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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울 Feb 27. 2024

실감 나지 않는 전역

D-day

오늘 네가 전역을 했다.


네가 처음으로 군입대를 했던 때를 떠올려봤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네가 군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네가 군대로 들어가기 직전에 내게 전화를 했다.

그 전화를 받으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심란한 마음은 감춰지지 않았다.

눈물이 고여서 떨어질 것 같았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숨기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너무 슬퍼하면 떠나는 네가 더 힘들까 봐, 덜 슬픈 척하려 노력했다.

그날 먹은 점심 식사는 더럽게 맛도 없었다.


네가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를 떠올려봤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네게 첫 휴가에 대해 물으니, 너도 기억하지 못한다.

역시 우리에게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는 건 사치일까.

사진을 찾아보니, 우리는 우리의 5주년을 미리 축하하고 있었다.

같이 나온 대학을 구경하고, 근처 맛집을 가고, 케이크를 먹으며 말이다.

그때의 우리 사진을 보니, 난 머리가 지금보다 두 배는 길었고, 넌 지금보다 머리가 두 배는 짧았다.

그날 먹은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다.


네게 처음으로 면회를 갔을 때도 떠올려봤다.

사실 이때도 기억이 나지 않아 사진을 좀 찾아보니, 그날 네가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너도,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내게 고마워서였겠지?

처음으로 면회를 간 날, 돈가스 배달 맛집을 발견해서 그 뒤로 쭉 그 집만 시켜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그 돈가스.


네가 드디어 전역을 했다.

비록 네가 전역한 날도 난 출근을 했기에, 바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 주 주말에 만날 수 있었다.

네 전역이 믿기지 않던 나는 그냥 이유 없이 네게 전화도 걸어보고, 운전해서 네게 가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닿으려고 하면 닿아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참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나름 긴 시간이었다.

일 년 하고도 아홉 달.

마음이 변하려면 변할 수 있고, 헤어스타일이 변하려면 몇 번이고 변할 수 있는 그런 기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변치 않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너는 내게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았고, 나는 네게 기다리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우리는 왜 당연히 서로의 옆에 있어줬을까.


오래 만나서 우린 서로가 당연했다.

본가에 가면 가족이 있는 게 당연하듯이, 직장에 가면 직장동료가 있는 게 당연하듯이, 넌 내게 당연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냥 서로의 당연함을 감사하며 지내니 시간이 흘렀다.

네가 너무 필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네가 없어서 외로웠던 날들도 있었지만, 그냥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살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넌 전역을 했다.


이제는 브런치 글을 쓰는 순간에도 너와 함께 있을 수 있고,

외로울 때, 힘들 때 네게 기댈 수 있고,

맛집을 가거나 예쁜 카페를 가고 싶을 때 너와 바로 떠날 수 있다.


네가 전역을 해서, 우리가 함께여서 행복하다.

너와는 무엇을 먹어도 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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