빵을 들고 와서는 쩝쩝대며 맛있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저게 운동하는 사람의 식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훈은 오래전부터 복싱을 해온 것 같다.

제 말로는 실력도 나쁘지 않고, 몸 관리도 꾸준히 한다고는 하지만...


난 괜히 지훈을 보며 혀를 찼다.

다시 넷이서 길을 걷기 시작할 때, 갑자기 지훈이 양손으로 내 어깨를 감쌌다.

난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거리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지훈은 차도 쪽에서 걷고 있던 나와 자리를 바꾸었다.

다들 그런 지훈의 행동에 놀란 모양이다.


"오오, 이지훈~ 멋진데?"


강훈이 또다시 휘파람을 불어댔다.

난 그런 강훈을 무시한 채 지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지훈은 여전히 무뚝뚝한 무표정이었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모습에 조금씩 내 얼굴에도 미소가 피기 시작했다.

지훈은 강훈의 주접에 민망해졌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차도 쪽으로 걸으면 위험하니까..."


지훈은 이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입을 꾹 닫았다.

덕분에 나도 덩달아 아무 말하지 않게 되니, 안 그래도 조용했던 밤거리가 더 고요해졌다.

이 침묵을 깨고 강훈이 지훈과 나를 향해 말을 붙였다.


"너희는 이제 손 좀 잡지 그래, 사귄 지 일주일은 되지 않았어?"


그 말에 과묵한 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아서 한다니까."


지훈의 말투는 여전히 나긋나긋했지만 전보다 날카로운 듯했다.

난 이대로면 또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될까 두려워 마지막 방법을 쓰기로 했다.


슬쩍 지훈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지훈은 내 손바닥과 내 눈을 번갈아 보며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곧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지훈의 손은 매우 차갑고 거칠었다.

그럼에도 점점 부풀어 오르는 부드러운 감정에 금방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한참을 땅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

지훈은 내 집 바로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고는 옆 아파트에 사는 강훈과 함께 학교 옆 길로 사라졌다.


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어졌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왠지 벅차고 왠지 즐거운 날이 된 것 같다.

난 대충 겉옷을 던져 의자에 걸어 놓고 이불을 덮었다.


-


다음날, 지훈에게서 디엠이 왔다.


-오늘 오후에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난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지훈의 갑작스러운 말에 난 급히 가방을 챙겼다.

사실 그동안 지훈의 집에 가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 있던 것은 아니다.

반 남자애들이 떠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로 인하여 난 지훈의 방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난 지금 그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어느덧 시계 시침은 오후 7시를 가리켜 가고, 내 심장 또한 두근댔다.

난 급히 운동화를 구겨 신고는 옆 아파트로 향했다.

내 발걸음은 기대를 한가득 품어 산뜻하면서도 무거웠다.


띵-동


지훈의 집 현관문 앞에 도착한 후, 작은 원형 버튼을 누르고서 지훈을 기다렸다.

곧 두꺼운 철문이 슬쩍 열리고 그 틈에서 머리가 부스스 한 병아리 같은 모습의 그 아이가 나왔다.

난 자다 깬 사람 같은 지훈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훈은 볼을 붉히며 제 머리를 급히 털어내고는 나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었다.

예상대로 지훈의 집은 매우 깔끔했다.

하얀 벽지에 하얀 바닥이었다.


지훈은 쭈뼛대며 제 방문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러자 노란색의 조명이 빛나는 방이 보였고, 방 한 곳에 놓인 책상 위에는 여러 악보와 책이 널브러져 있고 모니터 옆에는 각종 장비와 녹음용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난 그런 지훈의 방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매우 깔끔하고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듯한 모습이었다.

지훈은 회색빛 의자에 나를 앉혀 놓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난 체조하듯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며 지훈의 방을 구경했다.


곧 지훈이 컵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밖에 많이 덥지?"


"아냐, 물 준거 고마워."


난 컵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몇 모금 채 안 마시고  책상에 살포시 컵을 내려놨다.

지훈은 많이 긴장한 탓인지 그 큰 머그컵에 반이나 채워져 있던 물을 한꺼번에 벌컥벌컥 마시고는 책상에 쾅하고 내려놓았다.


"음... 내가 기타라도 쳐 줄까?"


"그래."


지훈은 벽 한 곳에 기대어 있는 기타를 잡아 들었다.

밝은 베이지 색상의 일렉기타였다.


"기타 친지는 얼마나 됐어?"


지훈은 세모난 피크를 집다 말고 내 눈동자를 쳐다봤다.

지훈의 손가락 끝마디가 기타 줄을 휙 하고 쓸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한, 5년 됐으려나? 일렉기타 시작한 지는 2년밖에 안 됐어."


"그렇구나."


난 이리저리 시선을 굴려서 지훈의 기타를 관찰했다.

기타 표면 위에 빵이나 과자에 들어있는 스티커가 몇 개 붙어있었다.

울퉁불퉁한 지판 위로 굵기도 제각각인 줄들이 세로로 길게 뻗어있다.


