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시의 거리는 항상 화창하고도 뜨겁다.
사람은 붐비고 차들은 빵빵대며 바삐 움직인다.
나라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그곳, 바로 S시.
우린 지금 그곳에 나와있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S시에 나온 이유가 있다.
바로 곧 여름 방학이 끝나기 때문이다.
공허하고 짧은 여름방학을 채우기 위해 강훈이 배드민턴 부활동을 연다고 했으나 여전히 무소식이고...
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와중 내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정해진 멤버는 나 포함 총 4명이었다.
민지와 진희, 서진이, 나.
이렇게 4명은 당장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민지, 진희가 나서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으나 별로 좋은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결국 또다시 내가 나서 갈 곳을 알아내었다.
우리가 갈 곳은 S시의 H역이었다.
높은 건물과,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놀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무얼 할 것이냐 하면...
사실 놀거리를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난 엄청난 손놀림으로 금세 놀거리까지 찾아냈다.
내가 인터넷을 뒤져 약속 하루 전날에 놀 장소와 놀거리를 알아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민지와 서진이가 조금 거슬렸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 당일,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모이게 되었다.
평소 약속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자주 늦는 나였지만 오늘은 제때 준비를 마치고서 약속 장소에 나왔다.
약속 장소에서는 민지와 서진이, 진희가 나를 반겼다.
다들 한껏 빼입은 듯한 모습이다.
진희는 믹스 커피의 달콤함이 느껴지는 색의 긴 원피스와 부드러운 크림 같은 리본을 머리에 달고 있었다.
오늘의 진희는 내가 봤던 모습 중 제일 아름다워 보였다.
진희 특유의 어른스러운 분위기와 찰랑이는 긴 머리가 잘 어우러졌다.
반면에 난 평범한 흰색 티셔츠에 짧은 청치마를 입고 있었다.
민지와 서진이 또한 진희와 같이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었다.
덕분에 난 그들 사이에서 제일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난 어깨에서 흘러내리려는 가방끈을 붙잡고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다들 내 꼴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그때, 진희가 한참을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말고 입을 열었다.
"우리가 탈 버스가 곧 도착한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 앞으로 빨간색의 버스가 빠르게 달려왔다.
우리는 기다릴 필요 없고 잘됐다며 하나둘씩 버스에 탑승했다.
오늘 우리 넷의 기분은 하늘로 쏟아 오른 큰 타워처럼 아주 높이 치솟았다.
버스에 오르자 작은 진동과 떨림이 느껴졌다.
이것이 곧 있을 S시 여행을 기대하는 떨림인 것인지 버스 차체의 떨림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버스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바퀴에 깔린 아스팔트 조각들이 단단히 뭉쳐 마찰음을 내었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 여정이 시작되었다.
30분 후..
버스 밖의 풍경을 거의 영화 보듯 관람하기도 지쳐 몸도 마음도 이미 쓰러져 있었다.
버스 밖 거리의 풍경은 시골 농촌에서 건물과 사람들이 많은 도시로 점점 변해갔다.
난 S시의 거리를 보며 감탄했고, 내 옆자리에 앉은 민지도 그런 듯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S시의 J였다.
등대처럼 우뚝 쏫은 큰 타워가 돋보이는 도시였다.
진희는 어플 지도를 보며 우리를 이끌어 주었고, 발걸음이 닿은 곳은 지하철 역이었다.
U시와는 달리 매우 복잡하고 큰 승강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건물들, 많은 차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고, 낯선 거리에 우리는 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성공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게임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 SNS에서 떠도는 땀 흘리기 게임의 일종이었다.
바닥이 컴퓨터 화면처럼 바뀌는 것을 밟고 다니는 게임이었는데 운동 대신으로 하기도 좋다고 한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런 게임 한번 하고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미리 예약해 두었었다.
민지가 작은 직사각형 박스에서 실내화를 꺼내었다.
게임장 앞에 놓인 큰 박스 앞에 노랑, 빨강 형광펜으로 삐뚤삐뚤한 글자 몇이 쓰여있었다.
-실내화를 신고 들어오세요.
그 글을 처음으로 본 민지가 먼저 실내화를 갈아 신기 시작한 것이었다.
