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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소다 Nov 01. 2024

아빠와 따로 살지만 여럿이 함께 살아요

2. 안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환경제공 (이혼숙려기간 = 이혼준비기간)

가족은 아빠, 엄마, 딸 셋이었지만, 늘 저와 아이 둘만 함께했어요.

아빠는 늘 바빴거든요.     


주말에도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고, 있어도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술을 마시고는 다음 날 아침까지 숙취로 누워 있거나 피곤하다며 쉬었으니까요.

이해는 가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일주일 내내 무리했으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래서 한참 고민했어요.

만약 이혼을 한다면 아이와 둘이 살아야 할 텐데, 과연 괜찮을까 하고요.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이라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할 때가 많고, 제가 일을 하다 보면 아이가 아플 때나 도와줄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니까요.

또, 아이는 둘이 있을 때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더 행복해하는 성향이라, 여럿이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아이에게 더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이혼을 알리기로 했어요.

부모님 집 근처에 살 것인지, 아니면 함께 지낼지 결정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제가 아이와 갈 곳이 없을까 봐, 주저 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제가 딸 없이는 못 산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아이와 함께 있어야 제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셨죠.     


맞아요. 딸 없이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을 거예요.

딸이 있어서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렇게 친정으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일상적인 분위기 안에서, 아이가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초록담쟁이(이수희) 일러스트]

지금 아이는 어떠냐고요?     


이사한 집이 외할머니 댁이라 그런지, 낯설어하지 않고 금방 적응했어요.

학교와 학원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주말마다 약속이 생기네요.

친구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데, 아이 방은 이미 그들만의 아지트가 되었어요.

오히려 저보다 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이혼 후 아빠와는 따로 살지만, 오히려 가족이 더 늘어나 집안은 더 시끌벅적해졌어요.

엄마에게 혼날 때 편들어 주는 할머니도 계시고, 봄과 가을이면 주말마다 취미로 갑오징어와 주꾸미를 잡아 오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딸은 좋아하는 해산물 샤부샤부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요.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사람 사는 따뜻한 정 느끼기도 하고요.     


이런 따뜻한 환경 덕분에 아이는 마음도 생각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아빠의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아이 나름의 속도로 잘 적응해 나가고 있지요.     


이혼 후 아이를 어떤 환경에서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정말 중요해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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