지훈은 긴 손가락으로 기타 표면을 몇 번 두드렸다.


"음... 어떤 노래가 좋으려나.. 좋아하는 노래 있어?"


"글쎄, 네가 제일 자신 있는 곡으로 부탁할게."


그러자 지훈은 평소와 다른 매우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지훈은 정말 기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타에 한에서는 장난스러운 초등학생 아이가 되었으니까.


곧이어 지훈은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기타 줄이 탄성 있게 움직이며 큰 소리를 냈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일렉기타의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다.


아니, 애초에 실제로 일렉기타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기나 하던가?


지훈은 무대 위에서와 같이 환상적이고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어떨 땐 귀가 녹듯 부드럽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강한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난 이런 지훈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지훈은 이렇게까지 멋있고,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난 지훈의 연주를 듣고 나서 웃음을 터트렸다.

지훈의 연주에 집중하는 표정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던 것인지, 이 놀라운 연주에 감동해 결국 미쳐버린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큼.. 그럼 기타 연주는 이만 끝내고, 영화나 볼까?"


지훈은 책상 앞 의자에 앉아 키보드에 양손을 올렸다.

지훈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분홍색 귀여운 키보드에 또 웃음이 나오려 하는 것을 꾹 참았다.

지훈은 매우 빠른 타자로 한 공포영화를 찾아내었다.


"공포영화 좋아해?"


"좋아하긴 해."


지훈은 키보드 자판을 손 끝으로 눌렀다.

그러고서는 나를 보고 또다시 장난스레 웃었다.

눈가가 구겨지며 올라가는 입꼬리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난 그런 지훈을 보며 어색하게 미소 짓고는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며 내 얼굴에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이 교차하며 비쳤고, 지훈은 내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다 내 옆으로 한 뼘 다가왔다.

어느새 우리 둘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지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더욱 가까워졌다.


자연스레 지훈의 팔이 내 어깨에 올라가 있을 때쯤..


"악!"


영화에 너무 몰입했던 탓일까...

갑작스레 나온 무서운 장면에 그대로 소리를 질러버렸다.

지훈은 내 비명을 듣고 놀라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처럼 들썩 거렸다.

그리고 곧 웃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무서우면 내 어깨에 기대도 돼."


난 딱히 무섭진 않았지만 지훈의 어깨에 기대었다.

아까보단 놀라는 게 덜하여 꽤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본 후, 고개를 슬쩍 들어 지훈의 얼굴을 보았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듯한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훈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마른세수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 사실 무서운 거 잘 못 보거든."


"그럼 왜 보자고 한 거야?"


"하하..."


지훈의 멋쩍은 웃음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가 벅차 피곤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렸다.


-


난 책상에 팔을 괴고서 가만히 칠판만 바라봤다.

전등이 고장 나 뒷자리에 빛이 안 비쳐 잠이 쏟아졌다.

난 졸려움을 참으며 꾸벅꾸벅 졸뿐이었고, 선생님은 나와 같이 졸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기 바빴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의욕 없이 그저 그런 날.

아침부터 피곤하고... 시간표는 차례로 국•영•수에

끝나는 시간은 4시 30분으로 일주일 중 제일 늦는 시간이었다.


난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한번 한 뒤에 책상에 엎드렸다.

부디 이 지루한 날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어느새 2교시가 시작되어 있었다.

난 복도 쪽의 창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쉬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을 보러 가지 못했다니... 난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낼 뿐이었다.


지루하고도 긴 수업 시간이 끝나고, 2시간이 더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무언가를 먹을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책상에 엎드려 창문 밖만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이 아닌가.

난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 놀랐어? 미안해."


역시나 지훈이였다.

난 가만히 지훈을 쳐다보다 다시 책상에 몸을 뉘었다.

지훈은 그런 나를 바라보다 말고 무언가를 건넸다.


"지금 가진 게 이것뿐이라..."


빨간색의 막대사탕이었다.

하얀색 플라스틱 막대에 마치 구슬 같은 동그란 사탕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예쁜 빨간색에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거리는 사탕이었다.


"고마워."


난 사탕을 받고 바로 주머니에 사탕을 욱여넣었다.

지훈은 멍한 눈으로 내 주머니를 응시했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주머니 속 사탕이 부스럭거릴 때마다 지훈의 미간이 구겨졌지만...


곧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훈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나 때문에 놀란 듯했다.


"아, 민지 만나러 가려고.."


"그렇구나..."


지훈은 흐린 눈으로 나와 눈 맞추기를 꺼리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난 그런 지훈을 무시한 채 교실을 나왔다.

그러고 나서 난 곧장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부드러운 스펀지형 슬리퍼에 매끈한 바닥이 마찰했다.


민지의 반에 도착한 이후, 난 단단한 나무문을 밀고 민지의 반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민지의 손에 빨간색의 막대 사탕을 쥐어주었다.


"뭐야, 뭔데...?"


민지는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난 그런 민지에게 살짝 웃음을 보이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다행히 지훈은 교실을 떠난 것 같았다.