민지는 신고 나온 검은색 구두가 벗기 힘들었는지 거의 넘어질 듯 기우뚱 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뭘 저렇게까지 꾸몄는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따라 민지만 보면 뭔가 묘했다.
마치 과거의 나민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민지가 화장을 시작하고서부터 내 인상은 점점 더 구겨졌다.
민지는 여전히 착했다.
민지의 성격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으나 행동과 말은 달랐다.
난 그런 민지를 보며 허탈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고, 이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다 신발을 갈아 신은 후에 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게임장 안은 매우 어두웠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클럽의 뒷모습 같은 분위기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카운터의 직원은 우리를 보며 무표정으로 성의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환영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직원의 태도에 별 관심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테이블 앞에 앉아 휴지곽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중간마다 들리는 사람들의 환호소리, 웃음소리가 귀에서 맴돌아 미칠 지경이었다.
옆 테이블의 남녀 커플들은 서로를 다정하게 쳐다보며 실실 웃기만을 반복한다.
우리는 그 틈에 끼어 고통받으며 우리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30분이 지나고...
직원이 우리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 이제 입장하실게요."
직원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향한 곳은 공허한 어둠만이 가득한 한 방이었다.
직원은 작은 몸뚱이로 우리를 그 방에 몰아넣고 문을 쾅 닫았다.
덕분에 찬 바람이 내 얼굴을 강타하여 고정해 두었던 앞머리를 흩날리게 하였다.
난 바람과 섞여온 먼지에 기침을 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방의 정 중앙에 있던 모니터에 불이 들어왔고 우리는 이제야 서로의 얼굴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닥에는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정 사각형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룰은 간단했다.
빨간색을 밝게 되면 점수가 깎이고, 파란색을 밟으면 점수가 올라가며 초록색을 밟고 있으면 빨간색이 있어도 안전하다.
점수는 모니터에 나타나며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한 명의 인생 같은 게임이었다.
우리는 모두 벽에 찰싹 붙어 게임이 시작하는 것을 기다렸다.
서진이는 이미 벌써부터 빨간색 타일에 발을 두고 있었다.
진희는 얼마나 진심인 것인지 벽과 아주 한 몸이 되려 한다.
게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은 항상 쉽다고 하길.
다음 단계는 더 난이도가 올라가 힘들었다.
이리저리 밟고, 뛰어다녀도 제자리였다.
땀을 흘려도 다음단계로 가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차분히 게임을 진행했고 넘어지고 서로 부딪히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다음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게임을 끝내고 나니 다들 헉헉 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움직인 것으로 3 킬로그램은 빠진 것 같았다.
물론 이건 내 바람일 뿐이겠지만...
한참을 뛰어서 그런가 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듯 땅을 흔드는 대지진이 내 뱃속에서 일어났다.
진희는 핸드폰을 보며 한참을 제자리에 멈춰있었고, 민지는 덥다며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서진이는 별 불만 없이 가자는 곳은 다 따라가고 가지 말자는 곳은 피했다.
난 그런 친구들 틈에서 어떻게 할 것 없이 그대로 굳어있었다.
다양한 사람이 많이 모여 북적거리는 거리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덥고 습한 데다 비까지 듬성 내리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우리 밥 어디서 먹을 건데?"
"나야 모르지. 너 여기가 어딘 줄은 아냐?"
내 질문에 민지가 답했다.
민지는 비아냥 거리는 것인지 그냥 놀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답했다.
무관심보단 욕이 낫다더니 순 거짓말이다.
진희는 한참을 핸드폰만 보다 말고 한 식당에 가자며 모두를 이끌었다.
진희는 여러모로 똑똑한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길도 잘 찾고.
이런 애와 사귀는 강훈이 부러울 지경이다.
물론 나도 여러모로 친절하고 똑똑한 지훈과 사귀고 있지만...
진희는 지훈과는 다르게 똑똑했다.
"진희, 이럴 때 강훈이 없어서 어쩌나. 누군가라도 옆에서 보좌해 주는 편이 좋지 않겠어?"
"괜찮아, 강훈이 우리 사이에 있으면 나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좋을 것 하나 없잖아."
내 농담에 딱딱하게 맞받아친 진희였다.
