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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울 Dec 19. 2023

내일 전역하는 너에게

D-1

네가 입대한 게 얼마 전의 일 같은데, 벌써 전역을 할 시기가 바짝 다가왔어. (물론 네게는 엄청 긴 시간이었겠지만.) 드디어 내일 넌 전역을 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구나.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축하해.


전역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네가 이야기했지.

"너도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어. 이제 얼마 안 남았어."라고.

그런 말을 들으니 그간 내가 힘들었던 걸 알려주고 싶더라고.

"맞아, 힘들긴 했지. 매일 운전해서 널 보러 가고, 데려다주고. 연락도 제약이 많고. 그런데 보고 싶은데 못 보는 게 제일 힘들었어."

하지만 나보다 네가 더 힘들었을 거란 거 알아.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못먹었을 테니까.




보통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면 헤어질 생각도 많이 한다잖아.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은 안 들었던 걸까, 생각해 봤다? 오랫동안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역시 내가 널 정말 많이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럼 난 널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한테 너는 부모님이자 친구이자 오빠이자 동생이자 남자친구인 사람이야. 네게 다양한 역할을 요구한 건 아니었지만, 넌 내게 그런 사람처럼 행동했고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어.


가족에게도 말 못 할 고민과 힘듦을 이상하게 네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고. 너랑 뭘 하든 그냥 다 재미있어서,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 너랑 노는 게 제일 즐거웠고. 세 자매 중 첫째인 나는 항상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날 안아주고 품어줄 때면 친오빠가 한 명 생긴 것 같았어. 어쩔 때는 내가 챙겨줘야 할 동생 같기도 했고, 평소에는 다정한 남자친구로 내 곁을 지켜줬지.


그래서 나는 네가 왜 이렇게 좋은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 준 경험이 없는데, 넌 날 많이 사랑해 줬기 때문이지. 사랑을 받으니까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부모님은 늘 동생들 챙기시기 바빠서 난 늘 의젓한 첫째여야만 했어.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내가 부모님의 역할을 하면서 동생들을 챙겼지. 그래서 난 아이인데 어른처럼 굴어야 했어. 그 덕분에 난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 '착하네. 철이 일찍 들었네. 의젓하고 믿음직스럽네. 동생들을 잘 보네.' 같은 말들 말이야. 난 어리지만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어. 나의 필요는, 나의 정체성은 '의젓한 첫째'였으니까.


그런데 너를 만나고 내가 달라졌어. 힘든 걸 네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됐고, 투정이나 어리광도 부릴 수 있었어. 네게는 그렇게 해도 됐어. 그렇게 한다고 네가 날 떠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내 존재의 필요성을 굳이 네게 알려주지 않아도 됐으니까.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니까.


그런 너라서 좋았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고 사랑해 주는 너라서. 그래서 나도 널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껴주려고 노력했어.



앞으로의 우리 관계가 달라질까 봐, 서로 미워하게 될까 봐 불안해할 때면, 넌 이야기했지. 전역만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이야.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뭔가 진짜 그럴 것 같아서, 자꾸 네게 투정을 부렸는지도 몰라.


네 말대로 우리의 연애에는 제법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걸 아주 잘 극복해 왔어. 그만큼 서로를 잘 알게 되기도 했고, 몇 년 전보다는 우리가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해. 앞으로도 우리 관계가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도록, 시련이 온다면 그걸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내가 더 현명하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네가 전역을 하면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아. 일단 같이 헬스장 가서 운동을 하고, 여행도 가서 즐거운 추억 많이 쌓고, 계절을 즐기는 데이트도 하고 싶어. 코로나 때문에 못 갔던 전시회나 영화관도 많이 가고 싶고. 평소에는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 하는 내게, 너라는 존재가 와서 난 참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래서 좋아. 앞으로도 너랑 이것저것 하면서 재미나게 살고 싶어.


힘든 군생활 버텨줘서, 건강한 모습으로 전역해 줘서, 계속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널 엄청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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