난 텅 빈 교실 뒤편에 앉아 가만히 다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허공에서 먼지가 빙그르르 돌다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공중에서 곡예를 부리는 먼지처럼 내 기분도 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시간이 지나가고...

난 서둘러 학원으로 달려갔다.


평소 학원에 자주 가지 않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학원을 빠질 수 없었다.

난 짧은 내 다리라도 빠르게 움직이며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서도 역시나 지루한 시간을 보냈고, 곧 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난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이런 식으로 허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사람은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또 다른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9시가 되었다.

내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책상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난 인상을 한번 찌푸리고는 몸을 숙여 핸드폰을 주웠다.


그리고 난 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좀 이상하네. 미안한데, 지윤아 학교로 좀 와줄 수 있어?


지훈의 메시지였다.

난 지훈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너무 놀라 심장이 멈춘 듯했다.

곧장 난 겉옷을 두르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뒤 집을 나섰다.


학교 돌 담벼락 사이로 들어서니 체육관 및 공간이 보였다.

밤이라 그런지 주변은 매우 어두웠다.

난 마른침을 애써 목구멍 뒤로 넘기고서 학교 안을 걷기 시작했다.

우선 체육관 및부터 걷기 시작하는데...


얼마 안 가 벽돌로 된 벽 사이의 계단에서 지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단에 앉아 제 무릎에 이마를 박고서는 미동조차 안 한다.


게다가 머리를 양 팔로 감고 있어 얼굴 또한 보이지 않았다.

난 그런 지훈의 옆에 앉았다.

지훈의 왼쪽 옆에는 검은색의 큰 기타 가방이 유리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괜찮아?"


난 지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역시나 아무 말도 없다.


난 지훈의 팔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지훈은 왼쪽으로 기우뚱하고 넘어가려다 몸을 일으켰다.


"아... 왔어?"


지훈은 눈을 비비며 가늘게 뜬 실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울었나 싶은 빨간 눈가에 몸을 낮춰 지훈의 얼굴을 바라봤다.


"울었어? 여기서 혼자?"


"응."


"왜 울었는데?"


지훈은 그재서야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비춰오는 가로등에 빛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난 그런 지훈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잘 안 돼서.."


지훈은 양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한 글자씩 말을 해 나갔다.


"나한테는 이거밖에 없는데... 난 기타 하나 할 줄 아는데..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지훈의 흐린 시선이 왼쪽에 놓여있는 기타로 향했다.

지훈에겐 기타가 전부였을 것이다.

무려 5년 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제는 쉬어 갈 때가 된 것일 지도 모른다.

난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남에게 좋은 소리 한번 못하는 나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뭐든지 칭찬하고 좋게 봐주고 싶었다.

이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 아이가 더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난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너 열심히 했잖아,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어. 넌 노력했고... 충분히 재능 있어. 설령 다른 사람이 몰라 준대도 내가 알아주면 되잖아."


지훈은 내 말에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동그란 눈이 붉게 충혈되고, 코 끝은 빨갛게 물들었다.

난 10시가 됐음에도 지훈을 차마 두고 가지는 못했다.

지훈은 조금 더 훌쩍이다 말을 꺼냈다.


" 나 사실... 우울증이 있어서. 다른 애들이 웃을 때도 못 웃고, 항상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돼.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해까지 했어."


"어...."


지훈의 말은 내가 말을 더 이상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난 지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지훈이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말했다.


"넌 나 좋아해? 이래도 괜찮아?"


설마 했던 말이 나왔다.

난 마른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줘야 지훈이 안정을 찾을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답변하기가 어려웠다.


"좋아하지, 그러니까 걱정 마. 난 네가 우울증이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러자 지훈은 소매로 제 눈가를 닦았다.

훌쩍거리는 소리와 소매 문지르는 소리가 뒤엉키며 내 귓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난 귀를 막는 것 대신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선택했다.

어차피 어두운 곳이라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인데, 큰 동작보다는 표정만 일그러트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고마워.... 진짜. 난 너밖에 없어."


난 순간 놀랐다.

지훈이 날 꽉 끌어안은 것이다.

이 와중에 내 손은 갈 곳을 잃어 허공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어어... 그래.."


지훈은 날 더욱 강하게 끌어안 있다.

난 내 몸이 풍선처럼 터질까 두려워 지훈을 살짝 밀어냈다.

지훈은 곧 진정된 모습으로 내게서 떨어졌다.


"고마워, 진짜.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학생들. 이 시간에 뭐 해?"


지훈은 재빠르게 기타 가방을 집어 들고는 소리쳤다.


"죄송해요, 금방 나갈게요!"


그렇게 우리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지훈은 쫓겨나 놓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긋방긋 웃어댔다.

난 그런 지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


"무슨 소리야, 늦었는데... 내가 데려다줘야지."


난 지훈의 말에 마지못해 끄덕였다.

그렇게 도착한 집 현관문 앞, 지훈은 내게 손을 흔들며 은은한 미소를 보였다.

나 또한 미소로 답했고, 곧 멀리 사라지는 지훈의 뒷모습을 보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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