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힘들었던 수학여행이 끝나고, 난 수학 학원을 다시 다니기로 했다.
사실 이전에 다녔던 곳은 자유롭게 살고 싶던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곳은 하교 후, 5시 30분 내에 꼭 학원에 들어와 있어야 했다.
당시의 하교 시간이 4시 30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휴식 시간이 1시간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지금뿐만이 제일 재밌고 다채롭게 놀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 학원을 그만뒀었다.
게다가 전에 다니던 그 학원은 시험 기간만 되면 하루에 5시간씩 공부해야 했으니, 머리도 허리도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난 그 학원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쉬기로 했다.
그렇기에 내 성적이 안 좋은 것은 당연했다.
민지를 가르칠 정도로 좋았던 내 수학, 영어 실력이 어느새 민지보다 못하게 되었다.
난 충격을 받고 그 즉시 민지가 다니는 학원에 등록하려 했다.
민지는 원래는 서영이와 함께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민지에게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민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정말 나랑 같이 학원에 다니자고?"
"응, 그냥.. 성적이 떨어진 것 같아서"
민지는 5살 어린애 마냥 기뻐했다.
"우리 학원에 친구 데려오면 햄버거 쿠폰도 주는데 잘됐네~"
난 그 말에 민지가 다니는 학원에 바로 등록했다.
학원 선생은 좀 괴짜 같았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얇은 책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려 노력했지만, 이놈의 세상만사를 귀찮아하는 성격은 바뀌지가 않는지 어느새 학원을 3주째 빠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다시 학원에 가고...
일주일 지나서 또 쉬 고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어느 때와 같이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폰이 갑자기 울렸다.
난 갑작스럽게 나에게 온 지훈의 디엠에 놀랐다.
물론 지훈의 디엠 내용에 더 놀랐지만...
-혹시 이따가 잠시 만날 수 있을까?
난 이런 지훈이 보낸 글자 몇 자에 놀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지훈과는 이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지훈이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해서 만난 것, 같이 놀자고 해서 또 만난 것...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훈이 나에게 몇 번 간식을 주기는 했어도...
이상형을 물어본 적이 있더라도...
난 고개를 저으며 지훈에게 디엠을 보냈다.
- 몇 시에?
-한 7시 30분 어때? 너 학원 그때쯤에 끝나잖아.
하지만 지훈을 멀리하기에는 지훈이 나에 대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난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에 한쪽 팔로 마른세수하듯 이마를 짚고 손가락으로는 펜을 요리조리 돌렸다.
그리고 어째선지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간단한 덧셈도 틀리고 말아, 선생에게 정신 차리라는 잔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약 1시간이 지나고, 난 떨림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지훈을 만나러 갔다.
지훈을 무사히 만나긴 했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길을 걷는다는 단순한 행동을 해도 무언가 어색하고 민망한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지훈을 만나다니... 내가 참 어리석었다.
난 한숨을 쉬며 지훈과 어색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사실 지훈의 얼굴을 잘 보지는 못했다.
아직 많이 어색하기도 하고...
전에 민지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지훈을 의식하게 된 것 같았다.
"오늘 왜 보자고 한 거야?"
내가 먼저 말을 걸자 지훈은 놀라 나를 슬쩍 쳐다봤다.
지훈은 계속해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에 난 놀랐다.
지훈과 인사하고 나서 난 진희네 집으로 빠른 걸음을 해 걸어갔다.
사실 난 오늘 진희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은 바로... 진희네 커플과 함께 진희네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책상 앞에 책을 펼치고 앉아도 공부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희가 나에게 지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그 아이는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도 될까?"
"응, 누구 말하는 거야?"
"그 지훈이라는 분이요."
"아.."
난 머리를 긁적이며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책상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아까의 일이 생각나 머리가 저절로 아파왔다.
"하...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말을 들은 진희는 내가 지금 왜 한숨을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 이지훈 알아?"
난 마른세수를 하며 진희와 강훈에게 물었다.
강훈은 의외로 지훈을 알고 있었다.
" 나 지훈이 알아. 참 좋은 남자지."
난 강훈의 말에 헛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강훈은 2학년 때 지훈과 같은 반이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강훈이 말하길 지훈은 굉장히 다정하고 로맨틱한 사람이라고 했다.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강훈을 노려봤지만 그에 따른 답변은 받을 수 없었다.
"이야~ 네 이야기 속 의문의 남자가 지훈이였다니!"
강훈의 장난스러운 말도 뒤로 한채, 난 다시 아까의 일을 떠올리려 했다.
-
우리 둘은 평범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어색하고도 잠잠한 공기가 흐를 뿐이었고 우리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훈이 먼저 내쪽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러고는 나에게 말했다.
" 사실... 나 너 좋아해"
난 순간 머릿속에 거절보다는 '왜'가 먼저 떠올랐다.
난 다급하게 지훈에게 물었다.
물론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채로..
" 왜? 난 네가 날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지훈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널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려면 오늘 밤을 새우고도 남을 거야."
그 말에 난 헛웃음 한번 하고서 고백을 받아줬다.
"그래, 사귀자는 거지?"
"응, 잘 부탁해."
그렇게 해서 현재...
난 진희와 강훈의 앞에서 머리를 싸맨 후 과거의 나를 원망하고 있다.
내일 당장 지훈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