진희는 가끔씩 농담에 진지해질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좀 서운해질 때가 있다.
"아.. 정말, 덥다니까? 길 한복판에서 이렇게 있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하자고."
민지가 방방 뛰며 말했다.
민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땀을 흘려댔다.
몸이 좋지 않은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헉헉 대고 비틀댔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런 번화가에서 비어있는 쾌적한 카페를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지만 결국에는 카페를 찾기에 성공했다.
민지는 초코 라테를 다 마셔버리고는 테이블에 내랴놓았다.
"하.. 이제 좀 살겠네."
"그렇게 더웠냐? 밥 먹으러 갈 건데 좀만 참지.."
"야 지금 밖에 온도가 올마나 높은지 알아? 알지도 못하면서는."
민지는 따갑게 쏘아붙이고서 창밖을 바라봤다.
큰 창이 보이는 곳에 앉은 우리는 사람으로 붐비는 거리를 바라봤다.
다시 저 거리로 나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진희는 멍 때리다 말고 음료를 들이켰다.
진희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 상당히 더웠던 것 같다.
난 그런 진희를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
서진이도 진희의 옆에서 복숭아 아이스티를 쪽쪽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잠깐만... 이거 복숭아 맞아?"
곧이어 서진이의 엉뚱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서진이가 먹고 있는 것은 분명 복숭아 아이스티가 맞았다.
"내 입이 잘못된 건가.."
서진이는 그 작은 입을 오물대며 음료의 맛을 음미했다.
나도 그런 서진이를 보며 음료를 한 모금 머금었다.
서진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음료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이스티를 신나게 빨아먹는 서진이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밖에 발을 내딛자마자 신발이 타들어갈 듯이 뜨거운 햇볕이 발에 집중되었다.
우리는 이 짜증 나는 날씨에 경악하며 빠르게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우린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당에 도착했다.
진희는 계단을 한 발짝씩 올라갔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서진이도 민지도 이어 한 명씩 계단을 올라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식 안은 쾌적하고 넓었다.
마침 창가자리도 비어있었다.
식당 안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예쁜 여자와 스타일 좋은 남자의 식사, 인스타 중독 친구와 페이스북 중독 친구의 만남.
여러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중 한 테이블의 사람들이 제일 돋보였다.
바로 멋진 여자와 키 큰 남자, 잘생긴 여자가 있는 테이블이었다.
그들의 비주얼만 봐도 거의 드라마 한 편을 본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해있었고, 내 눈은 점점 즐거워졌다.
사람들의 외모 구경으로 시간을 날려먹으니 어느새 내 눈앞에 갖가지 음식이 나와 있었다.
감자크림가락국수, 스테이크 덮밥, 계란 볶음밥 등 맛있는 음식들이 꽤나 있었다.
난 하얀색 크림을 먹으며 맛을 잔뜩 음미했다.
부드러운 크림이 입안을 돌 때쯤 느끼함이 느껴지고, 그 느끼함을 매콤 알싸한 카레가 중화시켜 줬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감자맛이 말 그대로 처음 맛보는 기분 좋은 맛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은 곧 영화 예매 시간과 가까워졌다.
우리는 서둘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쇼핑몰 위에 있는 큰 영화관이었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발을 걸치고서 가만히 에스컬레이터가 우리를 올려주기를 기다렸다.
에스컬레이터가 자신의 할 일을 마친 후.
처음 보는 낯선 공간에 들어온 우리는 먼저 예매 표를 뽑으려 했다.
하지만 다른 영화관과 다르게 매우 크고 복잡한 건물 구조에 혼란스러워졌다.
심지어 각 층마다의 역할이 다르기까지 했다.
7층은 대기하는 곳이고, 8층은 표를 뽑는 곳이었다.
9층은 상영관과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머리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음식을 구매하였다.
팝콘 두통과 음료 두 개를 들고서 진희가 나에게 걸어왔다.
각자 큰 팝콘 한통씩을 다 들고서는 에스컬레이터 앞 의자에 앉아 영화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한참 더 지나고, 드디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관이라면 다 있는 빨간색 의자에 앉아 팝콘 통을 내 무릎에 올려놓고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사실 난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온다기보단 팝콘을 먹으러 오는 것에 더 가까웠다.
