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울 Dec 19. 2023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이유

D-8

나는 MBTI 유형 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나의 성격이 잘 드러나고, 내가 나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MBTI는 I(내향형)이라는 것만 같고 나머지는 모두 다르다.


나는 J(판단형)이고, 너는 P(인식형)이라 난 계획적인 편이고 넌 융통성 있는 편이다.

하지만 유독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큼은 네가 나보다 더 J 같다.


전역 기념으로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

대학생 때는 돈이 없어서, 그 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갔던 해외여행을 처음으로 가려고 했다.




우리가 원래 가려고 한 여행지는 삿포로였다. 엔저 호황으로 뉴스에 자주 나왔고, 주변에서도 일본 여행을 많이 갔다. 게다가 겨울의 삿포로는 낭만적이기도 하다. 이 여행지를 정한 건, 너의 전역이 아직 1년 넘게 남았을 때였다.


1년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 들었고, 일본 여행 관련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리고 우리는 면회를 하면서 틈틈이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항공권이 예상보다 비쌌던 것이다. 이미 삿포로 여행 계획을 잔뜩 세워놓았지만, 현실과 타협하여 목적지를 변경했다.


삿포로 맛집, 숙소, 놀거리 등을 열심히 찾아서 각자 원하는 장소를 모두 적어 일정도 다 세워놓은 상태였다. 여행 계획을 세워놓은 게 아깝다고 말하자, 너는 내게 말했다.


"괜찮아. 여기는 다음에 가면 돼!"


그 말을 들으니 위안이 됐다.

맞아, 여유가 있을 때 다음에 가면 되지!




결국 우리가 정한 여행지는 후쿠오카였다. 확실히 삿포로보다는 항공권도 쌌고, 후쿠오카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쿠오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이것저것 검색했다. 일본 여행 꿀팁 같은 건 이미 찾아놓은 상태였기에 후쿠오카 맛집, 여행지, 숙소를 찾아보면 됐다.


우리는 면회실에서 핸드폰을 들고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 가기 3, 4달 전부터 예약을 했던 터라 비교적 싸게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난 준비물 리스트를 만들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주문했다. 너는 일정표를 짜고, 버스를 예약했다. 네가 좀 더 여행 준비에 열심히였고, 난 네게 물었다.


"넌 P인데 나보다 더 J 같아."


그러자 넌 대답했다.

"계획을 안 세워놓으면 네가 불편하잖아."


예민하고 까다로운 나를 위해 네가 열심히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무척 고마웠다.




사실 우리가 세운 여행 계획은 이 둘이 끝이 아니다. 네가 길게 휴가를 나올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에 맞춰서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다. 그래서 강릉 지도 사진을 다운로드하여서 그 위에 동선을 짜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못 갔다. 하필 그때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장거리 운전은 위험할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행도 '다음에 가면 돼.'를 시전 하며, 저장해 두었다.



계획을 세운다는 건 어쩌면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의 취향에 맞는 걸 찾아내서 정리해야 하니까. 그런데 너와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우는 일은 참 설렜다.


네가 좋아서, 너와 함께 즐거운 일들을 할 수 있어서, 드디어 네가 전역을 해서.

너와 함께 있는 걸 상상하며 세우는 여행 계획은 참 좋다. 비록 실제로 여행은 못 가게 된 계획이 두 개나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다 좋았다.


전역하면, 그동안 세웠던 여행 계획들을 현실로 옮겨보자!

이전 06화 군대에서 기념일 보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