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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소다 Sep 26. 2024

4화, 협의: 둘 이상의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의논함.

이혼이 두려운 당신에게

다리 건너 저쪽에는 평화가 있을 것 같다.


8월의 한여름 밤, 바람이 들어오길 바라며 창문을 열고 딸아이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그날도 느 날처럼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전남편은 잠을 자고 있는 나와 딸의 이불을 휙 걷어내며 큰소리로 욕을 했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나와 딸이 눈을 비볐고 전남편은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이런 일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무심한 듯 딸아이에게 다시 자자고 말했다.

딸아이는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셨나 봐, 아빠 졸려~"라고 말하며 함께 이불속으로 숨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무시하자 화가 난 전남편은 다른 방으로 들어가 와락 소리를 질렀고 이내 잠잠해졌다.


불안이란 손님이 찾아와 마음을 흔들자 울렁거리던 심장이 빠르게 콩닥콩닥 뛰었다.

혹시 딸아이 앞에서 때리면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딸아이가 다 보고 듣고 있을 텐데...

밤새 자는 척했지만 그날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협의이혼을 하려면 당사자간의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당신과 내가 이혼이라는 목표를 두고 딸아이는 누가 키울 것인지, 양육비는 얼마로 정할지, 친권, 재산분할에 대한 협의를 하고 이혼협의약정서를 작성한다.

이러한 과정의 시작과 끝을 이성적으로 진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며칠 동안,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전남편과 협의를 위한 대화를 해야 했고

그때마다 전남편은 나를 원망했다.

네가 원해서 이혼해 주는 거라며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당신과 마주해야 했다.

하루가 한 달같이 흘러가는 버거운 시간을 견디게 한건 한 가지 목표, 협의이혼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지속해서 네가 원해서 이혼해 주는 거라며 네 탓이라며 나의 탓을 했지만

나는 이미 끝난 관계에 미련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항상 탓을 했었지...

협의이혼이란 이름으로 딸아이를 두고 거래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나는 당신의 험한 말들과 협박 아닌 협박 같은 말들을 흘려보냈고

상황이 어떠하든 나와 당신이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진심으로 나보다 당신이 딸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면 당신이 양육권을 갖으라 했다.

아이에게 모성애가 깊었던 나였기에

죽으면 죽었지 양육권을 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당신은 당혹스러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전남편은 내가 이혼하겠다는 말이 진심이구나! 돌이킬 수 없구나! 깨달은 듯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양육권은 엄마인 내가 갖고 딸아이를 키우기로 하였고, 친권 또한 양육자가 갖는 게 편리함을 이야기하며 설득했다. 양육비는 전남편이 양육비산정기준표를 보고 주기로 한 금액으로 정하였다.

여기까지는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헤어지면 남인지라 돈이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돈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감정이 앞선 듯 불같이 큰소리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당신에게 나는 양육권, 친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양육비도 재산분할도 전남편이 제시한 금액에 알겠다고만 했다.

재산분할은 전남편이 나에게 줄 수 있다는 금액과 지급 날짜를 정하여 약정서에 기재하였다.


사실 우리는 아파트 청약을 받은 상태였다. 청약받은 아파트에 계약금을 넣고 완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남편이 나와 헤어져도 청약한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어 하였다.

현재 가진 돈을 청약한 아파트의 잔금으로 치르고 대출을 받아 나에게 지급할 돈을 주겠노라고 하였다.

이혼하고도 몇 달이 지나야 받을 수 있지만, 당장은 지급이 어렵다는 당신이 딸아이 아빠이기에 그래 그렇게 하라고 알겠다고 했다.


나에게 현재 중요한 건 나의 행복과 딸아이였다. 돈은 나중에 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혼소송을 하면 시간도 돈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상처를 받는 건 딸아이가 될 것이란 생각에 협의로 꼭 이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돈과 관련된 문제는 전남편의 의견에 알겠다고 하였다.


추후에 이것이 화근이 될 줄 이때는 알지 못했다.


며칠 간의 여름밤, 힘겨웠던 협의기간이 지나고 드디어 협의이혼약정서를 작성하였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보았던 책들이 도움이 되어 조금은 수월하게 협의이혼약정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당신은 늘 바빴고,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고,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나와 아이보다 친구가 먼저였다. 항상 모임이 있었고, 모임에 참여하여 매일 술을 마시고 외부활동을 좋아하는 당신.

당신이라는 자유로운 영혼이 나와 결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날아가길...


당신을 위해서 보단 이제는 나를 위해서 이혼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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