팝콘을 다 먹고서는 뭔가 알 수 없는 아쉬움과 공허함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옆자리 친구의 것 마저 뺏어먹곤 했다.
진희라면 '에휴... 그래 너 먹어라.' 하고 줄 것이고, 서진이라면 '어머, 돼지니..?' 할 것이었다.
그리고 민지라면 내 것도 뺏어먹어 결국은 서로 팝콘을 교환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난 큰 통에 가득 담긴 귀여운 팝콘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달콤한 팝콘을 한 움큼 집어 입에 쑤셔 넣으며 웃기도 했다.
그건 옆자리 민지도 마찬가지였다.
알마나 팝콘을 좋아하는 것인지 이미 몇 개를 집어먹어 줄어든 팝콘 양이 보인다.
길고 질긴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한다.
흰 화면을 시작으로 배우가 한 명씩 등장한다.
이때부터 우리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즐기며 팝콘을 뜯기 시작했다.
달콤한 팝콘의 맛을 보며 영화를 즐겼다.
코미디 영화답게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덕분에 팝콘을 도로 뱉을 뻔했지만 그것도 뭐, 나쁘지는 않다.
영화가 끝나고서의 공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방금까지 느끼고 있던 즐거움이 한순간에 끝나버리니 아쉬움만이 눌어붙어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해소시켜 주는 것은 바로...
노래방에 가는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걷고 걸어 찾은 코인 노래방에 도착했다.
매우 좁고 낮은 입구에 내부는 불쾌한 냄새가 가득 풍겼다.
난 그 냄새에 못 이겨 코를 막고 말았다.
친구들은 그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세상 평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쾌쾌한 냄새에 몸도 정신도 지쳐 의자에 몸을 기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눈을 흘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다시 뜨니 언제 시간이 다 되었는지 버스를 타야 될 시간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 터미널에 내려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 타니 온몸에 기가 다 빨려 눈이 스르륵 감겨왔다.
애써 눈을 뜨려 노력했지만 내 정신력 문제인지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그렇게 잠에 들고...
몇 시간이 지났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난 다급하게 친구들을 깨운 후 가방을 챙겨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순간 너무 놀랐던 터라 숨을 헐떡이는데, 버스 정류장 옆에서 큰 무언가가 나를 향해 돌진했다.
난 빠르게 그 물체를 피했다.
그 검은 무언가는 진희를 향해 달려갔고 곧이어 진희의 품에 들어 안겼다.
"뭐야... 김강훈?"
"아잉, 진희야~"
"으엑... 저 닭살 커플 좀 어떻게 해봐! 적어도 내 눈앞에서는 치우라고."
서진이가 질색 팔색 하며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건 남자친구가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김강훈 네가 여기 왜 있어?"
"왜 있긴 왜 있겠냐. 진희가 나 불렀거든? 불만 있으면 너도 남자 친구 부르던가~"
강훈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나를 놀려댔다.
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도 지훈을 부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오늘 아침 지훈과 싸운 것 때문에 지훈을 만나기 좀 꺼려졌던 것이다.
지훈과 내가 싸운 것에는 내 잘못이 크다.
내가 친구들과 놀기 전, 지훈이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난 없는 시간까지 싹싹 긁어모아 지훈을 먼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지훈을 단 1분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난 지훈에게 '미안'이라고 사과했지만 지훈은 무언가 풀리지 않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지훈은 나한테 단단히 삐졌고...
삐진 이유는 내 사과가 너무 성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시간을 1분 남기고 급한 상황에 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난 이런 지훈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훈은 내 속도 모르고 '넌 나를 1순위로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라며 엉뚱한 소리나 해댔다.
물론 지훈에게 백번 천 번 사과할 만큼 미안한 마음이 있긴 하다.
내 연애 경험이 적어서 서툰 것인지.. 그냥 내 성격이 별로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훈과 화해를 했지만 여전히 사이가 좀 서먹한 듯싶다.
난 한숨을 쉬며 진희와 강훈을 보고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웠던 오늘 하루가 끝났다.
난 더운 몸을 식히며 욕실로 향했고, 오늘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