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편 닭대가리에 대한 공산의 응징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강욱의 출현으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뿐이었다.
“그래서 또 한다구? 그만하기로 약속했잖아.”
“미안. 그때는 귀공자님이 너무 화를 내서 내가 일 보 후퇴한 거고. 남자가 칼을 뺐으면 제대로 휘둘러야지. 우리 꼰대도 그랬어. 남자는 자고로 끝맺음이 중요하다고. 시작만 하고 끝이 없으면 되겠어?”
하모는 너무 쉽게 약속을 깨는 공산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려고?”
“뭐 그냥 지난번처럼 약을 올려야지. 저번에 보니까 생각보다 쉽게 흥분하더라. 살살 약을 올려서 선을 넘게 만들면 되는 거야. 제대로 사과를 받고 더 까불지 못하게 하는 게 목표.”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야. 장난이 커지면 사고가 난다고.”
“걱정할 거 없어. 설마 날 죽이기라도 하겠냐?”
하모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살인의 동기는 항상 단순한 거라고 했어.”
“뭐, 살인의 동기? 누가 그런 말을 해?”
“우리 아빠가.”
“맞네. 그러니까 닭대가리가 나한테 동기를 제공한 거잖아. 그래도 걱정하지 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공산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너 혹시 지금 그 사람 걱정하고 있는 거야?”
하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걱정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는 하모의 충고를 거꾸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비뚤어져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알았다, 알았어. 걱정하지 말라니까. 겁만 주고 끝낼 테니. 봐 봐. 최강욱한테도 바로 꼬리를 내리는 거.”
“그건 강욱이 아빠 때문이잖아.”
“그러면 더욱 안 되지. 우리가 학교에 다니지. 꼰대들이 다니냐? 아무튼 너한테는 피해 가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 걔도 얼마 전까지는 학생이었다고. 지가 언제부터 선생이었다고 꼴값을 떨어? 개구리 올챙이 시절도 모르고.”
수업 종이 울리고 안 선생이 들어왔다. 씩씩한 모습을 보니 공산의 장난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는 듯했지만, 하모는 초조했다. 그가 조마조마한 마음에 공산의 자리로 고개를 돌리는데, 안 선생이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거기 엎드려 자는 녀석. 안 일어나?”
그 소리에 공산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너냐? 너도 앞에서 수업 들을래? 정신 좀 차려라. 학력고사가 얼마나 남았다고.”
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화를 냈다. 아마도 지난번 교무실에서 공산에게 무안을 당한 것이 앙금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공산은 말이 없었다. 꼼짝하지 않았다.
“앉아라. 너 때문에 내 기분까지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공산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서 있었다.
“앉으라니까!”
바로 그때, 공산은 마치 안 선생의 고함에 반응하는 인형처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 앉는 대신 교단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초점 없는 눈은 허공만을 응시했다. 몽유병 환자처럼, 공산은 아무 말 없이 교실을 한 바퀴 돌아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하모와 아이들, 안 선생조차 처음 보는 해괴한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책상 앞에 선 공산은 두 손을 들어 앞으로 폈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치켜올린 후, 양손의 집게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투사처럼 웅변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마치 이육사가 그의 몸에 빙의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교실을 돌아보더니 몰아치듯 힘차고 구성지게 울어 댔다.
“꼬끼오 꼬꼬 꼬꼬.”
“꼬꼬댁 꼬꼬 꼬꼬.”
안 선생은 양손으로 교탁 모서리를 움켜쥐고 눈만 껌벅거렸고 아이들은 킥킥대며 터지는 웃음을 참았다. 공산을 노려보는 그의 얼굴은 해머로 내려쳐도 튕겨 나갈 듯 꽁꽁 얼어붙었다.
“저번에도 너였지? 나와!”
대패로 쇠를 깎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최강욱도 나와! 이 새끼들 정말 웃기는 놈들이네.”
최강욱은 자리에 없었다. 누군가 대답했다.
“오늘 재택 수업입니다.”
“그래? 있었으면 또 자기가 했다고 했겠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두 번씩이나 선생을 놀려?”
교단으로 나온 공산을 향해 안 선생의 손이 올라갔다.
“선생님, 폭력은 안 됩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기만이 벌떡 일어나 안 선생과 공산 사이를 가로막았다. 안 선생은 거칠게 숨을 쉬며 공산을 노려보았다.
“너는 정말 나쁜 놈이다. 감히 이육사 선생과 나를 모욕해? 자리로 돌아가. 꼴도 보기 싫다.”
한동안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던 안 선생이 교실을 둘러보았다.
“누구, 물 한 컵만 떠다 줄래?”
하모가 떠다 준 물을 마시며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선생이 공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쁜 자식. 네가 아무리 나를 망치려 해도 나는 끄떡없어. 너 같은 놈이 열 명, 백 명, 아니 천 명이 있어도 나는 끄떡없다고.”
교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안 선생을 말린 기만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좋다. 네 놈 몸뚱이에 손을 대면 내 손만 더러워지지. 다음 수업 시간까지 공책에 닭 천 마리를 그려 와라. 그게 스승을 기만한 못된 놈에게 주는 벌이다.”
그 말을 남기고 안 선생은 교실을 나가버렸다.